상단여백
HOME MDFOCUS 新명의열전
주의 산만한 어린이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9.02.19 17:09
  • 댓글 0

[엠디저널]여덟 살짜리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뛰다시피 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를 따라 금발을 묶은 30대 엄마와 나이 들어 보이는 아버지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면서 저를 찾았습니다. 

보통 저를 찾는 청소년이나 아동들이 ‘정신과 의사’라는 동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이미 신물 나게 겪어온 터라 찡그리면서 맞는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소년은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엄마의 외동아들로 유치원 때부터 주의가 산만하여 옆의 아이들과 말을 많이 하거나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워낙 머리가 총명하여 자신이 흥미 있는 과목이나 놀이에는 몰두를 해서 학업성적은 항상 우수했습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남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며 명랑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항상 끝에는 ‘시작한 숙제를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정리정돈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했습니다(아이 엄마는 지난 4년간의 성적표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립학교에서 국립으로 2년 전에 전학을 시켜보았는데, 처음에는 정신을 차리는 듯하다가 다시금 주의 산만 증세를 보이는 바람에 제게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저를 따로 불러낸 엄마는 걱정을 털어놓았는데, 아이가 의자에 앉아 숙제를 하려면 계속 사타구니를 베게나 손으로 비벼댄다는 것입니다. 자위행위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는 듯해서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 아이 자신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당황해 하더랍니다. 아직은 집에서만 발견되었는데 “만약 학교에서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비로소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아들과 남편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시종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28세 폴란드 어머니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중년의 그리스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은 건강하게 자랐지만 아버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학교나 가게에 가면 소년은 가끔 도망치고 싶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흥분을 하여 길을 잃어버리는 수도 많았고 그런 일로 아버지를 화나게 하는 일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마와 숙제를 할 때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엄마와 1:1로 있을 때에는 주의집중이 워낙 잘 되고 엄마는 늘 따뜻하게 참아주고 이해해주었으니까요.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더욱이 몇 달 전의 대뇌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어머니 침대 옆에 소년이 오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밤이면 공연히 불안해졌고 ‘누군가 자신을 노려보거나’, ‘귀신이 벽장 속에 숨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토록 강하던 아버지의 급작스런 변화는 특히 어머니를 우울하게 했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여덟 살짜리 소년에게는 아마 엄마마저 멀어진 듯 느껴졌습니다.

가족의 병력을 보니 아버지의 어린 시절도 무척 행동이 분주하고, 남을 즐겁게 하는데 열심이었으며 반면에 감정이 예민하여 상처를 받은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군대에 간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소년의 주의산만 증세를 본인과 가족의 ‘노력’으로 조절해봤지만 4학년 과정이 그에게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스트레스들이 겹침으로써 이제는 약물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심해지는 ‘불안증세’에 대비해 중독성이나 습관성이 없는 안정제를 소량 복용하여 편안한 수면을 취하도록 했습니다. 가능하면 아버지나 다른 남성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재미를 느끼게 해, 틴 에이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소년에 대한 어머니의 과도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성인학교’에 등록하여 ‘특수학교 선생님 보조원’의 자격증을 받도록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있던 어머니는 60대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진 한 직업인으로 살아감으로써 소년을 안심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량의 리탈린(Ritalin)복용과 교회의 고등부 청년과 맺은 Big-Brother관계를 통해서 소년은 남성으로써의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숙제는 가능하면 혼자 해결하거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태권도장과 연극학교에 등록해 항상 균형이 잘 짜인 공간과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신감이 높아짐과 동시에 어느 날 자위행위 버릇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