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PINION 전문가 칼럼 문국진
기형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장기와 고뇌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19.02.22 10:45
  • 댓글 0

[엠디저널]그리스신화의 불(야금)의 신 또는 기술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는 로마신화의 불카누스(Vulcanus, 영/Vulcans)와 동격인 신으로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나, 실은 제우스가 자기 머리에서 아테나를 탄생시키는 것을 본 헤라는 나라고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해서 헤라 단독으로 단성생식(單性生殖)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즉, 제우스가 부인이 있는데도 단성생식을 한다면 나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혼자서 낳은 아들이 헤파이스토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낳고 보니 헤파이스토스는 추하게 생겨 어머니로서도 보기 민망할 정도이며, 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절름발이였다고 한다. 그의 절름발이에 대해서는 어머니 헤라가 아들의 추한 꼴이 부끄러워서 태어나자마자 바다로 던졌는데, 이때 발을 다쳐 절름발이 되었다는 설과, 혹은 부부싸움 끝에 화가 난 제우스가 헤라의 편을 드는 헤파이스토스를 던져버렸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 헤파이스토스는 렘노스 섬의 오케아노스라는 거대한 강으로 추락했는데 다행히 그 강에는 테티스와 에류노스라는 아름다운 두 여신이 살고 있었다. 그 여신들에 의해 구조되어 그녀들이 헤파이스토스를 9년간 바다 밑 동굴에서 기르면서 기술을 습득시켜 어떠한 불가사의한 물건도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신으로 양육해냈다.

이렇게 성장한 헤파이스토스는 자기가 습득한 기술로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들 중에서도 여왕신이 앉는 황금으로 된 옥좌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붙여서 한번 그 옥좌에 앉으면 그 쇠사슬에 묶여 풀려날 수 없는 장치를 만들어 이를 헤라에게 선사하였다. 이 아름다운 옥좌를 선사 받은 헤라는 너무나 좋아서 받자마자 덥석 앉았는데, 그만 그 옥좌에 묶여 꼼짝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여러 신들이 모여서 상의하였지만 결국 헤파이스토스의 손을 빌리는 도리밖에는 없다는 결론으로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로 모셔오기 위해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보내기로 했다.

헤파이스토스를 찾아온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으나 이를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난처한 술의 신은 헤파이스토스에게 포도주를 권했는데 헤파이스토스로서는 처음 맛보는 술에 그만 취해 버렸다. 이 틈에 그를 당나귀에 태워 올림포스로 데리고 왔다. 옥좌에 결박되어 있던 헤라는 자기의 결박을 풀어 줄 것을 부탁하자 이번에는 헤파이스토스는 절세의 미인 아프로디테 또는 아테나와 결혼하게 해 줄 것을 조건으로 요구해 결국은 아프로디테와 결혼하게 되었으며 헤라는 결박에서 풀려났다.

벨라스케스 작 :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1630),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이상적인 신성에서 벗어난 신체의 불구로 인해 아내로부터도 지아비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아프로디테는 눈을 다른 남성에게 돌리기 시작했으며 마침내는 미남이며 씩씩한 군신(軍神)인 아레스(Ares)와 바람을 피웠다. 이 사실도 모르고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에서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하여 그의 장인정신 만큼은 크게 인정받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아폴론 신은 헤파이스토스를 가엽게 생각해, 그의 대장간을 찾아 그의 아내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이러한 장면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squez 1599-1660)이다. 그가 그린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1630)은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에서 젊은이들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아폴론 신이 방문하였다. 그림의 맨 좌측에 서있는 머리에서 광채를 발하는 아폴론은 “당신의 처인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무슨 일만 그렇게 하고 있는가?”라고 알려준다. 화가는 그림에서 헤파이스토스의 다리의 불구상태는 대장간의 담금질대로 가려서 표현하였지만 좌측의 흉부가 굴곡 되면서 밑으로 처져 있는 것으로 그의 좌측 발에 이상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부인의 부정한 소문을 확인하고 바람피우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그는 궁리 끝에 거미줄같이 가느다란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을 만들어 자기의 침대에다 설치해놓고 자기는 고향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아프로디테는 안심하고 아레스를 자기 침실로 끌어드려 침대위에서 정사를 시작하려는 순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걸려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때를 놓칠세라, 헤파이스토스가 나타나 증인으로 여러 신들을 불러모아 톡톡히 망신을 주었다. 이것은 바람난 아내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일화로 유명하다.

헤파이스토스의 여성관계도 단순하지는 않다. 그의 다른 결혼상대는 아테나 여신이었다. 원래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자라 나오지 못하고 난산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해머로 그 두개골을 깨고 탄생시킨 여신이다. 제우스는 난산수술을 한 헤파이스토스에게 주는 보수로 아테나를 아내로 주었다. 결혼 첫날밤 잠자리를 같이하려는 순간 그만 무엇이 급했던지 헤파이스토스는 아테나의 허벅지에 사정하고 말았다. 이를 껄끄럽게 여긴 아테나는 사정된 정액을 헝겊으로 닦아 땅에다 버렸다. 정액은 땅으로 스며들어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태에 들어가 임신되어 난 아들이 에리크토니오스이다. 아테나 여신은 에리크토니오스를 자기가 낳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아들처럼 귀여워하며 그는 먼 훗날 아테나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처럼 헤파이스토스는 여신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했다. 즉 어머니인 헤라 여신으로부터는 못 생겼기 때문에 내던져서 절름발이 되었고, 첫 번째 결혼한 처 아테나로부터도 충분한 성행위의 대상이 되지 못해 천대 받았으며, 아프로디테는 다른 남성에게 눈을 돌리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또 두 번째 결혼상대자에게도 창피를 당한 꼴이 되었다.

냉 작 :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방문하는 아프로디테’(1641),

성 테니스란스 미술관

헤파이스토스의 성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프로디테는 불륜의 원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여러 남성들과 접해서 여러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는 이를 방관하는 도리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헤파이스토스의 성품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당시는 혼인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 혼외정사는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프로디테는 다르다노스 왕가의 안키세스가 산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만 홀딱 반해 인간 처녀로 변신하여 그에게 접근하여 아이네이아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아이네이아스가 자라 트로이의 장군이 되었다. 아프로디테는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을 위해 헤파이스토스와 싸움에 이길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자 헤파이스토스는 이를 승낙하여 정성껏 만든 무기를 아프로디테에게 바쳤다. 이러한 장면은 여러 화가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그 중 실감있게 그린 것은 냉(Louis Le Nain)의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방문하는 아프로디테’(1641)이다. 에로스를 동반한 아프로디테가 자신이 외도해서 난 아들 아이네이아스에게 줄 무기를 부탁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방문하고 있으며

대장장이들과 일하던 헤파이스토스는 앉은 채로 그를 수락하고 있다.

더욱 흥미 있는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부셰(Francois Boucher 1703-70)가 그린 ‘비너스에게 아이네이아스의 무기를 전하는 불카누스’(1756)이다. 헤파이스토스는 자기의 처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전쟁에서 쓸 신형무기를 만들어 이것을 아프로디테에게 바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속도 없는 어리석은 자로 보이며 어떻게 해석하면 착하기 끝이 없는 행위로 해석된다.

우리는 헤파이스토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몸의 불구가 생기더라도 잠재되었던 우월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에 몸이 부자유스럽다고 인생의 문제를 포기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대처하면 새로운 것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리스신화이다.  

 

부셰 작: ‘비너스에게 아이네이아스의 무기를 전하는 불카누스’(1756), 파리, 루브르 박물관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