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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희망가이자 애향가 ‘흙에 살리라’

김정일 작사·작곡, 홍세민 노래…1973년 발표 크게 히트. 10대 소년농부, 청와대 영빈관 문 대통령 앞에서 불러 화제

  • 입력 2019.02.23 10:45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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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 정든 땅

푸른 잔디 베개 삼아 풀내음을 맡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내 사랑 순이와 손을 맞잡고

흙에 살리라

푸른 들녘 시내 흘러 내 고향 정든 땅

구름 함께 길을 걸어 가로수를 따라가면

이 세상 모두 다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아이들 키우며 먼 훗날 위해

흙에 살리라

[엠디저널]지난 2018년 12월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 추억의 대중가요 ‘흙에 살리라’가 흥겹게 울려 퍼졌다. 2017년 KBS 1TV ‘인간극장’ 등에 출연, ‘중학생 농부’로 유명해진 한태웅(17) 군이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문 대통령 주재의 농업인 초청간담회 자리에서다. 반주가 흐르자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장단에 맞춰 박수로 호응,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밥상이 힘이다’ 슬로건으로 열린 간담회는 전국 농업인 대표들 노고를 격려하고 농정혁신방안을 함께 나누기 위한 송년행사였다. 전국농민조합총연맹, 한국농업중앙연합회, 귀농인, 여성농업인 대표 등 140여명이 함께 했다. 경기도 안성에서 온 한 군은 대통령 앞에서 취미와 희망을 당차게 밝혔다. “트로트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며 대농(大農)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를 도와 지은 쌀(5kg)을 대통령께 전했다. 대통령은 답례로 ‘문재인 시계’를 선물했다.

행사 내용이 보도되면서 이날 한 군이 부른 ‘흙에 살리라’ 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떤 노래이기에 소년농부가 대통령 앞에서 불렀을까?’, ‘그 노래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언제, 어느 가수가 취입하고 히트했을까?’ 등 궁금증을 갖는 이들이 많다. 음원을 찾아 듣고 음반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노래 인터넷검색 건수도 늘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트로트곡으로 흥겹고 부르기 쉬워

‘흙에 살리라’는 김정일 작사·작곡, 이광일 편곡, 홍세민 노래로 1973년 3월 발표된 대중가요다. 홍세민이 23세 때 취입, 히트한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 트로트(Trot) 곡으로 리듬이 흥겹고 부르기가 쉽다. 노랫말은 일반 가요집이나 노래방엔 2절까지로 돼있으나 원래는 3절까지 만들어졌다.

이 노래는 1972년 여름 가수 서정우(1953년생)가 맨 먼저 취입했다. 서 씨가 원창가수인 셈이다. 그러나 빛을 못 봤다. 음반홍보가 잘 되지 않고 가수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그냥 묻히고 만 것이다. 그러던 중 2년간 무명시절을 보낸 23살의 젊은 가수 홍세민이 이듬해 이 노래를 취입, 성공했다. 향토노래로 귀농인들 애창곡이 된 이 노래는 1973년 오아시스레코드사가 음반을 내어 홍세민을 일약 스타로 만든 불후의 명곡이 된 것이다. 농촌 관련행사, 축제, 지방출신 사람들 모임, 향우회 등에서 자주 불리며 음반이 많이 팔렸다. 게다가 2006년 KBS-1TV 방송프로그램 ‘가요무대’ 선정 100곡 안에까지 들어갔다.

홍세민의 대표곡으로 재미를 본 ‘흙에 살리다’는 ‘농민대중가요’로 통한다. 제목과 내용이 흙에 묻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농민들 희망가이자 애향가(愛鄕歌)로 손색없다. 초가삼간, 고향, 흙, 정든 땅, 아기염소, 물레방아, 풀내음, 부모님, 효도 등의 노랫말 단어들이 잘 말해준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시대상황을 고려한다면 도시를 향해 시골을 떠났던 이농향도(離農向都)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를 준 노래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가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을 꿈꾸는 귀농·귀촌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맞춤형 곡이기도 하다. 모두들 도시 삶을 원하던 시절 우직하게 흙을 터전으로 살아온 이들이 많았고 그들 스스로를 달래줬던 가요가 ‘흙에 살리라’이다.

이 노래는 나온 지 46년이 됐지만 설, 추석 등 명절 때 방송전파를 자주 타고 유명인사들 애창곡으로도 인기다. 특히 농·산촌 출신들이 즐겨 부른다. ‘농부의 아들’로 불리며 흰 두루마기를 곧잘 입었던 강기갑(경남 사천출신)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자주 불렀다. ‘흙에 살리라’는 사투리로 노래 부르기 대회 때도 등장했다. 2016년 7월 16일 김해YMCA 1층 카페 티모르에서 (사)대한가수협회 김해시지부가 연 제1회 영남이색가요제(행사 부제 : ‘경상도사투리 트로트 경연대회’) 때 이 노래가 불려 관중들이 배꼽을 잡았다. 첫 번째 참가자인 이준향(68) 씨는 ‘흙에 살끼다’로 개사해 열창했다. “얼라 염새이 동무 삼아(아기 염소 벗을 삼아)… 흙에 살끼다 오매 아배 모시고 흙에 살끼다(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흙에 살리라)”로 바꿔 불렀다.

‘실제 작사가는 명창출신 가수 최세월’ 주장도

‘흙에 살리라’ 작사가는 가요 책, 인터넷 검색자료, 음반기재내용 등에 김정일로 돼있지만 설득력 있는 다른 주장도 없지 않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명창출신 가수 최세월(본명 최장봉)이 작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속도로 녹음테이프가수’로 활동한 그는 노래그룹 S.E.S.출신 가수(리드보컬) 겸 뮤지컬배우 바다(본명 최성희)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명창 박초월의 문하생이기도 하며 ‘흙에 살리라’를 작사했다는 것. 2절 노랫말 중 ‘내 사랑 순이’ 구절은 바다 어머니 이름(조복순)에서 따왔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2017년 8월 11일 오후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별별톡쇼’에서도 이런 내용들이 소개됐다. 2008년 5월 2일자 문화일보(가정의 달 특집-가수 ‘바다’와 아버지의 ‘행복송’) 기사에서도 최세월이 작사했다고 보도됐다. 그는 “이 곡은 내 고향 완도에서 살던 때의 이야기를 아내와 함께 만든 것”이라며 “당시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만든 노래고, 노래에 나오는 순이는 부인 조복순”이라고 공개했다. 그러나 시중 가요책의 ‘흙에 살리라’ 악보엔 그의 이름이 없다. 그는 2017년 6월 18일자 가톨릭평화신문과의 인터뷰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에서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도 사실 제가 작사했는데요, 내가 양보하고 손해 볼 때 그게 사랑입니다. 이익을 볼 때는 사랑이 없죠”라며 노랫말을 본인이 썼지만 김정일 씨에게 양보했음을 암시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해남 태생 홍세민, 1971년 데뷔한 ‘고참 가수’

이 노래를 부른 홍세민은 1950년 12월 5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48년 경력의 고참 가수’다. 서울 동대문상고, 동양공업전문대를 졸업한 뒤 1971년 ‘정 두고 떠난 사람’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흙에 살리라’로 가수활동을 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풍부한 성량, 훤칠한 키, 잘 생긴 외모에도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내지 못해서다. ‘왜 말 못해’, ‘사랑에 우네’, ‘한 백년’, ‘마지막 부르스’, ‘모국방문’, ‘젊은 날’, ‘고향처녀’ 등의 노래를 발표하고 음반까지 냈지만 대중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그는 아내(박영숙)의 권유로 기독교로 개종, 교회 집사가 됐다. 아내(박영숙)는 권사, 아들(홍창현)은 목사, 며느리(하경은)는 사모(師母)로 5대째 모태신앙인이다.

‘흙에 살리라’ 작사·작곡자 김정일(金靜逸, 본명 이종원)은 원로음악인이다. 1943년생으로 가수 김상아(본명 이재하) 아버지다. 부인은 ‘나는 못가네’ 곡으로 데뷔한 가수 박윤영이다. 둘 사이엔 2남 1녀가 있다. 그는 ‘흙에 살리라’ 외에도 ‘마음이 울적해서’(설운도 1989년), ‘여자는 눈물인가 봐’(이자연 1988년), ‘사랑하는 영자 씨’(현숙 / 공동작사 노주섭 1995년), ‘울산아리랑’(오은정), ‘가평아가씨’(오은정), ‘카멜레온’(박영규 1989년), ‘사랑 했어요’(김상아) ‘꼬마청바지’(김상아 1990년), ‘같이 있게 해 주세요’(동그라미 1982년), ‘못 잊을 건 정’(김연자 1976년 / 김보민 1989년) 등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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