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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에피소드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부회장 김화내과 김화숙 원장

  • 입력 2019.03.07 10:30
  • 기자명 신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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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부드럽고 진솔한 글로 잔잔한 감동과 미소를 선사해 온 의사수필가 김화숙 원장이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 ‘나의 열정 나의 소망’으로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했다.

지난 2012년 등단 이후 진료와 의계 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해 온 김 원장이 그동안의 글을 모아 ‘첫 수필집’을 낸 것.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뼛속까지 발가벗어야 진정한 수필이 나온다는 가르침을 지키려고 나름 노력하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에 드는 한 문장 나오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과 글이 다르고 감정을 담은 깊은 사고를 표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비록 서투른 글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제 용기를 내어 그동안 웅크렸던 소심함을 접고 한 발 더 발돋움하는 나 자신이 되겠노라고 다짐해 봅니다.”

시대를 관통하며 대한민국 의학의 주축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의사를 대표해 잘못된 제도에 맞서 싸우며 여 의사들의 표상이 되었던 김 원장이지만, 인생을 돌이키며 스스로 써 내려간 문장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축복 받은 밀알, 아름다운 의사가 되다!

김화숙 원장의 고향은 경상북도 대구, 위로 언니와 오빠를 두고 막내로 태어나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리고 김 원장은 한학자셨던 외할아버지에게 서예와 수묵화를 배웠고, 의사이신 아버지를 보면서 의사의 꿈을 꾸었다.

언제나 행복할 것만 같았던 김 원장의 가족,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시련을 겪게 된다. 일찍 남편을 잃은 김 원장의 어머니는 홀로 삼남매를 키워야 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서일까, 언니와 오빠는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가정교사와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늘 김 원장에게 부담이 되었다. 그러던 중 김 원장은 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학원사’ 장학생에 선발 되었고, 고등학교는 물론 이화여대 의과대학까지 무사히 마치게 된다.

그 후 ‘학원’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쳐 사회인이 된 사람들이 모여 1996년 ‘밀알 장학재단’을 출범시켰다. 장학금 수혜자들이 모여 다시 장학 재단을 설립한 예는 이곳이 유일무이하다.

김 원장은 “나는 축복 받은 밀알이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선사님의 뜻을 이은 우리 장학생들이 장학금을 쾌척하여 밀알 학생들을 키워 나가고 나도 그 대열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수필집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처음 김 원장이 가고자 했던 곳은 서울대학교, 하지만 기독교 정신이 있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선택한다.

힘든 의대 시절이었지만 감수성만은 감출 수 없었다. 또래의 친구들처럼 인생의 고민으로 진지한 토론도 해보고, 때로는 수업을 빼먹고 ‘숙녀다방’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본과에 올라가서는 학업과 의료 봉사를 하면서 의사의 모습을 갖춰갔다.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국립의료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수료하고 동 병원에서 혈액 종양내과 스태프로 근무한다.

이후 현재 서초구에 ‘김화내과’를 개원해 지금까지 대표원장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은 물론 서초구내과개원의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대한내과개원의사회 부회장, 이화여대 의과대학 동창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그리고 한국여자의사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의료계를 대표하는 여성 리더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잠시 낮잠을 자고 난 기분이에요. 인생은 한 장의 백지에 수많은 색칠을 해 그림을 그려가는 것인데,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시간이 흐르면 한 장의 그림이 되고, 어느 색깔이 가장 선명한지 무지개 속에 나타나겠지요.”

착한 딸로, 현명한 아내로, 강한 어머니로, 훌륭한 리더로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김 원장,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좋은 의사’라는 아름다운 색으로 표현되지 않을까.

의사,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쓰는 의사 수필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의사를 꿈꿔온 김화숙 원장, 하지만 그와 함께 글에 대한 자질도 분명 남달랐다.

초등학교 2학년 글짓기 시간에 쓴 ‘암탉’이 우수상을 받으며 주변의 관심을 받게 된다.

“부엌에 불을 때는 아궁이 속으로 암탉이 들어가서 알을 낳은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거기가 따뜻하니 들어간 것이겠지만 어린 저에게는 참 신기해 보였죠.”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는 글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을 모아 글쓰기 연습을 시켰고, 김 원장 역시 그 학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힘든 가정형편에 일찍 어른이 된 김 원장은 마냥 글쓰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 빨리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이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글을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 힘들고 바쁜 의사생활에서 숨을 돌리고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에피소드라도 습관처럼 놓치지 않고 적기를 좋아하는 김 원장, 그런 그가 2009년 비행기 속에서 겪은 일을 적은 수필 ‘창공에서의 진료’는 ‘한국산문’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게 만든다.

당시 김 원장은 비행기 안에서 심한 복통과 구토, 그리고 설사로 탈진한 상태의 63세 미국인 여성을 만나게 된다. 장염이나 단순 위경련을 의심했지만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심장 하부에 오는 급성심근경색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 긴장된 순간에 심장내과의사인 남편과 함께 슬기롭게 극복한 장면을 감동과 위트로 적은 수필이 바로 ‘창공에서의 진료’다.

이 글은 김 원장을 수필가로 등단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의사에게는 모든 공간이 진료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후 김 원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1960~1980년대 학번까지 동문 의사인 김태임, 유혜영, 임선영, 김금미 등 다섯 명의 현역 의사가 모여 집필한 수필집 ‘그들과의 동행, 다섯 여의사의 사랑법’을 출간하면서 진한 감동으로 다시 한 번 화제에 오르게 된다.

현재도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 원장, 하지만 지금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 많다고 고백한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나의 뼛속까지 다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죠. 그리고 수필은 꽃길만 걸어온 삶의 나열이나 오로지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에는 굴곡이 있는데 한 권의 수필집이 만들어지기에는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있어야겠지요.”

김 원장의 말처럼 ‘나의 열정 나의 소망’을 읽고 있노라면 연민과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필자에게는 ‘힘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또 감동과 분노,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한다.

삶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글 쓰고 싶어…

‘나의 열정 나의 소망’에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독자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글은 바로 ‘슬픈 이야기’다.

1998년 11월 갑작스런 오빠의 사망소식, 김 원장은 ‘우리 가족의 가장 아픈 상처’라고 회고한다. 서울 치대 학장으로 있던 김 원장의 오빠가 행사 모임에 가던 중 첫눈이 내린 후 빙판이 된 고속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져 변을 당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변고, 하지만 이들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자살로 둔갑한 어이없는 사망원인이었다. 교통사고가 아닌 자살로 결론이 나면 보험회사는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운전자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김 원장 가족은 치를 떨어야 했다. 결국 사인을 밝히기 위해 12월 차가운 땅속에 고인을 다시 파헤쳐 부검을 해야 했고, 교통사고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하지만 그런 확실한 증거가 법정에서 인정을 받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걸려야 했다. 그렇게 승소를 했고, 그때 받은 보상금의 절반은 ‘故 김광남 장학금’으로 서울대 치과대학에 기부했다. 김 원장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오빠 , 초등학생이던 어린 김 원장을 자전거에 태우고 가정교사를 하던 집에 가서 동생이라고 자랑하며 해맑게 웃던 모습, 고등학생 시절 오빠의 손을 잡고 명동을 걷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지금의 김 원장이 있을 수 있도록 학원사 장학생 선발공고를 전해준 것도 바로 그 오빠였다. 든든한 아들, 믿음직한 남편, 자상한 아빠, 의학과 대학발전을 위해 노력한 의학계의 거목으로 기억되는 故 김광남 학장, 그의 인생은 모든 색이 아름답게 빛나는 무지개라고 김 원장은 회상한다.

오빠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만큼이나 이 수필집에는 한국 여의사에 대한 김 원장의 애정이 묻어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김 원장은 대한민국 여성의사를 대표하는 강한 리더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이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이 되기까지에는 정말로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다.

“여의사 집단이라고 호락호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죠. 대충대충이나 슬렁슬렁이라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떤 권력이나 압박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한국여자의사회입니다.”

한국여자의사회가 60주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달려가고, 세계여자의사학술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등을 통해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 여의사가 가지고 있는 저력이라고 김 원장은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김 원장과 같은 훌륭한 리더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수필은 그의 기록이자 그의 역사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여의사를 비롯한 모든 의사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만의 고민과 고통을 솔직한 인간적 표현으로 문턱을 낮추고 거리를 당겨 일반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했다.

‘나의 열정 나의 소망’은 의사를 위한, 의사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의사수필가의 진솔한 이야기다.

인생의 빛나는 무지개를 완성하기 위해 김 원장은 처음 진료실에 앉았던 마음 그대로 환자를 대하고, 아름다운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피소드를 찾고 있다.

그리고 ‘나의 열정 나의 소망’을 통해 김화숙 원장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열정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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