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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섯 살배기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9.03.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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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소년은 초등학교 1학년생답지 않게 의젓한 여섯 살배기였습니다. 누나와 함께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 학업성적도 좋았습니다. 최근 들어 잠을 잘 못 자고 학교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기 전까지는…

소년의 어머니 : 6개월 전부터 우리 아이에게 ‘조사하고 또 조사하는’버릇이 생겼어요. 부엌에 있는 가스오븐레인지가 완전히 잠겨져 있는지 확인하고 자러 갔다가도 ‘행여나!’하는 불안감에 다시 부엌에 가는 거예요. 이러기를 어떤 경우엔 자정이 넘도록 반복하다 지쳐 잠이 들곤 하지요.

소 년 : 저도 제 행동이 ‘이치에 맞지 않는 지나친 걱정’이란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 불안한 마음을 제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데 화가 나고 창피해요.

암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 받아 온 어머니

성장력(기록)을 조사해보니 엄마의 임신, 분만, 출생 후의 상태가 모두 정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력 조사를 하다가 저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소년의 엄마는 오랫동안 ‘암에 대한 불안증세’때문에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몇 번이나 의사를 찾아가 유방 사진을 찍거나 자세한 진단을 받았으나 안심은 그때뿐이었습니다. ‘행여나 의사나 기계가 놓치지는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에 그녀는 몽우리가 만져지는지 꼼꼼하게 의사가 가르쳐준 자가진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가진단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그래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오랫동안 서 있기가 힘들어 화장실 마룻바닥에 반듯이 누워 한 시간 반, 혹은 두 시간에 걸쳐 자신의 유방을 검사하였습니다. 횟수도 점차 늘어갔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도 엄마는 문을 잠가 놓은 채 화장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와의 만남을 끝까지 거부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이 학교생활까지 영향을 받자 저에게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런 어린아이들은 아직 정신과 의사에 대한 편견이 없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 무척 안심을 하여 의사와의 약속 날짜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미 증세가 많이 호전될 때도 있습니다. ‘행여나 아이의 장래에 나쁜 기록이라도 남아서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아니면 ‘아이에게 열등감을 심어주지나 않을까?’하는 기우 때문에 많은 부모님은 저절로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지요. 다행히도(?) 대부분의 정신적 질환은 아이들의 학교성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마지못해 소아 정신과 의사를 찾게 됩니다.

‘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엄마를 화나게 했을까?’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뭘까?’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이 분명해’

‘죽고싶다!’

엄마는 왜 나를 미워할까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저는 소년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그간 소년을 괴롭혔던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엄마가 암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곤해하거나 우울해있으면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러 엄마를 화나게 했을까?’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간혹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뭘까?’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그전에는 명랑했던 엄마가 자꾸 화장실에만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소년을 미워하는 것’이 분명한 듯 했답니다. 엄마에게 화가 나니 모든 세상이 싫어지고 언젠가는 죽고 싶은 마음도 든 적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오븐을 켜놓아 일부러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엄마의 불안감이 소년에게까지 영향

우선 엄마와 소년이 저와 함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여러 가지가 무섭고 조절하기 어렵다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였으며, 엄마도 자신의 강박증세를 치료받기 위해 약물 투약과 상담을 받을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소년의 엄마는 그녀의 부모로부터 항상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두 자녀가 모두 학교에 가 버리자 그녀에게는 많은 빈 시간이 생겼고, 본인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더욱 바빠진 남편은 아내의 심정을 눈치 채지 못했고, 아내의 침묵을 단순한 ‘Seven Year Itch’(결혼 후 7년쯤이 지나면 부부 사이가 벌어지기 쉽고 근질근질한 증세가 와서 드디어 이혼까지 갈 수 있다는 서양할머니들의 속담)쯤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을 조절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그녀의 전쟁은 시작된 듯합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잃을까봐 불안해진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생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외할머니가 갖고 계셨던 고소공포증의 유전자가 소년과 소녀의 어머니에게서 하필 이때에 이런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앞으로 같이 생각해보자는 숙제를 주었습니다.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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