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나무 II

  • 입력 2019.03.18 11:00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출처-Google
▲ 출처-Google

“누나, 뭐하노?”
“꼬꼬재배 놀이 해. 어제 뒷집 화선네 작은언니 시집갔지. 그 놀이 해보는 거야.”
누나는 솔잎으로 ‘베 짜기 놀이’를 하다가 말고 ‘꼬꼬재배 놀이’를 시작했다.

[엠디저널]봄날이 따뜻하여 내가 뒷산에서 물강1을 캐오고, 할미꽃도 꺾어왔다. 그걸로 누나는 예쁜 ‘물강 각시’를 만들었다. 세 갈래로 땋은 물강 잎 머리채를 위로 틀어 올리고, 마른 풀잎으로 비녀까지 꽂았다. 봄에 새로 돋아난 물강 잎 머릿결은 반들거렸다. 할미꽃 꽃잎을 뒤집어 뒤에 모아 족두리도 만들었다. 잎 속에 수줍게 숨어 있던 노란 할미꽃 꽃술들이 밖으로 나왔다. 물강 뿌리 이마에 족두리까지 꽂았으니 이제 ‘물강 각시’가 다 만들어졌다.

내가 뜻도 모르면서 “북향재배(北向再拜)!”라고 하자, 누나는 할미꽃 족두리를 쓴 ‘물강 각시’와 솔방울 달린 마른 ‘솔가지 신랑’을 맞절 시켰다. 요즘처럼 어린이용 장난감도 없고 동화책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육십년 전, 시골아이들이 노는 모습이다.

아련한 기억이지만 그때 전통혼례식을 떠올려본다. 마당 한가운데 차일(遮日, 햇볕을 가리기 위한 커다란 천막)을 치고 다리가 긴 혼례상(床)에 아담하게 솔가지와 대나무와 향나무를 꽂고 그 위에 색종이까지 걸쳐 꾸며놓았다. 멍석을 몇 개 깔고, 한가운데는 돗자리를 폈다. 돗자리 밑에는 도토리와 피지 않은 솔방울을 몰래 깔아놓았다. 신랑이 도토리나 솔방울에 미끄러지는 실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연지곤지 새 각시는 수줍은지 손까지 덮은 긴 소매 자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초록, 빨강, 노란 색으로 단장한 고운 옷 위에 원삼까지 걸쳤다. 새 신랑은 사모관대에 푸른 관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각형 망사를 펼친 나무기둥을 두 손으로 잡고 서있다. 고개 숙인 어린 신부는 수줍어했고 신랑은 싱글벙글 웃고 있다. 하례객들이 신랑각시를 보려 발돋움을 했다.

“초례(初禮) 때 신랑이 먼저 웃으면 첫딸이라던데!”
“첫딸이면 살림 밑천 아닌가?”
갓을 쓴 선비가 낭랑하게 홀기(笏記, 식의 순서를 알리는 말)를 “북향재배‘라고 외친다.

솔가지를 꽃은 이유는 솔잎을 부부애의 상징으로 여겨서다. 늘 푸른 이엽송(二葉松)인 한국 소나무는 한 잎자루 안에서 두 잎이 나있고, 그 잎이 늙어서 떨어질 때에도 같이 떨어지기에 “부부는 솔잎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 생겼다 한다. 그래서 소나무를 ‘음양수(陰陽樹)’라 한다. 북향재배는 처음 사모관대인 관복을 입으니 임금님께 인사를 드리는 예로, 요즘으로 말하면 국기에 대한 경례 쯤 된다고나 할까.

어릴 적 뻐꾸기 올 무렵인 5월 하순에 고향 뒷동산에 올라가면 간식거리가 있었다. 햇순이 힘차게 솟은 솔가지를 잘라 껍질을 벗겨냈다. 물기를 듬뿍 먹은 솔가지는 훌렁훌렁 겉껍질이 잘 벗겨졌다. 뽀얀 속껍질이 들어나면 혀로 맛보고 솔향기가 짙은 달콤한 햇순 송기(松肌)를 먹었다. 큰 소나무에서 두꺼운 굴피를 벗겨내고 속껍질을 네모나게 오려내면 많은 양의 송기를 채취할 수 있다. 이걸로 송기떡을 해먹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소나무와 뒤엉키고 어울려 살아왔다. 보통 아이들이 철없이 송기나 꺾어 먹을 시기에, 총명한 한 역사적 인물이 어린 시절 지은 유명한 소나무 시(詩)와 그 사연이《성호사설(星湖僿說)》에 전해오고 있다. 조선 광해군 때 영의정까지 올랐던 정인홍(鄭仁弘)이, 어렸을 때에 산사(山寺)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마침 경상감사(監事)가 그 산사에 묵고 있었는데, 밤에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보니 과부집의 어린 아이였다. 기특하게 여겨 묻기를 “네가 시를 지을 줄 아느냐?”하니 처음에는 인홍이 사양하였다. 감사가 탑 옆에 있는 어린 소나무를 운(韻)으로 불러 시를 짓도록 하자, 인홍이 응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키 작은 소나무가 탑 서쪽에 있으니 短短孤松在塔西
탑이 높아 소나무가 더욱 낮아 보이는구나 塔高松下不相齊
외로운 소나무가 너무 작다고 말하지 마라 莫言今日孤松短
훗날 소나무가 자라면 탑이 도로 낮으리 松長他時塔方低

감사가 이 글을 보고 탄복하며 말하기를 “장차 너는 반드시 귀하게 되고 이름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뜻이 지나치니 경계함이 좋을 성싶다.”라 했다 한다. 후일 그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의병을 일으켜 공도 세웠다. 그러나 그의 논지가 너무 과격하여 마침내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참형을 당했다. 그의 삶은 자신의 원칙을 위해 조금도 굽힘없이 살아간 조선조 선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도 하는 평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반성하고 조심하는 공경(恭敬)심이 부족했다는 평도 있다. 그의 생을 마치 소나무와 같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 강하고 고고하지만, 솔잎이 강한 산성이라 송이버섯 같은 소수만이 소나무와 같이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소나무가 성하면 숲이 망한다는 비난도 듣는다.

서양에도 ‘소나무가 성(盛)하면 로마가 쇠(衰)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로마의 콜로세움 근처의 소나무는 어린나무라도 엄청나게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성목(成木)은 높이나 위용이 대단했다. 그러나 산악지대 소나무는 우리 소나무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프랑스의 소나무들은 프랑스인들처럼 할 말이 많은지 밑 둥지부터 잔가지가 많게 자랐다. 독일 소나무는 평지 숲에서 잔가지도 없이 아우토반처럼 미끈하게 자라, 위쪽에만 푸른 가지들이 무성한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금송(金松)처럼 소나무는, 따뜻한 지방으로 갈수록 잎이 두껍고 넓었다. 하와이 소나무는 겨울이 없어서인지 미끈하게 위성류 나무처럼 자랐다. 가이드가 소나무라 하기에 의심이 나서 냄새를 맡아보니 진한 송진 냄새가 났다.

소나무는 양성(陽性) 나무라 일사량만 충분하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높은 산마루에서도 군자(君子)처럼 고고하다. 설악산에서 보듯이 소나무는 척박한 산등성이에 많이 분포한다. 소나무는 기름진 곳에서는 낙엽활엽수종에 밀려나는 추세다. 우리 소나무 중에 금강송(金剛松)은 극한상황에서 자라는 형질이 단단하고 뛰어난 세계적 품종이다. 경북북부나 영동지방처럼 겨울에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 눈이 적게 쌓이게 가지가 짧고 가늘며 줄기가 곧은 소나무만 살아남은 환경 적응품종이라 한다.

내 고향 집에서 20여리 북으로 가면 청량산 자락으로 최고의 금강송인 춘양목이 자란다. 선대 어른들께서 춘양목을 가져와 고향 산에 계획적으로 조림하였다. 이 나무들이 수령 백년이 넘는 낙락장송이 되었고 아직 십여 그루 이상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안의 표식이나 다름없었던 ‘장구말 큰소나무’가 작년에 소나무재선병으로 희생되었다. 키가 30여 미터 이상이었고 둘레가 한 아름 반이 넘었으며, 벌써 관으로 쓸 수 있었지만 아끼던 터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빼어난 자태가 산비탈 나무들 중의 어른이었다. 솔잎혹파리 피해도 견뎌냈던 이 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리자, 방역을 위해 작년에 산림당국에서 흔적도 없이 뿌리까지 태워버렸다. 이 소나무를 지켜내지 못해 정말 송구스럽다. 남은 소나무라도 꼭 지켜내고 싶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