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그날의 항거’를 기억하는 문화계

  • 입력 2019.03.20 10:25
  • 수정 2019.04.29 12:22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찬미가, 1907」14장 「애국 찬송」 PATRIOTIC HYMN
▲ 「찬미가, 1907」14장 「애국 찬송」 PATRIOTIC HYMN

[엠디저널]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올해 문화계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문화계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나 독립군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열사, 온몸으로 그 시기를 통과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와 오페라, 뮤지컬로 선보인다. 작품들은 영화 ‘말모이’, 창작 뮤지컬 ‘영웅’, 국립극단의 연극 ‘1945’를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로 초연하는 등 다양한 장르로 이어진다.

또한 서울 곳곳의 역사적 장소들이 이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단장되고 있다. 태화관터, 삼일대로 등 3•1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을 기념 공간으로 재조성하는 기념사업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의 한국 거주지 ‘딜쿠샤’는 현재 복원공사를 추진 중이다. 3•1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태화관길에서는 국악, 재즈, 기악 등 다양한 거리 공연이 열리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은 ‘3•1운동 10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애국가였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한다.

‘만세운동’이란 나라를 오래도록 유지시켜 달라는 기원을 구호로 하여 저항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3•1운동에서의 ‘만세’는 ‘조국이여 만 년 동안 계속될 지어다’라는 뜻으로 저항의 한 수단인〈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시위는 처음부터 무저항적인 것이었다. 군중들은 무장하지 않았고,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곡에 맞춘 한국의 국가를 부르고 국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메웠다. 과거 국가(國歌)가 없던 시절, 우리는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가의 노랫말을 붙여 부르곤 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안익태가 1935년 애국가를 작곡했고, 그 이듬해 한국환상곡을 완성했다. 1948년 안익태의 ‘한국환상곡(Korea Fantasy)’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올드 랭 사인’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사용되었다.

지나간 아름다운 날들을 위해

▲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올드 랭 사인’은 작별을 뜻하는 스코틀랜드의 민요로 스코틀랜드의 국민 시인으로서 존경받는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에어셔(Ayrshire)지방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청년으로 농사일보다는 당시 유럽 구석구석 기운이 스미던 계몽주의적 사상에 영향을 받아 창작을 하며 답답한 시절을 견뎌왔다. 그는 프랑스혁명에 공감하여 민족의 자유 독립을 노래하여 당국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고, 그의 시는 18세기 잉글랜드의 고전 취미의 영향에서 벗어나, 스코틀랜드 서민의 소박하고 순수한 감정을 표현한 점에 특징이 있다.

이 노래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로버트 번스가 재구성한 시에 윌리엄 쉴드(William Shield, 1748-1829)가 곡조를 수집하여 그의 오페라「로시나」‘Rosina, 1781’에 사용하면서부터이다.

매년 송년의 밤, 스코틀랜드 의회는 여야 의원들이 함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합창하는 전통이 있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스코틀랜드 어로 영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오래 전부터, old long since’이며, 의미상으로는 ‘지나간 아름다운 날들(since long ago or for old times’ sake.’ 정도로 해석된다.

또한 1953년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애수(원제: Waterloo Bridge, 1940)’에서 비비언 리의 청초함과 로버트 테일러의 중후한 남성미가 돋보였던 비극적 러브스토리의 대미를 장식했던 곡으로 대중들에게 다시 소개되며, 한국에서는 1940년대 아동문학가 강소천이 한국어 번역 가사를 붙이게 되며 이후 졸업식에서 환송곡으로 많이 불리게 되었다.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사는 스코틀랜드 인들은 로버트 번스의 생일인 1월 25일 저녁을 ‘번스의 밤(Burns Night)’이라 부르며 지금도 국경일처럼 기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경일을 기념한다고 하면 국가나 기관의 행사로 이루어지고 정작 우리들은 그 의미를 잊은 채 그저 공휴일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필자가 영국 유학 시절 경험했던 번스 나이트의 기억은 정말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따뜻한 만찬이 있는 전원주택에서도, 방학 중 남아있는 학생들이 몇 없는 기숙사에서도 그들은 소박하게나마 그날을 기억했다.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해 번스의 작품을 감상하며 스코틀랜드 전통 요리 중 하나인 하기스(haggis, 양의 내장을 잘게 다져서 곡물과 채소 등을 섞은 것을 양의 위장에 채워 삶는 요리), 순무, 감자 등으로 이루어진 번스 서퍼(Burns Supper)를 먹으며 순수하게 그렇게 그를 기억했다.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에는 이 노래의 멜로디에다 애국가 가사를 붙여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 우리에겐 너무나 각별한 노래이다. 요즘 우리들은 국경일의 의미를 잊고 지낸다. 청년들의 시대정신, 역사 인식, 그리고 깨어 있는 양심으로 그날의 정신을 기억하자.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