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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음주자의 집안 이야기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9.04.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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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 온 10살짜리 백인 소년은 줄곧 저에게 “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 볼 필요가 없어요!”라고 항의하였습니다. 소년의 불평 원인은 다른 대부분의 환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소아정신과 의사(Child Psychiatrist)’란 본래 17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이 소아과 의사에게 신체적 검진을 받는 것처럼 이들에게 정신적 감정이나 치료를 행하는 특수분야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의사를 찾아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대부분 환자 주위의 사람들, 즉 선생님, 부모님, 경찰관, 친구 등등 ‘옆에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강제로 보내어지기 때문입니다. 10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해 보이는 소년의 본심을 알기 위해서 두 분의 부모님께 잠시 나가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음주병을 치료하며 의사를 불신하게 된 부모

제가 ‘혹시나!’하고 걱정했던 것처럼 두 부모님은 소년을 혼자만 남겨두고 나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였습니다. 과거에 여러 명의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들을 거쳐 왔고, 그들에 대해서 많은 불신감을 갖고 있는 부모님들은 대부분의 의사들을 불신하기가 쉽습니다. 본인들이 갖고 있던 음주벽이나 우울증이 만성병인데다가, 의사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고, 환자 본인이 치료에 능동성을 보이지 않는 한 ‘아무 효과를 못 보는 것’이 상례이니까요. 다행히 40세가 넘으면서 철이 들고 환자 자신들의 ‘치료집단’인 A.A(Alcoholics Anonymous)를 통해서 음주병을 조절하게 된 후에도 이들은 의사나 약품을 불신하는 수가 많습니다.

술을 끊고 나서 부모님은 나를 미워해요

간신히 부모님을 진정시켜서 내보낸 후에 소년이 억울해 하면서 열어놓은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소년의 부모님들은 남들이 별로 눈치채지 못하도록 직장생활을 해온 만성알코올 중독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년은 아주 최근에까지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소년이 태어난 후부터 익숙해 온 부모님은 ‘가끔 이성을 잃고, 어린애같이 행동하는 친구’같은 존재로써, 소년에게 잔소리를 한 적이 없었답니다. 오히려 소년이 가끔은 끼니를 준비해서 부모님들을 챙겨드리면 고마워하는 ‘마음 좋은 분’들이었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갑자기 부모님 둘 다 ‘술을 끊고’부터는 자신을 ‘어린이 취급’할 뿐 아니라 걸핏하면 야단을 치고, 벌을 세우는 게 아닙니까? 그야말로 소년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변화가 생긴 셈입니다.

사소한 변화에도 고통을 느끼는 어린이들

소년의 허락 하에 ‘전 가족의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부모님들이 ‘알코올 중독증’에서 헤매는 동안에 ‘어른처럼 성장하여서 혼자 자신을 돌보아야 했던 소년’에게 사죄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늦게나마 병과 싸우면서 ‘올바른 부모 노릇’을 하려고 노력하는 부모의 참뜻을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사고능력이 아직은 어른스러운 ‘이성적 유추’를 할 수 없는 ‘굳어진 사고(Concrete Thinking)’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부모님의 노여움을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감정상태를 이해시켰습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정신차린 부모님’의 눈에 비친 ‘10살짜리의 아들’을 훈계하는 부모님을, 소년은 갑자기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여겨서 자살을 기도했던 것임을…

아무리 좋고 바랍직한 변화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설명이나 준비가 없는 경우에 어린이들이 느끼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게 한 예입니다.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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