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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위 나무

  • 입력 2019.04.25 11:25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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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처서를 지난 산기슭에 가지마다 붉은 과일들을 소복이 익어가고 있다. 아가위나무다. 소년들은 아그배로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엄지만한 달콤 쌉쌀한 질배를 한 입 가득 넣었다가, 씨만 툭하고 뱉어낸다. 애광나무 높은 가지에 열린 동배는 더 맛있어서 장대질이 한창이다. 올해 유난히 많이 산사나무 열매가 열렸나보다. 풀 먹이러 온 소를 돌보지 않으니 워낭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가을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소 먹이는 아이들은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른다.

당체나무는 이름도 많다. 아가위, 아그배, 질배, 애광나무, 산앵두, 동배나 산사나무가 모두 같은 나무다. 이름이 많은 것처럼 동서양을 통하여 아가위 나무에 얽힌 사연도 많다. 먼저 아가위 나무를 소재로 한 시 중에서 가장 오래된 한시(漢詩)인 <당체지화>를 감상해보자.

산앵두 고운 꽃은(당체제화)  바람에 나부끼네(편기반이 偏其反而)
그대 생각나지만은(기불이사 豈不爾思) 그대 집이 너무 멀구나(실시원이 室是遠而)

논어 자한(子罕)편에 소개된 시이다. 꽃잎이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성정(性情)을 되살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고운 아가위 꽃 같은 그대를 그리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대 집이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 시 속에 담긴 순수한 인간의 감정을 깊이 가늠하였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로다. 그렇지 않다면 집이 멀다하여 어찌 문제가 되리요(자왈, 미지사야 부하원지유/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라 했다. 이처럼 공자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아가위 나무는 예사롭지 않은 사연을 남겼다. 앤 공주와 헨리 8세의 비련에 나오는 꽃이었다. 영화 <천일야화>에서 파경에 이른 앤 공주가 마침내 처형장으로 나갈 때, 오월 궁전의 정원에는 아가위 꽃이 만발하였다. 헨리 8세가 앤 공주를 찾아가 청혼을 하던 3년 전 그 때에도, 아가위 꽃이 만발했다. 이 비련의 현장인 궁궐의 명칭도 ‘May - flower 궁’이었다. 형장으로 가는 작별 대화에서도 헨리 8세가 “Mayflower 로군” 이라 했다고 한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난 배의 이름도 ‘Mayflower호’였다. 아가위 나무를 영어로 ‘mayflower’라 한다.

아가위 나무에는 이른 봄부터 반짝거리는 초록 잎들이 제비부리처럼 솟아난다. 새로 돋은 가지마다 꽃망울이 네다섯 개 올라와, 온 나무가 한꺼번에 핀다. 새순마다 작은 꽃다발을 만든다. 아가위 꽃은 성질 급한 이른 봄꽃들이 모두 진 후,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여왕처럼 피어난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꽃이지만 꽃향기는 아주 진하여 벌과 나비들이 항상 들끓는다. 앙증맞은 꽃모양과 꽃향기에 이끌릴지라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 빈틈없이 가시가 잎 뒤에 숨어서 호위무사처럼 여왕님을 지키고 있다. 이런 모습이니 여왕의 면모를 가진 꽃이라 하겠다.

아가위 꽃 같은 한 여왕이 있었다. 헨리 8세와 앤 공주 사이에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다. 모친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처음에는 사생아로 선언되었지만, 나중에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초를 다진 위대한 통치자였던 그녀는 천재였다. 특히 어학과 문학 부문에서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만약에 통치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시인이나 저술가로도 이름을 날렸을 법하다고 한다. 엘리자베스가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임은 떠나는데(On Monsieur’s Departure)〉라는 시의 첫 번째 연을 소개한다.

나는 애통해하지만 감히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I grieve and dare not show my discontent,)

나는 사랑하지만 아직도 미워하는 척하려고 합니다.
(I love, and yet am forced to seem to hate,)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I do, yet dare not say I ever meant,)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재잘거립니다.
(I seem stark mute but inwardly do prate.)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I am and not, I freeze and yet am burned,)

내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Since from myself another self I turned.)

공자는 논어 양화(陽貨)아들 백어(伯魚)에게 “너는《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하였느냐? 그렇지 않다면 마치 담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다”며 시를 공부하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시를 배우면 일으키게 하고 살피게 하고, 모이게 하고, 탓하게 하고(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가까이는 어버이를 모시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하며(邇之事父, 遠之事君),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多識於鳥獸草木之名)”고 했다.

근본 시골출신이라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알고 싶었기에, 나도 문학을 가까이 할 수 있었을 성싶다. 재작년 도심에서 대모산 자락으로 이사 왔다. 새 아파트 앞 공원을 조성하며 백여 그루의 아가위 나무를 심어놓았다. 내년 봄에는 아가위 꽃향기가 진동할 성싶다. 꽃그늘 아래서 주남과 소남부터 읽어보련다. 일으키고, 살피고, 모여서 탓하는 시늉이라도 낸다면, 담벼락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사람에서 탈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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