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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람풍 지역에 14년째 의료선교 이어온 대한의료영상의학과의원 원장 겸 순천향대학병원 최득린 명예교수

[엠디저널]“처음 인도네시아 람풍 지역을 섬기기로 했을 때 저희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5년씩 다섯 번, 그러니까 25년을 계획했지요. 아니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니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보다 열매는 훨씬 더 빨리 맺혔습니다. 그 열악했던 람풍에 현대식 병원이 생기고, 또 믿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루고자 했다면 아마 5년도 채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분이 이미 마련한 계획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의심 없이 따를 뿐이지요.”

올해로 14년째 인도네시아 반다르 람풍 지역에서 의료선교를 이어가고 있는 순천향의대 명예교수 겸 대한의료영상의학과의원 최득린 교수, 그에게 의사라는 직분은 하나님께 받은 소중한 달란트이자 섬김의 도구라고 말한다.

머나먼 이국땅 인도네시아를 섬김의 지역으로 결정했을 때, 최 교수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을 되뇌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그리고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년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분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최 교수. 지금까지 많은 일을 이뤘으나, 앞으로 보게 될 더 큰 변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부풀어 있는 최득린 교수와 함께한 14년간의 기록을 따라가 보았다.

‘복음이 닿지 않는 땅’ 그곳을 향해!

최득린 교수가 봉사의 영역을 국내가 아닌 국외로 돌리게 된 이유는 우연한 기회에 마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들르면서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존 헤론(John W. Heron) 선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선교사이자 그곳에 최초로 묻히신 분입니다. 1885년 조선에 들어와 1890년 7월 33세의 젊은 나이에 전염병 환자를 돌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살아생전에도 ‘나의 사명은 의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의사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고,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나의 사역은 참 보잘 것 없었지만, 그것은 모두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의 삶을 보며 저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테네시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연소 교수로 초빙되었으나 ‘땅끝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아무도 모르게 조선을 향했다는 존 헤론 선교사는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랑을 실천한 용기 있는 제자의 표본이었다.

존 헤론 선교사에게 감명을 받은 최 교수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땅’을 섬기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가 다니는 온누리 교회의 서빙고 공동체와 함께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결정한 지역은 인도네시아의 반다르 람풍이었다. 람풍은 수마트라섬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최남단의 지역으로 자카르타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그리고 빈민 지역 중에서도 최빈민 지역으로 복음은커녕 의료의 혜택조차 열악하기 그지없던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 최득린 원장과 온누리 교회 서빙고 공동체는 2006년 8월 의료선교의 원대한 꿈을 품고 인도네시아 람풍을 향해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하나님의 일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그분의 일이지만 처음부터 쉽게 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련은 너무 빨리 왔다. 출국장에서 세관이 그들의 길을 막아서며 환자에게 필요한 약과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담은 20개의 상자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이 물건들을 여기서 팔려는 것이 아니냐며 트집을 잡았는데, 역시 원하는 것은 돈이었다. 상자 가격의 10%를 내면 통과시켜주겠다는 것, 물론 쉽게 해결하자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득린 교수는 ‘하나님의 일을 부끄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세관의 책임자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당당히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는 “당신네 나라의 사람을 돕고자 온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짓이냐, 세관의 책임자로서 부끄럽지 않으냐”고 호통을 쳤다. 최 교수 일행은 정상적으로 세관을 통과했고, 람풍을 향한 여행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람풍에 무사히 도착한 최 교수,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담했다. 수많은 환자가 이미 이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장사진을 펼치고 있었고, 여독을 풀 새도 없이 바로 진료에 들어가야 했다.

환자를 보던 중 생각지 못한 일이 터졌다. 최 교수 일행을 인솔하는 담임 목사가 지역 청년들과 농구를 하다가 손을 다친 것이다. 아무래도 골절인 것 같아 그 지역에 있는 ‘와루요 병원’을 찾았다. 먼저 급한 것이 X-ray라 검사실에 들어선 순간 최 교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1960년산 도시바 기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얼마나 낡았던지 기계 전체는 온통 페인트 자국으로 과연 찍히기나 할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오히려 변변한 병실조차 갖추지 못한 단칸방 같은 병원에서 그나마 그런 장비라도 있는 것이 고마울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게 인도네시아 람풍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약 1,3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한 서빙고 공동체 의료선교단은 무사히 귀국했다.

거참, 아실만한 분이 그러십니다!

최득린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지만 와루요 병원의 X-ray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당장 하늘에서 기계가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일단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영상의학과 모임에 참여한 최 교수, 마침 의료용 영상기기 업체 대표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최 교수님, 올여름 휴가는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여차여차해서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오셨으면 됐지 왜 얼굴이 그리 무거우십니까?”

“그게 그럴 일이 있습니다. 영 마음이 편치 않네요.”

말이 나온 김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노라고 사정을 얘기했고, 그날은 그렇게 모임이 끝났다.

그런데 며칠 뒤 그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최 교수님, 저희 회사가 문막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으니 구경 한 번 오시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 교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목사님을 모시고 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저는 교회 안 다니지만, 교회 다니는 직원들이 많으니 와서 기도라도 해주십시오.”

그렇게 약속을 잡아 공장 견학을 갔고, 공장을 다 둘러보고 나자 그 대표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시제품이 있는데, 그중에 마음에 드시는 기계 하나 골라보시지요.”

갑자기 기계를 골라보라니, 최 교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쓸만한 중고기계 있으면 하나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라고 대답을 했다.

“아니 최 교수님, 이럴 때는 딱 보고 제일 좋아 보이는 거로 달라고 하는 겁니다. 거참, 아실만한 분이 그러십니다.”

그렇게 그리던 X-ray 장비가 생긴 것, 그리고 배송과 설치, 그리고 교육 일체를 그 회사에서 해주었고, 지금도 그 지역에서는 가장 좋은 장비로 꼽히고 있다.

의료용 영상기기 업체 대표는 바로 지금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자 ㈜리스템의 문창호 대표이사로 지금도 최득린 교수는 그때를 생각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최 교수님의 기도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람풍으로 간 X-ray 장비는 와루요 병원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다음 해에 최득린 교수 일행이 와루요 병원을 찾으니 병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스텝이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배를 드리고 난 와루요 병원의 파란 병원장(Dr. Paran)이 웃으며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님, 저희에게 요즘 새로운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같이 기도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실 겁니다.”

“요즘 전 직원들이 함께 CT를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들어주시겠지요?”

“…”

파란 병원장의 말의 뜻은 알겠는데 도대체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X-ray도 정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아닐 수 없지만, 정말이지 CT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지만, 최 교수는 돌아와서도 파란 병원장의 말이 마음에 걸려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의지할 곳이라곤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또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최 교수는 CT 업체의 직원을 만났다. 최 교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기분으로 물었다.

“혹시 중고 CT 기증받을 곳이 없겠습니까?”

“이번에 창원 파티마병원으로 저희 기계가 들어갑니다. 거기 있는 CT도 쓸만한데 그곳에 새로 개업하시는 원장님께서 구매하시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 교수는 무작정 창원 파티마병원 베네딕토 수녀회의 원장 수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장 수녀님, 그 CT 저희에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람 살리는 데 쓰겠습니다.”

“우리에게 CT가 있기는 한데, 그보다 혹시 누구신지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은 최 교수는 자신이 순천향대병원 아무개라고 소개를 하고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제가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이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막무가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원장 수녀님의 인품이 너무 좋으신 분이라 잘 받아주셨지요. 제가 사정을 말씀드리니 웃으시면서 서울로 오실 일이 있을 때 찾아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얼마 후 원장 수녀에게 이번 토요일에 서울에 회의가 있으니 한남동으로 들리겠다는 전화가 왔다. 원장 수녀는 모시러 가겠다는데도 극구 부인하고는 기어이 혼자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최 교수를 찾아온 것이다.

“제가 창원 파티마병원의 원장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최 교수님의 뜻은 충분히 알겠으니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까지였다. 병원도 경영을 하는 입장인데 중고 CT라도 그것을 팔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지 않겠나. 최 교수는 이제 남은 것은 기도뿐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공동체에 상황을 설명한 후 같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그리고 그해 겨울, 12월 24일 창원 파티마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하나님께서 최 교수님의 기도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병원에서 CT를 기증하자는 데에 찬성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창원 파티마병원에서는 CT를, 그리고 얼마 전 퇴직한 필립스의 의료기기 전문 기사 두 명이 설치 봉사에 자원해서 나섰다. 숙식은 와루요 병원에서, 왕복비는 서빙고 공동체에서 지불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미리 계획된 것처럼 착착 진행되어 갔다. 그렇게 또 한 대의 최신 기계가 바다를 건넜고, 와루요 병원 현대식 병원으로 서서히 탈바꿈하게 되었다.

2008년 와루요 병원에 CT가 설치되었고, 지금도 그곳에는 ‘기꺼이 CT를 기증해 주신 창원 파티마병원 이인숙 원장 수녀님과 임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가 전하는 한 마디,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X-ray와 CT에 이어 2013년에는 대전의 남북의료기상사 김홍거 회장이 올림푸스 내시경을 와루요 병원에 기증했다. 와루요 병원의 현대화는 그렇게 거짓말처럼 진행되었다. X-ray가 들어가면서 와루요 병원이 지역의 중심 병원으로 인정받았고, CT의 설치로 신경외과 의사가 영입되었다. 이후 내과, 피부과,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차례로 들어왔고, 단칸방이던 병원은 3층 건물로 증축했다. 그리고 의사들을 차례로 한국으로 불러 선진 의학을 이수하도록 했다. 그때도 명지병원과 국립암센터가 기꺼이 나서 주었다.

이 모든 일은 온누리 교회 서빙고 공동체 의료선교단이 람풍을 찾은 지 10년도 되지 않아 이뤄진 놀라운 역사다.

“놀라운 역사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람풍을 찾은 지 14년, 아직 우리가 계획한 11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시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순천향대학병원에 재직했던 최 교수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정년을 맞아 명예교수가 되었고, 지금은 대한의료영상의학과의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정말 14년이라는 시간은 람풍뿐만 아니라 최 교수의 많은 것을 함께 바꿔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땅을 섬기겠다’는 결심과 ‘나의 사명은 의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는 굳은 마음이다.

올해 8월이 되면 최 교수는 또다시 인도네시아 람풍을 찾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그리고 거기서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 두 시간을 가면 최 교수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다.

그곳에 가면 최득린 교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인사말을 전할 것이다, 그 옛날 존 헤론 선교사가 그랬던 것처럼… 

순천향대 최득린 명예교수는 지난 3월 29일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국제 MRI학술대회(2019 ICMRI & KSMRM)에서 대한자기공명의과학회 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대한자기공명의과학회 최고 권위의 상으로 학회의 발전과 학문 분야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현재 최득린 교수는 대한의료영상의학과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신영인 기자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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