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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을 앓는 아이들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9.05.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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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아니, 어린 아이들이 편두통이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님들은 이 현상에 대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이가 조퇴를 하거나 결석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의심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며칠 전 제가 본 8세의 영리하고 아름다운 소녀는 이 문제가 생긴 지 이미 일 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소녀는 그 동안 신경내과 전문의에게 뇌파, 두뇌, 혈액과 소변 검사는 물론 MRI특수자장 대뇌 검사를 했음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명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혹이 생기거나 염증, 또는 부러진 두개골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오히려 안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많은 편) 머리가 아플 수 있음을 안 소아과의사의 권유로 저를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고로 「Fight or Flight」이론을 성립하는데 도움이 된 Dr.Walter Cannon의 환자, Monica의 얘기를 해드렸습니다. Cannon은 스트레스의 감정이 얼마나 우리 몸의 장기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한 학자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석기시대의 인간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사자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의 심장은 방망이질 치고, 산소를 보충하느라 헉헉댈 것이며, 충혈 된 동맥을 통해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될 것입니다. 따라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이며, 손발은 끈끈해지겠지요. 모든 혈액이 뇌와 근육기관에 몰렸으니 위와 대장이 굳고 소화가 안 되는 것도 당연하겠습니다.

인간은 ‘위기상황’에서 이처럼 자율신경들이 무의식적으로 대처합니다. 이제는 사자가 아닌 학교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가족문제들이 불쑥 나타나서 Fight or Flight 반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에게 가장 무서운 ‘위험’은, 사랑하는 엄마를 잃어버리거나, 엄마의 사랑이 식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 3가지는 사자보다도 훨씬 더 큰 위험입니다.

Dr.Cannon은 Monica의 위 속에 거울이 달린 긴 대롱을 꽂아놓은 후 위벽의 변화를 조사했습니다. 3살짜리 Monica는 위궤양 증세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침대 곁에 있을 때에는 분홍빛으로 건강하던 위장벽이, 엄마가 문 쪽으로 걸어가자 갑자기 시뻘겋게 충혈이 되며, 궤양 초기모습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Monica가 엄마를 찾기 전에 벌써 위장벽이 위험신호를 보낸 셈이지요. 즉 Monica의 유전적 인자, 아이 자신의 체질, 또는 발육과정에 관계가 있습니다.

소녀의 경우에도 이것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음주벽이 있는 초등학교 청소부인데, 같은 학교에서 보조선생을 하는 소녀의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마다 편두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간신히 소녀의 아버지를 ‘가족상담’에 초대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별로 감정의 표현이 없던 이 똑똑하고 모범적인 소녀의 아버지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이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 소녀의 아버지도 가족들에게 고래고래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저는 소녀의 옆에 앉아있는 아버지에게서 심한 술 냄새를 느꼈지만, 술을 마시고서라도 용기를 내어 저를 방문한 것을 감사드렸습니다. 소녀의 부탁대로 아버지는 ‘음주치료 및 방지’에 대한 집단치료모임에 전화를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결국 무서운 엄마에 대한 두려움, 술에 중독된 아버지에 대한 연민, 그러면서 걱정되는 부모님의 이혼,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조금씩 소녀의 편두통은 사라졌습니다.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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