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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와 의학의 심벌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19.05.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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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클레피오스의 조각상’

[엠디저널]고대 사람들은 질병의 발생은 정령(精靈) 또는 악마 같은 초자연적인 것에 의해서 야기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초자연적인 마력(魔力)을 극복하여 몸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의약의 창설자는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신이라 믿고 의신으로 모셨다. 따라서 이 세상이 대부분의 문화 민족들은 자기 민족에게 처음으로 의술(醫術)을 전수(傳受)했다는 의신을 모시고 있다.

▲ 바토니 작: ‘아킬레우스와 켄타우로스인 케이론과’(1746)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그리스의 경우 신화시대 의술의 신인 아폴론에게는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우선 그의 출생을 보면 좀 색다른 데가 있다. 아폴론과 처녀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폴론은 애인 코로니스가 아기를 가졌다며, 다른 사내의 아이를 잉태한 것으로 착각하고 멀리서 활을 쏘아 코로니스를 죽였다.

아폴론이 뒤늦게 그것이 자기 아이라는 것을 알고 달려갔을 때 코로니스의 시신이 화장터에서 까맣게 그을리기 시작하는 때였다. 아폴론은 헤르메스 신으로 하여금 코로니스의 뱃속에 든 아기를 살려내게 하고는 아기를 당시의 용한 의사이자 지혜로웠던 케이론에게 보내 의술을 배우게 하였는데, 케이론은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말인 인두마신(人頭馬身)으로 전해진다. 케이론은 뒷날 이아손,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도 가르친 현자로 유명하다. 아스클레오피스도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아 유능한 의사가 되었다. 케이론을 잘 묘사한 그림이 이탈리아의 화가 바토니(Pompeo Batoni 1708-87)의‘아킬레우스와 켄타우로스인 케이론과 ’(1746)이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말은 농사에 쓰였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게 타고 다니던 교통수단이었고, 전쟁이나 수렵에 불가결한 가축이었다. 전쟁이나 수렵에 관련되어서 생긴 질병의 치료라는 것은 지금의 내과적 질병의 치료라기보다는 오히려 외과적 질병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케이론이 가르쳐 주었다는 의술도 외과 치료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이가 많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전수했다는 의료기술의 내용에 관해서는 그들의 신화에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다. 그러나 간접적인 기록을 보면 확실히 외과 의학이었던 모양이다. 즉 에우리피로스가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었을 때 파타록스가 몸에 박힌 화살을 뽑고서 상처를 깨끗이 씻은 다음 진통제를 주면서 붕대를 감았다는데, 이 파타록스의 치료법은 아킬레스에게서 배운 것이며, 아킬레스는 그것을 케이론에게서 배웠다고 되어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트라카라는 도시에다 요즈음의 의과대학 겸 부속병원 비슷한 신전을 세우고 의술을 가르치는 한편 환자를 진료하였다. 어찌나 빠르게 치료하고 용하게 병을 고쳤던지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도 능히 살려낸다’라는 소문까지 날 정도이었다고 한다.

▲ ‘아스클레피오스 박물관 입구의 꽃 조각 문’

저자는 학회 관계로 해서 아테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과 박물관이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성역(The Sanctuary of Asclepios and Museum)을 찾으려고 일부러 에피다우로스(Epidaurus)에 갔던 적이 있다.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은 많은 건물이 무너졌지만, 그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그 박물관에는 이 성역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는 북부 그리스의 출신이지만 히포크라테스를 탄생시켜 유명해진 코스섬에서는 의학의 시조로 숭배되고 있으며 고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에피다우로스의 대규모 의료시설이 들어서면서 더욱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 ‘아스클레피오스 박물관 내부에 진열된 발굴된 유물’

코스섬에서는 학식 있는 의사들이 전면에 나서서 활약한 것에 비해, 에피다우로스에서는 환자를 잠재우고 시행하는 자연 요법을 장려하여 환자가 오면 신전에서 잠자게 하고는 그 꿈속에 뱀이나 개로 변신한 신이 나타나서 환자의 병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또 이 성역에는 1만6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는데 이것은 신전에는 반드시 수반되는 시설이었다고 하는데 신기한 것은 극장의 무대에서 소리 지르면 어느 좌석에서나 균등하게 들리도록 설계되었으며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소리가 메아리쳐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는 테세우스의 죽은 아들 히폴뤼토스를 살려낸 것이다. 이렇게 실제로 죽은 자를 살려냈다가 이승의 이치와 저승의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밉게 본 제우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는 제우스가 던진 불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 신이 되어 불사신인데도 죽어야 하는 모순된 존재였다.

그가 죽은 사람을 재생시켰다는 것은 죽음과 재생의 밀접한 관계를 누구보다도 실감 나게 했던 새까맣게 탄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신화가 무척이나 의미 심장하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는 트로이 전쟁 때 나가 싸운 두 아들 이외에도 네 딸이 있어서 아버지를 도와 간호사 노릇을 했다. 맏딸의 이름 이아소는 ‘의료’라는 뜻이고, 둘째 딸의 이름 판아케아는 ‘만병통치’, 셋째 딸의 이름 아이글레는 ‘광명’, 넷째 딸의 이름 휘게이아는 ‘위생’이라는 뜻이다. 이 네 자매 중 막내의 아름인 휘게이아는 지금도 의과대학에서 쓰고 있는 ‘하이진(hygiene, 위생학)’의 용어는 바로 휘게이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의술 학교는 뒷날 수많은 명의를 배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명의는 오늘날 ‘의성(醫聖)으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이다. 모든 의과대학 학생들이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여 의사는 히포크라테스를 본받아야 함을 맹세할 정도이다.ㅇ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은 고대의 의과대학과 그 부속병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신전을 지키던 신관은 이 신전에다 흙빛 뱀을 키운 것으로 전해지는데 신관들은 도리 없는 흙빛 뱀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使者)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술을 상징하는 휘장의 지팡이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이며, 뱀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인 독 없는 흙빛 뱀인 것이다. 의술을 상징하는 오늘날의 마크에서까지 지팡이와 뱀이 그려지는 것은 바로 그리스의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 유래된 것이다.

더 괴상한 의신으로는 이집트의 의신인 토트(Toth)가 있다. 토트는 머리는 새 머리며, 몸은 사람인 조수인신(鳥首人身)으로 그려졌고, 때로는 몸은 원숭이이고, 머리는 새머리인 조수원신(鳥首猿身)으로도 표현된다.

대체로 이집트의 신들은 짐승 머리를 가진 사람 몸으로 많이 표현된다. 지상(地上)의 신인 흘스는 매의 머리요, 사막의 신인 세트는 돼지머리, 물의 신인 세크메트는 수사자(雄獅子) 머리로 표현된다.

▲ ‘이집트의 의신 토트의 모형 조각’

그런데, 의신인 토트의 머리는 주로(朱鷺)의 머리다. 어떤 해석에는, 주로라는 새가 물속에다 머리를 박고서 먹이를 쪼는 모습이 학문을 탐구하는 상징이라 생각하여 전지전능한 학문의 신의 심벌로 이 새를 사람 몸 위에다가 얹어 놓았다고 한다. 보다도 하늘 높이 몸 가볍게 훨훨 날아가는 새를 볼 때 사람 몸에서 훨훨 날아가 버려야 하는 병이 마귀라는 데서 이런 상상이 떠올랐다고 생각된다.

그리스의 의신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실존했던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그것이 후세에 신격화되어 신전(神殿)을 지어 신으로 추앙된 모양인데, 그가 가지고 다녔던 지팡이에 말려 있던 뱀을 지금도 의학의 심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말로 뱀인 아스클레피오스에서 파생된 말이라고도 하는데, 그가 짚고 다녔던 지팡이는 땅 위에 난 식물적 생물의 심벌로써 토착신(土着神)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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