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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원에서 느끼는 자연의 소리

  • 입력 2019.05.23 11:47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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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소쇄원의 댓잎소리
▲ 담양 소쇄원의 댓잎소리

[엠디저널]최근 200년 넘게 베일에 싸였던 서울의 비밀정원 ‘성락원’이 시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개방되면서 한국의 정원이 주목받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한국 3대 전통 정원으로 담양 소쇄원과 완도 보길도 부용동, 성락원을 꼽았다. 대나무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담양에는 소쇄원(瀟灑園)이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양산보(1503~1557)가 1530년에 조성한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인 소쇄원은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사림의 정신이 가득 담겨있어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원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양산보의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 때 유배를 당하여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처사(處士)로서의 삶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의 전통 정원

소쇄원은 인공미를 강조한 영국, 일본 등 외국의 정원과는 다른 고유의 정취를 담고 있다. 서양의 정원이 다양한 나무와 꽃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라면, 우리의 정원은 자연스러운 것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고 풍류와 은유, 여백과 격을 보여주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정원은 자연경관을 주로 삼고 인공경관을 종의 위치에 두었다. 이러한 정원 조성의 배경은 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관념과 지나친 기교와 인위를 싫어하는 선조들의 대의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의 리듬을 말없이 느끼고 수용하며 삶의 과정에서 체득된 자연 친화적 성정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자연계곡을 중심으로 애양단, 광풍각, 제월당, 고암정사 등 정자를 세우고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을 주위에 심어 정원을 이루고 있다. 자연지형에 맞추어 정자를 세우고 수목을 심어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는 양산보 가의 성품과 이상을 반영한다. 창덕궁 후원이 자연환경에 적극 활용한 궁궐 정원을 대표한다면, 소쇄원은 당시 양반계층이 선호했던 계곡을 중심으로 조성한 대표적인 원림(園林)이다.

정원의 담장 아래에는 계곡의 물을 담장 밑으로 흘러 들어오게 만든 오곡문이라 불리는 멋진 수구(水口)가 있다. 개울 바닥에 막돌을 쌓고 그 위에 길쭉한 자연석 두 개를 가로 걸쳐 놓고 돌담을 쌓았다.

소쇄원의 중심에 위치한 광풍각은 계곡 가까이 세워진 아담하고 소박한 정자로 이곳을 찾은 풍류객들의 사랑방으로 쓰였으며 풍광을 바라보고 시조를 지으며 노닐던 사대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광풍각 뒤로 자리한 제월당은 주인이 주로 거처하며 독서하는 곳으로 맑고 깨끗한 그 이름처럼 소박하게 풍류를 즐기던 조선 선비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선인들은 경관이 수려한 곳 또는 고즈넉한 산속의 마땅한 자리를 찾아 정자를 짓고 자연 그대로의 숲과 계류를 감상하였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 물에 비친 달,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이 모든 것이 인생과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감상의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소쇄원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빛과 소리와 향기가 어우러져 오감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체험형 전시회 <한국의 정원 展 ?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에서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5월 19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TV 또는 LED 등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이용)를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이다. 동양화, 인간환경디자인연구, 영상예술, 공간연출, 설치작품, 그래픽디자인, 사진, 공예, 에세이, 소리, 향기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팀이 꾸민 전시답게 다양한 프레임 안에서 꾸며진 소쇄원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시각적인 전시의 감상이 아닌 촉각, 청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상 속 정원 소쇄원을 산책할 수 있다.

전시의 첫 섹션인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기’에서는 대숲을 끼고 걸으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 좁은 냇물, 물 위의 떠있는 오리까지 조화로운 소리를 청취한다. 전시를 관람하는 ‘산책자’는 도심에서 서서히 달아나게 한다.

바람이 노래하는 소리에서 찾는 안정감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는 사실 그 어느 음악보다 자연의 소리라 할 수 있겠다.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폭포수소리, 산중에 새소리 벌레소리, 처마 밑의 낙수소리, 양철지붕위에 비 떨어지는 소리, 다듬이 소리 등 이런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때론 황홀해 오는 느낌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특히 바람이 소나무 솔잎을 스쳤을 때 소리를 풍입송(風入松)이라 하는데 이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준다 알려져 선조들은 생명을 품은 여인들이 태아에게 좋은 감성을 전해주기 위해 소나무 밑에서 풍입송(風入松)을 듣게 했다고 한다. 편안한 자연의 소리는 산모와 태아의 성품 형성에도 크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의 소리를 음향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가청주파수 영역인 20Hz에서 2만Hz 사이에서 주파수가 높아지면 주파수에 비례해서 소리의 크기가 작아진다. 바이올린, 첼로 등 서양악기 소리를 분석하면, 이 소리는 주파수가 높아질 때 소리의 크기는 주파수 제곱에 비례해서 작아지는데, 한국의 국악기 소리는 주파수가 높아지면 소리의 크기는 자연의 소리처럼 주파수에 비례해서 작아짐을 볼 수 있다.

즉 한국악기의 소리가 서양악기 소리보다 자연의 소리 특성에 더 가까운 특성을 나타내 자연의 소리와 일체감을 준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주로 듣는 격한 음악은 주파수가 높아져도 소리의 크기는 변하질 않고 거의 일정한 특성이 나타나 우리 몸에는 부담을 많이 준다.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소리는 들을수록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주어 스스로 심신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정원을 조성하는 데 있어 나무와 꽃, 바위와 조각상 등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자연경관을 인문 경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의 전통정원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선비들의 욕망과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또 다른 생활 공간이었다.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방식이 무한히 내재되어 있음을 자연의 소리와 함께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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