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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추기’, 동굴을 찾는 중년들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9.06.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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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장년시절을 매듭짓는 45~60세까지의 중년기는 바로 이에 맞물려 어른이 지나가야 하는 계단입니다. 비록 사춘기에서처럼 키가 큰다거나 월경이 시작되는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종점에 도착할 마지막 열차를 타기 전에 지도를 읽으며 방향을 잡는 기간이 되겠지요. 제가 이렇게 ‘사추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음의 준비도 없이 49세의 남편을, 제 나이 마흔 아홉에 잃은 후였습니다.

서너 살이 되면 남자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와’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주위의 압력을 받게 됩니다. 밖에 나가서는 활발하게 놀아야 되고,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야 되고, 절대로 ‘눈물을 보이면’ 안됩니다. ‘계집애’처럼 굴지 말라는 동서양의 불문율 때문에 사내는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제 방으로 갑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만 했다가는 놀림감이 됩니다. 축구, 야구는 물론 하다못해 던진 공을 잽싸게 받지 못하면 마치 외계인인양 제쳐놓아집니다. 졸업 후에도 이 ‘달리기 시합’은 직장이나 학위, 사회계급에서 계속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년을 맞으면서, 아빠는 더 이상 큰아들의 정구 상대가 되기에는 숨이 차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저녁나절에 부인이 목욕을 하면 겁이 납니다(남성의 성적 욕구가 18세에 정점을 달리는 데에 반해, 여성의 경우 사십대 이후인 것도 문제의 소인이 되겠지요). 이때부터 갑자기 중년의 남성들은 마음이 불안하고, 당황해지거나 우울해지기가 쉽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달마다 생리를 겪어야 하고, 임신이나 분만으로 몸이 산만큼 높았다가 떨어지고, 부었다가 빠지는 여성으로서 ‘갱년기’는, 큰 변화이기는 하지만 이미 연습이 어느 정도 되어 있으니까요.

이에 반해서 엄마의 무르팍을 용감하게 박차고 나온 이후에 ‘달리기’만을 했던 남성들에게 갑자기 기운이 약간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생소한 변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행여나 남들이(특히 가족들, 그 중에서도 아내가!) 눈치챌까봐 동굴(Cave)로 들어갑니다. 신문이나, TV는 좋은 은신처로, 동굴 노릇을 간간히 해줍니다. 간혹은 누구와 얘기해 보거나 물어보고도 싶지만 도대체 이야기하는 데에 익숙하지가 않으니 그냥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란히 서는 관계(Side-By-Side)행위에 익숙해져 있답니다. 여성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Face-To-Face), 마음속의 이야기를 친구나 배우자와 나누면서 사랑을 나누고, 문제 해결을 하는 것과는 대조가 되는 방법입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시할 때에는 특별히 ‘성’적인 관계를 통해 여성의 욕구가 ‘필요충분’하게 해결된다고 믿었고, 게다가 노동으로써 가족의 물질적인 향상을 가져오는 데에 주력을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체력이 감소되지 않았나?’하는 은근한 걱정 때문에 동굴로 피하다보니, 신경이 곤두 선 아내들은 ‘바깥의 여자’들을 의심하게 됩니다. 불안하면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니까요! ‘폐경기로 주름살이 늘었으니까 이젠 나를 싫어하나 보다’그리하여 부부는 딴 침대를 쓰다가 각 방으로, 급기야는 딴 집으로 헤어져 나갑니다. ‘Face-To-Face’화술에 익숙해있는 중년의 여성들은 이제야말로 파트너를 가까이 끌어안고 대화를 시작하실 때입니다. 미소를 짓고서 조용조용하게 ‘나의 느낌’과 남편의 중요성을 일깨워드리십시오. 절대로 “왜?”라는 질문을 하지 말고, 끝이 열린 질문(Open-ended Questions)을 하고, 열심히 들어보십시오. 앞으로 30년여 년 간의 토란 같은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인류학자가 그린 지도에서처럼 멋진 ‘오십 대’, 섹시한 ‘육십 대’, 평온한 ‘칠십 대’를 즐기시도록 준비하는 “사추기”가 될 것을 다짐하는 이들의 빛나는 눈동자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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