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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Ⅰ

  • 입력 2019.06.19 10:50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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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동요 <고향의 봄> 중에서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리’라는 대목이 나오면 나는 갑자기 숙연해진다. 눈물이 핑 돌 때도 있다. 어릴 적 운동장의 그 큰 수양버드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봄날 학교 갔다 돌아오며 천변 둑 잔디밭에 앉아 버들피리를 불던 일이며, 개울가 갯버들에 가지 사이로 황금빛 꾀꼬리들이 숨바꼭질 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더운 여름날 버드나무 밑 웅덩이에 목만 내놓고 멱 감고 있노라면, 모래언덕에 구멍을 판 둥지에서 쏜살같이 날아온 물총새가 번개처럼 송사리를 낚아채는 멋진 모습도 생생해진다.

세상에 버드나무는 400여종이 있고, 한국에는 약 40여종이 자란다고 한다. 버드나무를 양류(楊柳)라고 하는데 대체로 왕버들처럼 가지가 위로 자라는 종류를 양(楊)이라 하고,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처져 드리운 종류를 류(柳)라고 한다. 버드나무는 아종끼리 자연으로 교배되어 새로운 아종이 절로 생겨나 종류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도 한다. 버드나무는 물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여 강가나 개울가에 잘 자란다. 그러나 열대부터 아한대까지 다양하게 분포하며, 고비사막 같은 곳에서도 적응한 품종도 있다 한다.

사람과 가장 친한 나무를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버드나무를 들고 싶다. 버드나무는 부드럽고 끈질겨서 휘어질지라도 좀처럼 부러지지는 않는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목재, 가구, 소쿠리나 바구니, 고리짝 같은 생활용품, 심지어 조각 작품의 재료로까지 이용한다.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아스피린은 인간이 만든 가장 우수한 약재라고 한다. 기원 전 1500년경 작성된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 버드나무가 해열진통 작용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피라미드를 쌓을 때 일꾼들이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버드나무를 씹었다고 한다. 또한 이(齒)를 닦는 것을 양치(養齒)라 하는데 갯버들가지로 이를 닦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버드나무 잎 모양의 유엽전(柳葉箭)은 전쟁은 물론 화폐의 단위로까지 이용되었다.

버드나무는 맨 먼저 봄을 알려준다. 시냇가에 아직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지만 버들강아지는 입춘만 지나면 양지쪽에서 눈을 뜨기 시작한다. 갯버들 꽃이 피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인간이 하는 어떤 화장도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할 순 없을 성싶다. 강아지 털처럼 보드라운 솜털이 차차 아주 밝은 진홍색으로 변한 후, 여기에 점차 더 없이 화려한 샛노란 꽃가루가 뿌려진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버드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문학소재였다. 문학작품에서 사랑, 이별, 향수(鄕愁)를 대변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긴 모성(母性)을 가진 버들부인들이 여러 영웅들을 낳았다.

소나무가 우리에게 강직한 부성(父性)을 대표한다면, 버드나무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모성(母性)을 대표한다 할 수 있다. 버드나무는 땅이 기름지면 그런대로 척박하면 또 그런대로 적응하여 자손을 퍼트리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기에, 흔히 여성에 빗대어 ‘여자 팔자 버드나무 팔자’라는 말까지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서양의 역사에서 버들부인들이, 중요한 인물들을 낳은 이후에도 모성애를 발휘하여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버들부인의 첫 번째 예로 고구려 동명성왕의 어머니인 유화(柳花)부인을 들 수 있다. 압록강 물의 신(神), 하백(河伯)의 딸인 유화부이 처녀일 때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와 중매쟁이 없이 사통(私通)했다는 죄로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로 쫓겨났다. 여기서 동부여왕인 금와왕(金蛙王)을 만나 보살핌을 받았고 유화부인은 알 하나를 낳았다. 상서롭고 기이한 과정을 거쳐, 이 알을 깨고 한 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가 바로 주몽이다. 백제왕족인 부여씨도 유화부인의 자손이기에 유화부인을 백제에서도 높이 받들었다고 한다.

박혁거세의 탄생도 버드나무와 관계가 깊다. 진한 땅 6부 촌장들이 모여 임금을 모실 궁리를 하다가, 버들 산(楊山 양산) 밑 담쟁이우물(蘿井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진 것을 보고 달려갔다. 가보니, 흰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었다. 그 곁에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상서롭고 기이한 과정을 거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

고려 태조의 첫째 부인 신혜왕후(神惠王后)도 버들부인이다. 왕건이 궁예의 장수로 싸움터에서 회군할 때 목이 말라 우물가의 한 처녀에게 물을 청했더니, 여인은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옆에 있던 버들잎을 한줌 훑어 띄워서 건넸다. 물을 마신 왕건이 버들잎을 띄운 연유를 물은즉, 급히 마신 물은 체하기 쉬우니 버들잎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게 하기 위함이라 대답하였다. 왕건은 이 말을 듣고 그 슬기로움을 높이 사서 나중에 왕비로 삼았는데 그 여인이 바로 신혜왕후 류(柳)씨다.

궁예가 공포정치를 하자 이에 반발하여 신숭겸 등이 궁예를 몰아내자고 찾아왔을 때 왕건이 주저하였다. 이때 류씨부인이 "의(義)로써 학정을 물리치는 것은 예부터 당연한 일로써, 아녀자인 나도 싸울 터인데 하물며 대장부는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남편을 독려하며 손수 갑옷을 입히고 혁명을 일으키게 했다고 한다.

남편이 죽자 궁궐의 버드나무를 벗 삼아 살던 한 젊은 왕비가 있었다. 고려 제5대왕 경종의 제4비 헌정황후다. 헌정왕후는 숙부인 태조왕건의 다섯째 아들과 불륜으로 아이를 가졌다. 만삭이 되자 왕후가 부끄러워서 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어귀에서 산기를 느꼈다. 왕후는 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아이를 출산한 후 죽었다. 왕후의 조카인 성종이 유모를 택하여 아이를 양육하였는데, 그가 장성하여 왕위에 올랐으니 제8대 왕인 현종(顯宗)이다. 비록 부끄러운 탄생이었으나 그는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 받는다. 거란이 부당한 요구를 하자 거부하였고, 침략하자 강감찬(姜邯贊)장군을 내세워 막게 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책을 썼고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고대그리스 제우스의 첫째부인도 헤라(Hera)도 버들부인이란 뜻이라 한다. 헤라는 사모스 섬 암브라소스 강둑 버드나무 아래서 태어난다. 제우스는 뻐꾹새로 둔갑해서 접근하고, 헤라는 비에 젖은 뻐꾹새가 애처로워 가슴에 품어주었다가 순결을 잃게 되는데, 이들이 첫 정을 나눈 곳도 바로 비오는 봄날의 버드나무 밑이었다.

버들부인들은 문명전파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안타깝게도 현존하지 않는 《구(舊)삼국사기》를 인용한 이규보의《동명왕편(東明王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부여 금와왕의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죽이려 했다. 이에 유화부인이 남쪽으로 피신시키면서 여러 곡식의 씨앗을 주었는데 보리씨앗만 빼놓는 바람에 비둘기를 이용해 주몽에게 씨앗을 전했다. 이로 보아 유화부인은 맥류경작(麥類耕作)과 관련된 농업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다. 또한 당시에 유화부인이 비둘기를 이용한 점도 정말 흥미롭다. 노아의 방주 얘기에서 비둘기가 올리브가지를 물고 온 것처럼 중동지방에서는 오래전부터 비둘기를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 자세한 것은 학자들 몫이지만 아마도 활발한 동서양문명 교류가 있었지 않았을까?

동서양에서 버드나무는 모성과 탄생을 상징하는 의미로 두루 쓰였다. 지금처럼 화학적으로 합성한 재료가 나타나기 전에는 버드나무는 여러 모습으로 우리 곁에 항상 있었다. 지난 날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쓸 알곡을 다듬던 고리버들 키처럼, 버드나무는 이제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긴 모성(母性)의 상징인 버들부인들이 여러 영웅들을 낳고 키웠듯이, 버드나무가 계속 우리의사랑, 이별, 향수(鄕愁)를 낳고 키워주었으면 좋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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