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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헤어짐 등 우리들 삶 노래한 대중가요 ‘이별의 종착역’

1960년 손시향 취입·히트하자 영화 개봉, 최백호·장사익 등도 불러

  • 입력 2019.06.21 12:22
  • 수정 2019.06.21 16:50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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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이 나그네 길
음~ 안개 짙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 이별의 종착역
사람들은 오가는데 그이만은 왜 못 오나
음~ 푸른 달빛 아래 나는 눈물진다 이별의 종착역

아~ 언제나 이 가슴에 덮인 안개 활짝 개고
아~ 언제나 이 가슴에 밝은 해가 떠오르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이 나그네 길
음~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손석우(孫夕友) 작사·작곡, 손시향(孫詩鄕, 본명 손용호)이 부른 ‘이별의 종착역’은 59년의 역사를 가진 추억의 대중가요다. 1960년 선보인 이 곡은 제목이 말해주듯 이별과 종착역이란 의미가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음악전문가들은 “우리들 삶이란 소재를 범상치 않게 형상화한 가사에다 뛰어난 악곡으로 갈무리한 독특한 노래”라고 격찬한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리듬으로 느린 템포지만 부를수록 깊은 맛이 나는 히트가요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정남진 편백나무 우드랜드 입구엔 이 노래 가사가 적힌 ‘손석우 노래비’가 있다. 2015년 8월 억불산 언저리에 세워진 비 앞쪽엔 노래비취지문과 ‘이별의 종착역’ 등 손 선생이 작사·작곡, 히트한 노래가사가 새겨진 검은색 비석들이 서있다. 메인노래비 위엔 손 선생 얼굴이, 그 아래엔 한명숙의 히트곡 ‘노란 셔쓰 입은 사나이’ 가사가 새겨져 있다. 노래비 뒷면엔 손 선생의 주요 발자취가 연대순으로 새겨져 있다.

‘이별의 종착역’ 영화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

‘이별의 종착역’ 노래가 히트하자 같은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져 1960년 6월 17일 개봉, 눈길을 모았다. 박옥상 각본, 박영환 감독, 최무룡·조미령·김승호가 주연배우로 나온 영화에서 ‘이별의 종착역’이 주제가로 흘러나온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과 얽혀있다.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란 남자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간 그는 어느덧 군 입대를 했다. 그의 애인은 자신을 돌봐준 고아원 보모(保姆)였다. 고아원에 있으면서 연인사이로 발전, 서로 좋아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애인(고아원 보모)에게 군에 간 남자주인공이 전쟁 중 숨졌다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사망소식에 실망한 그녀는 군의관을 알게 돼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 가운데 기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전사했다는 남자주인공이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다 구사일생 도망쳐 살아 돌아온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당황했다. 신혼여행을 가려던 그녀와 남편(군의관)은 갑자기 나타난 남자주인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군의관은 목숨을 걸고 달려온 그에게 기차표를 건넨다. ‘열차를 타고 떠나라’는 암시였다. 노랫말에 나오는 대로 헤어져야할 때임을 알고 마음을 정리하는 대목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영화 속의 이별은 기차역이란 공간에서 자주 이뤄진다. 역이 영화에서 사랑받는 건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찾아오는 장소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단면과 닮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차역이 담아내는 이야기 중 이미지와 서정성에 잘 맞는 얘기는 작별이다. 눈물이 흐르고 기적이 울린다. 기차가 서서히 미끄러져 떠나고….

2009년 개봉된 아르헨티나의 범죄스릴러영화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스페인어 : El secreto de sus ojos, 영어 : The Secret in Their Eyes)도 비슷한 흐름이다. 2010년 11월 국내 선보인 이 영화는 남녀주인공 이별을 아름답게 그려낸 기차역장면이 나온다. 25년 전 살인사건을 둘러싼 작품으로 스릴러와 로맨스를 절묘하게 녹여냈다. 감독은 후안 호세 캄파넬라, 주인공은 리카도 다린과 솔레다드 빌라밀이 맡았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자의 아련한 시선. 기차가 출발하자 여자는 남자를 떠나보내기 싫은 듯 기차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를 발견한 남자는 기차의 마지막 칸까지 옮겨가며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본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진정한 사랑에 고민하게 만드는 독특한 내용으로 지난 10여 년간 나온 남미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2010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 소재는 원작소설 ‘그들의 눈빛 속엔 비밀이 있다’에서 가져왔다.

김현식, 1989년 술 취해 ‘이별의 종착역’ 녹음

‘이별의 종착역’은 노래장르를 달리해 여러 가수들이 취입했다. 김현식, 박강성, 문주란, 최백호, 장사익, 김용임 등이 각기 다른 음색으로 리메이크했다. 젊은 감각이 접목된 것 외에도 부드러운 저음가수 최희준(작고)까지 살아 있을 때 불러 감칠맛을 준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가수가 세상을 떠난 김현식이다. 그와 이 노래엔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 숨지기 한 해 전 그가 소속된 음악그룹에서의 일이다. 1989년 신촌블루스는 옛 노래들을 블루스로 재해석한 3집 음반을 냈다. 녹음이 한창이던 어느 날 김현식이 아들 손을 잡고 녹음스튜디오에 들렀다. 그룹가수 엄인호가 부르려다 김현식이 부르는 게 낫겠다싶어 “한번 불러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술에 취해있던 김현식이 선뜻 받아들였다. “자신도 좋아하는 노래”라며 가사지 하나만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녹음은 깔끔하게 단번에 끝났다. 그렇게 해 만들어진 게 신촌블루스 3집 앨범에 담긴 ‘이별의 종착역’이다. 요즘도 이 노래는 그룹가수 콘서트나 중견가수 리사이틀 등지에서 자주 불린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처럼 김현식은 갔지만 그의 노래는 영원히 살아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

손시향, 1960년 미스코리아 출신 손미희자 씨 오빠

‘이별의 종착역’ 노래를 맨 먼저 취입, 히트가수가 된 손시향은 1938년 대구태생으로 1960년 미스코리아 출신 손미희자 씨 오빠다. 잘 생긴 얼굴에 목소리가 맑아 인기였다.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이 대표곡이다. 경북고,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그는 대학재학시절 KBS 노래경연대회에서 입상, 가수로 데뷔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가 마이애미한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외모만큼이나 성품도 좋아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고교동창인 신성일(작고)이 가수로 성공한 손시향에게 자극받아 배우로서 성공을 다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별의 종착역’ 노래를 만든 손석우는 ‘한국 팝 최초의 작가’로 유명하다. 1920년 12월 30일 장흥태생으로 1938년 목포공립상업학교를 나와 그해 호남은행에 들어갔다. 그 후 1941년 조선연예주식회사 입사, 1948년 K.P.K(김해송 악단) 입단에 이어 1955년 KBS 전속악단을 만들어 가요방송지휘자가 됐다. 이듬해 오아시스레코드 전속작가, 1961년 뷔너스의 레리블 LP음반제작 시작, 1963년 방송가요작가그룹 결성 등 음악활동에 열심이었다. 1963년 방송문화상, 1965년 라디오서울 방송문화상, 1965년 TBC가요상, 2003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11년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1950년대 라디오드라마주제가 효시인 ‘청실홍실’(1956년 조남사 작사, 손석우 작곡, 송민도 노래), 히트곡 영화화의 국내 처음인 ‘나 혼자만이’(1958년 제작, 영화주제곡명 : ‘나 하나의 사랑’)로 영화음악계에서 두각을 보였다. 영화 ‘꿈은 사라지고’(1959년) 주제가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검은 장갑’(1958년 작사·작곡, 손시향 노래) ▲KBS 드라마주제가 ‘모란이 피기까지’(1959년 작곡, 송민도 노래)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년 작사·작곡, 손시향 노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1960년 작사·작곡, 최희준 노래) ▲‘노란 셔쓰 입은 사나이’(1961년 작사·작곡, 한명숙 노래) 등 노랫말을 썼거나 작곡한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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