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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 초상> 영농일기(營農日記)

Farming diary

  • 입력 2019.06.21 16:14
  • 수정 2019.08.02 15:43
  • 기자명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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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칙칙한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아무도 몰래 들판으로 나아갔다. 다소곳이 누워 있던 내 땅도 두 팔을 벌려 가슴을 활짝 열어 주었다. 달빛에 어렴풋이 비친 내 땅의 모습은 황홀한 순백의 자태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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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역사적인 날이다. 비록 한 뼘밖에 안 되는 조그만 땅이지만 스스로 자영할 수 있는 처녀 경작지를 계약했기 때문이다. 유산이라고는 한 치의 땅도 물려받은 바 없는 가난한 소작인이었기에 오늘의 이 벅찬 감회는 정말 형언할 수 없다. 내가 성장하여 신체적으로 모든 자격을 구비한 유능한 농사꾼이 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내 꿈을 실어 나를 농경지 하나 제대로 가질 수 없었다. 그저 여기저기 쏘다니다 주인이 돌보지 않아 버려진 황무지, 도저히 싹 틔울 수 없는 화장실의 타일 또는 시멘트 바닥에 넘치는 씨앗을 도둑질 하듯 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제 31년 만에 자작농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가친척과 친지들을 한 자리에 모신 가운데, 소작인 시절의 고난과 역경을 거울삼아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내 땅을 사랑하고 아끼며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 하여 남의 경작지를 넘봄 없이 오직 내 땅만 파는 진실한 농부가 되기를 굳게 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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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 북적대던 하객들의 소음이 그치고 어수선한 긴장이 늘어졌을 때 나는 칙칙한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아무도 몰래 들판으로 나아갔다. 다소곳이 누워 있던 내 땅도 두 팔을 벌려 가슴을 활짝 열어 주었다. 달빛에 어렴풋이 비친 내 땅의 모습은 황홀한 순백의 자태 그대로였다. 그것은 곧 강렬한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그대로 온몸에 확산되어 파종(播種)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내 손은 벌써 밭이랑을 더듬었고 사발을 엎어 놓은 듯 한 두 개의 무덤 꼭지에 격정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내 땅도 주인의 정성에 감읍(感泣)한 듯 작게 흐느끼며 떨고 있었다. 꽤 넓은 평지의 중심에 단추 크기 정도의 함몰 부위, 그 아래에 큰 암석이 버티고 있다. 제멋대로 자라 우거진 잡초를 쓰다듬다 조그만 웅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아직 한 번도 인적이 닿지 않은 고혹의 비소(泌所). 바로 그곳이 내가 씨앗을 뿌려야 할 기름진 땅임을 직감했다.

파종기(播種器)는 어느새 굴착 태세를 갖추며 신속한 사용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 이상 벼르거나 뜸 들일 여유가 없었다. 순결을 짓밟는 기분으로 잔뜩 부아가 난 파종기를 달래며 웅덩이 입구로 들이 밀었다. 가벼운 저항이 느껴졌으나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굴착이 시작되었다. 상하, 좌우, 때로는 작은 원을 그리면서 혼신을 다하여 농사일에 열중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다 이윽고 참았던 응어리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모아두고 모둔 씨앗을 세차게 뿌린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맺힌 땀방울을 달래 주었다. 파종 후에도 잔잔한 쾌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이 즐거움 때문에 가난한 농부의 길을 고집스레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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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에 들러 제반 서류를 꾸몄다. 나는 이제 땅문서를 소유한 명실상부한 지주가 된 것이다. 나에겐 내 땅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고, 몸을 부지런히 놀려 영농 기술을 개발하고 내 땅을 비옥한 옥토로 일구어야 할 의무가 있다. 대저 남자가 경작하는 땅이란 외간 남정네 출입을 차단하는 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하루 종일 쳐다보며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누가 슬쩍 밟고 지나간들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어쨌든 요즘엔 매사가 즐겁기만 하다.

0월 0일

오늘도 일터로 나갔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내 땅을 찾아간다. 그 누구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이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맨발로 뛰놀고, 해가 뜨는지 달이 지는지, 그런 것은 별 문제 삼지 않는다. 나의 여력과 능력만큼 농사일에 열중하면 그만이니까. 온몸을 이용하는 중노동이지만 도무지 피곤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다. 이것이 자작농의 여유라는 것일까? 성실한 땅 지기가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0월 0일

분에 넘치는 행복 때문일까? 문득문득 문전걸식하던 소작인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꼭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해야만 일 할 수 있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힘이 남아돌아도 맨 정신으론 용기가 없어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맨발로 구걸하다 호되게 물려 일주일식이나 주사를 맞으며 고생하기도 했다. 그 후엔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엄청난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항상 아늑하고 편안한 내 땅. 오늘 하루도 지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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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은 한 달에 한 번씩 자율 정화 작업을 한다. 땅을 파헤쳐 검붉은 황토를 밖으로 쏟아내고 수분과 비료를 적당히 버무려 비옥한 토질로 바꾸는, 이른바 토질 개선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야만 알차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토질 개선 작업은 지주인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 영농 스케줄에 큰 차질을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내가 자주 일판에 나가 힘든 일을 하는 것은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생산 의욕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땅에 대한 농사꾼의 확고한 집념은 토질 개선 작업 중인 뻘밭까지 뛰어들게 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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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매입한 후 가꾸고 길들인 지 오늘로 만 3개월이 지났다. 월 중 행사인 토질 보수 작업이 중단되더니, 내 땅이 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열심히 뿌려댔던 수백억의 종자 가운데 어느 한 놈이 드디어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그놈은 틀림없이 야무진 농사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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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벌써 하더니…온몸이 나른하고 여기저기 삭신이 쑤시며 저려 오나. 파종의 기쁨에 취하여 너무 무리한 탓일까? 아무래도 내 젊음을 과신하여 육신을 혹사한 것 같다. 그래, 오늘 하루는 푹 쉬면서 체력을 모으기로 하자. 먼발치에서 바로보기만 해도 마냥 즐거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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