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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에게 보내는 찬사

  • 입력 2019.06.24 10:53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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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6월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쟁의 아픔과 평화에 대한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시기이다.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 그 혼을 이어받아 눈을 부릅뜨고 조국을 지키는 장병들. 진정한 시대의 ‘영웅’들에게 보내는 힘찬 응원과 승리의 염원을 담아 여름 밤, 클래식 음악과 함께 메모리얼(memorial), 추모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음악으로 듣는 승리의 염원과 추모

이 세상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인류가 서로 총칼을 맞대고 싸운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지만 슬프게도 인류 역사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는 거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독재와 내전으로 분쟁 중인 지역이 있다. 전쟁은 인류사에 있어 빈번히 일어났고 한 시대의 시민이기도 했던 예술가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전쟁’은 예술작품 소재로 자주 쓰였다. 음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Welsh National Opera의 전쟁과 평화 중 전투장면
▲ Welsh National Opera의 전쟁과 평화 중 전투장면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뛰어난 바이올린 대가로 손꼽히는 하인리히 비버(H. Biber 1644-1704)의 작품 중 기악으로만 연주되는 ‘바탈리아(Battalia)’라는 곡이 있다. 비버는 17세기에 기교적으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 기법과 바이올린 소나타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이 곡은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곡이지만 꼴 레뇨(col legno)와 같은 다양한 특수 주법을 이용해 군악대의 북소리, 대포소리 등 독특한 음향효과를 시도하는 재미있는 음악이다. 이러한 표현을 위해 연주자들은 리드미컬하게 발을 구르기도 하고 줄을 튕기기도 한다. 이 곡에서는 대포 소리를 모방하거나 전쟁 후 부상당한 자들의 슬픈 노래를 표현함으로써 비버 특유의 세련되고 화려하고 표현력 풍부한 작풍을 이루었다.

연주 영상을 보면 대포 소리를 표현하는 데에 더블베이스의 활대를 가지고 현을 때려 연주하는 주법이 인상적인데 꼴 레뇨(col legno)는 '나무(legno)를 써서 (col)' 하라는 지시어로 'with wood' 정도로 해석된다. 나무로 되어있는 활의 윗등 부분을 아래쪽으로 돌려 이 막대 부분으로 현을 두들기듯 연주한다. 활등으로 연주하기에 현과의 마찰이 적어 소리가 약하고 건조하다.

이 곡을 듣다 보면 불협화음들이 등장하는데 어디서 다른 노래가 동시에 재생되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바로 2악장이다. 음악사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콜라주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 다른 조성과 박자를 가진 8개의 다른 노래를 교차시켜 술에 취한 8개국의 병사들을 묘사하는 부분으로 이러한 실험들은 음악사 전체에서 독특하고 활기차고 당돌한 작품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격변기를 살아온 작곡가, 프로코피에프의 ‘전쟁과 평화’

전쟁에 대한 묘사를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낸 작곡가도 있다. 바로 20세기의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S. Prokofiev, 1891~1953)이다. 그는 서양의 형식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항상 명확하고 독보적인 선율을 위해 노력했다.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그는 러시아 소재의 오페라를 오래 고민하다가, 1941년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작곡가의 둘째 부인 미라 멘델손(Mira Mendelson)의 대본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작곡의 오페라를 초연했다. 이는 많은 러시아 관객들에게 진한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제정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연방으로 바뀌는 세기말과 정치적 격변기에 살았던 프로코피에프는 쇼스타코비치와 더불어 혁명기의 러시아, 이후의 스탈린 체제를 함께 겪었던 음악가였다. 두 작곡가는 20세기의 새로운 음악, 이른바 모더니즘을 지향했던 이유로 소비에트의 통제적 분위기 속에서 내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는 서방으로 망명의 길을 택했지만 뜨거운 조국애로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갔으나 체제의 간섭을 받아가며 체제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창조적 영감이 억눌린채로 사회주의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세상을 호령하던 스탈린이 죽던 날 그는 다소 개방적인 문화정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같은 날 같은 사인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음악 때문에 불행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한 그의 이력으로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Welsh National Opera의 전쟁과 평화 무대
▲ Welsh National Opera의 전쟁과 평화 무대

프로코피에프는 ‘러시아어의 자연스런 억양을 살린 오페라’를 이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12년을 오페라 ‘전쟁과 평화’에 바쳤다. 오페라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는 2부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구성은 제목의 순서와는 달리 제1부(평화, Peace)가 에피그라프(Epigraph, 제사題詞)와 1장-7장까지, 제2부(전쟁, War)가 8장-13장까지로 구성된다. 그는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오페라 <에브게니 오네긴>를 오마주(hommage)했다고 알려져있다.

‘봄과 기쁨을 믿어야 하네. 행복을 찾고 싶다면’

소비에트 연방의 문화 당국으로부터 심한 간섭을 받아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가 1942년 오페라 창작에 착수하기 1년전 독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과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점령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관계로 극중 전쟁 장면을 추가해야 했으며 계속된 검열로 인해 작곡가 생전에는 완전한 형태로 무대에 올려지지 못했다.

톨스토이의 장편 <전쟁과 평화>는 1805년에서 1820년에 걸쳐 등장인물이 599명이나 되는 대작에 기초한 작품답게 오페라 <전쟁과 평화>도 원작의 앞부분 1/3을 생략한 시대인 1809년에서 1812년 나폴레옹 전쟁까지로 단축했지만 합창과 발레 댄서 등을 제외한 무대 등장인물이 74명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작품이다. 2000년 파리국립오페라의 바스티유 공연에서는 무대 인원이 26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평화’를 노래하는 부분인 제1장에서는 나타샤 로스토프 (소프라노)를 둘러싼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바리톤), 아나톨 쿠라긴 공작(테너), 삐에르 베주호프 백작(테너)의 심각한 삼각관계가 얽혀 있다. 나타샤는 안드레이의 약혼녀로, 쿠라긴의 애인으로, 삐에르의 아내로 일생을 보내면서 러시아 여성의 생명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안드레이의 아리오소풍의 모놀로그: “봄과 기쁨 그리고 행복은 환상일 뿐이라네.”라고 삶의 허무를 노래하다가 나타샤를 보는 순간 “봄과 기쁨을 믿어야 하네. 행복을 찾고 싶다면!”하고 변덕스럽게 부르는 서정적인 노래가 인상적이다.

오페라 영상은 발레리 게르기예프(1953~)가 지휘하는 1991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키로프 오페라 공연 실황을 추천한다. 1991년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실황을 담고 있는 이 영상은 최초로 삭제가 없는 총보로 연주된 것으로 진지하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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