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들무새의 초상> 옥답(沃畓)

Paddyfields

  • 입력 2019.06.24 11:11
  • 수정 2019.08.02 15:39
  • 기자명 정정만(성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생산 시설 가동이 최대로 제한된 구멍은 자진자영(自進自營)의 불놀이 터전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종자를 받아 배달 민족의 명맥을 이어야 하는 성스러운 문전 옥답(沃畓)이 팔자 고치는 뒤웅박이나 꽂기만 하면 매상 열을 발산하는 전열 기구화 하는 물결을 탄 것이다.

명분에 상응하여 실질을 바르게 하는 것. 명칭에 상응하는 실질의 존재를 정명(正名)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부자간, 형제간, 친구간도 그에 어울리는 윤리와 질서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워야 한다’는 것이 정명의 핵심이다. 부모가 부모다울 때 부모가 되고 자식이 자식다울 때 자식이라는 것이다.

개차반처럼 행동하는 자식이나 어린 자식을 유기하는 부모가 어찌 자식이고 부모이겠는가? 물건이나 구멍도 마찬가지다. 물건답고 구멍다워야 물건이요 구멍이다. 물건과 구멍도 지켜야 할 틀이 있는 것이다. 효(孝)와 열(烈)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분이요 미덕이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여불사이부(女不事二夫)가 바로 구멍다운 것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정명(正命)을 외면하고 정명(正明)치 못한 행동을 일삼는 것이 정명(定命)인지도 모른다. 정명(正名)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허구한 날 난행으로 인간사를 뒤틀고 꼬이게 하는 신체 최고의 말썽꾸러기들 아닌가?

‘물건을’ 미국말로 페니스(penis)라고 한다. 하지만 ‘오렌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 사람들은 페니스가 무슨 소린지 모를 게다. 영어 몰입식 발음으론 ‘아린지’, ‘피너스’다. 원어민의 물건은 피너스요 국산을 위시한 비영어권 국가의 물건은 페니스다. 앞서가는 피너스의 못 된 버릇을 페니스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 전쟁 후 폐허가 된 이 땅에 진주(進駐)한 미군. 그 혈맹의 피너스는 오두막 구멍까지 주둔하는 성실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당시 점령당한 구멍은 정명을 벗어났다. 하지만 풀칠을 위한 생계형 구멍은 당(唐), 청(淸), 왜구(倭寇)의 흉괴한 물건에게 약탈당한 민초의 구멍과 함께 우리나라 구멍의 부끄럽고 서글픈 역사의 단면이다. 승자나 강자의 전리품, 노략품 리스트에 들어있기 마련인 구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달린 사람들의 무능과 무책임 탓이었다.

이제 2만 불 시대. 구멍의 세상(世相)도 엄청나게 변했다. 감산(減産)이라는 대세를 타고 세계 랭킹 1위의 저 출산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생산 시설 가동이 최대로 제한된 구멍은 자진자영(自進自營)의 불놀이 터전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종자를 받아 배달민족의 명맥을 이어야 하는 성스러운 문전옥답(沃畓)이 팔자 고치는 뒤웅박이나 꽂기만 하면 매상 열을 발산하는 전열 기구화 하는 물결을 탄 것이다. 옥토는 천하지 대본이거늘… 세태에 벽면엔 온통 싹수없는 구멍투성이다. 권세에 달라붙는 폴리티홀(politihole), 황금에 빌붙는 머니홀(monihole), 포퓰리즘에 사족이 마비되는 엔터테인홀(entertainhole)등 간교한 구멍이 온 천지에 널려있다. 권세, 돈, 인기 있는 얼굴은 마음만 먹으면 아무 구멍이나 압수, 수색할 수 있는 힘의 막대기와 어우러져 불장난에 익숙해져 있다. 뿐만 아니다. 오르가즘에 중독된 레크리홀(recrehole), 리조홀(resohole)등 철부지 구멍도 부지기수다. 구멍만으로 한순간 수직 점프하고자 하는 홀신데렐라, 즉 홀렐라(holerella) 세상이다. 그런가 하면 벽촌의 물건은 썰렁한 공황 상태다. 힘도, 돈도, 얼굴도 없어 거들 떠 보는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정착되었다.

구멍은 대한민국 정치인의 속성을 빼 닮았다. 뇌물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먹었다는 정치꾼은 하나도 없다. 시치미 떼는 것에 이력이 나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진상의 일부만 노출되는 판결만으로 곧 유야무야 소멸된다. 잠깐 웅크리고 잠복해 있다가 기회가 포착되면 다시 전면에 나선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게 커다란 문제다. 그 기막힌 능청이 사특한 구멍의 형태와 영락없는 판박이다.

구멍이란 원래 ‘신비’ ‘함정’의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막대기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쑤시기에 바쁘다. 구멍의 암수(暗數)를 판단하는 여유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구멍이라면 매양 담그고 본다. 발작이 끝나고 철수한 다음에야 구멍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이 덫이요 시궁창이었다는 사실이…

구멍의 부패! 그것이 문제다. 정액 무단 투기와 불법 물건 경질 버릇을 사정(司正)하지 않고서는 옥답의 토질(土質)과 자연 환경을 보존할 길이 없다. 금력, 권력, 얼굴 편향을 방지하여 선진 일류 구멍을 지향하는 대대적 캠페인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 구멍 복구 규율을 강제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다.

수입에만 의존하는 벽지의 가난한 물건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금은보화나 권세를 채우려는 저급한 탐욕과 타산을 제거하고 사랑과 신뢰, 물씬한 인성과 지성을 가득 채운 구멍일 순 없는 것일까? 칠흑 같은 어둠에 한 줄기 희망의 햇살을 비춰 보이는 기쁨의 구멍일 순 없는 것일까?

벼락치기로 팔자 고치는 구멍이 아니라 건강한 종자를 부화하고 양육하는 신비한 구멍으로 거듭나는 ‘sexual being' 일 순 없을까? 언젠가는 뒤웅박도 깨지기 마련이고 전열기구의 열선도 끊어지는 법이다. 맷돌질로 초토화(焦土化)된 황무지를 자연 녹지로 재생시키는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앞날을 낙관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