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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시초는 병자에서 마귀 내쫓는 일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19.07.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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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의학을 영어로는 Medicine, 독일어로는 Medizin이라 한다. Medicine의 어원은 Media다. Media는 Medium의 복수인데, 이 낱말은 무당, 영매(靈媒), 매개(媒介), 중간물이라는 뜻이다. 즉 신과 사람과의 사이에 중개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의학이라는 것이고, 병을 주는 악마와 그 병마 때문에 시달리는 병자와의 사이에서 마술이나 주술을 부려서 환자에게 붙어있던 마귀를 내쫓아주는 중간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Medicine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것 역시 그리스신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메데이아(Medea)라는 여신이 있었다. 라틴말로는 Medea, 또는 Media인데, 그 여신은 콜키스(Kolchis) 국의 왕인 아이아테스의 딸이며 태양신인 헤리오스(Herios)의 손녀로서 그녀의 장기는 마술과 주술이었다.

한편 이아손이라는 왕자는 이복형에게 나라를 빼앗겼는데, 나중에 왕국의 반환을 요구하자, 그 이복형은 “만약 황금의 양피(羊皮)를 가져온다면 나라를 돌려주마”라고 했다. 이아손은 아이아테스 왕이 가지고 있는 금모양피(金毛羊皮)를 빼앗으러 가기 위해서 노가 50개나 달린 큰 배를 만들고 전국에서 장사 50명을 모았다. 이게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르고(Argo) 선(船)의 원정 모험이다. 배를 탄 용사들은 갖은 고생을 다 한 끝에 금모양피를 가진 아이아테스 왕국에 와서 왕을 만났다.

아이아테스 왕에게는 신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두 마리의 소가 있었는데, 이 소는 코에서 불을 뿜으며, 구리로 된 발굽을 가진 소인데, 그 옆에는 사람이 얼씬도 못 하게 하는 소였다. 왕은 이아손에게 “네가 저 소의 고삐를 잡아매고서 용의 이빨을 땅에 심을 수 있다면, 금모양피를 내어주마”라고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터무니없는 난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낙심하고 있는데, 이아손에게 홀딱 반한 왕의 딸인 메데이아는 마술로 그를 도와 불이나 칼에도 해를 받지 않는 약을 그에게 주었다.

▲ 워터하우스 작: ‘이아손과 메데이아'(1866~68), 개인 소장

이 장면을 그림으로 한 것이 영국의 화가 워터하우스(Alfred Waterhouse 1830~1905)가 그린 ‘이아손과 메데이아(1868)’로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불이나 칼에도 해를 받지 않은 약을 만들고 있고, 이아손은 넋을 잃고 이를 바라보고 있다.

이 약의 힘으로 사나운 소를 매어 놓고선 용의 이빨을 땅에 심었더니 그 자리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땅속에서 솟아 나왔다. 이아손은 숨어서 그들에게 돌을 던지니, 서로 자기네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서 이아손은 병사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실행했는데도 왕은 금모양피를 주지 않았다.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아손이 타고 온 아르고선을 불 질러 태우고 장사들을 모조리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기미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아손은 자기에게 반해버린 메데이아의 인도로 밤중에 금모양피를 지키고 있는 용을 잠재워 양피를 훔치는 데 성공하여 배를 타고 도망쳤다. 아이아테스 왕은 이 사실을 알고서 그들을 추격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같이 도망칠 때 함께 데리고 왔던 자기 동생을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졌더니 추적해오던 부왕이 자기 아들의 시체토막을 모으는 동안에 이아손의 배는 무사히 도망칠 수가 있었다.

이아손의 아버지 아이손은 왕이었는데, 페리아스가 협박 공갈하는 바람에 못 견디어 자살을 하자 페리아스가 왕위를 강탈한 것이었다. 그래서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페리아스를 죽이고 왕위를 되찾는 궁리를 했다. 메데이아는 시아버지의 원수인 페리아스의 딸들을 불러놓고 그녀들이 보는 앞에서 양을 토막 내어 약초를 넣은 큰 가마솥에다가 넣고선 불을 지펴서 삶은 후에 솥뚜껑을 열어보니 늙은 양이 젊어져서 뛰쳐나왔다.

메데이아는 원수의 딸들에게 그 약의 힘을 자랑하면서 너희들의 늙은 아버지 페리아스를 토막 내어 약 가마에다 담아 넣은 뒤에 삶으면 늙은 아버지가 젊어질 것이라고 권한다. 원수의 딸들은 그 말을 곧이듣고 자기 아버지를 토막 내어 가마솥에 넣고 끓였는데, 메데이아는 진짜 약 대신 가짜 약을 주었기 때문에 시아버지의 원수인 페리아스는 죽고 말았다.

이런 사건으로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추방되어 코린토스에 와서 아들 둘을 낳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난데없이 코린토스의 왕이 이아손에게 자기의 딸과 결혼할 것을 권하자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버리고 그 공주와 결혼하였다. 화가 난 메데이아는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을 죽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독약에 담근 옷을 공주와 공주 아버지인 왕에게 보냈다. 그 옷을 입자마자 옷에서 갑자기 불이 일어나 왕과 공주는 타죽고 말았다.

▲ 샌디스 작: ‘메데이아’ (1907), 버밍엄 미술관

19세기 영국의 화가 샌디스(Anthony Frederick Sandys 1829~1904)가 그린 ‘메데이아(1866~68)’를 보면 메데이아가 공주와 왕을 살해하기 위해 독을 부어 불을 지핀 다음 옷에 사용할 실에다 독을 묻혔다. 탁자 위에는 그녀가 흉악한 마법사임을 알려 주는 상징물들이 보인다. 이 마법의 소재 중 교미를 하고 있는 두꺼비 한 쌍이 유독 눈에 띄는데, 이처럼 낯 뜨거운 교미 장면을 등장시킨 것은 섹스와 질투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미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화가는 메데이아의 주변을 이국적인 액세서리로 장식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원한이 사무쳤는지 메데이아는 분을 참지 못해 애꿎은 목걸이를 거칠게 잡아 뜯고 있으며, 살기 어린 눈동자에는 증오가 이글거리고, 벌린 입술 사이로 저주의 한숨이 새어난다. 샌디스는 그림을 통해 복수심이 한순간에 여인을 얼마나 무서운 악녀로 변모시키는가를 보여 준다.

이렇듯 메데이아는 약의 묘리를 잘 알 뿐 아니라 마술도 잘 부렸다 해서, 그녀의 이름 메데이아라는 이름에서 메디신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옛사람들은 병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마력이 인체에 작용하여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 몸에 붙어서 병을 일으킨 마력을 쫓기 위해서는 특수한 의식(儀式)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푸닥거리기, 또는 무당을 불러서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며 두 손을 모아 빎으로써 손님 즉 병을 무사히 몸 밖으로 모셔 보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병을 쫓기 위해서는 병을 손님 처럼 술과 음식으로 대접해서 보내야하기 때문에, 병 자체를 손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다음 방법은, 병의 마력보다 더 센 마력으로 병을 내쫓자는 방법을 썼는데, 그것이 부적이나 경을 읽는 등의 행위인 것이다.

그래도 병마가 물러나지 않으면 무력으로 병마를 내쫓는 방법을 썼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무당은 으레 무관의 복장을 하고 화살통을 등에 메고 칼을 휘두르면서 무력을 과시하는 행동을 했었다.

의학이라는 ‘醫’ 자를 분해해서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인류가 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왔느냐를 알 수 있는 것이다. ‘醫’ 자의 좌상(左上)의 ‘ㄷ’은 화살을 넣는 화살통이고, 그 속에 矢, 즉 화살이 들어있는 형상을 그린 것이다. 우상(右上)의 ‘?’는 손에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여기에서 ‘又’ 자는 손 ‘手’ 자와 동일하다. ‘醫’ 자의 하방부의 ‘酉’는 그 좌측에 삼수가 빠진 것으로 ‘酒’를 약자로 쓴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합친 글자가 즉 醫인데, 다시 말해 활과 창과 술을 써서 병을 다스리자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는 데에 술이 필요한 것은 소독용으로도 썼고, 또 환자를 수술할 때에 마취용으로도 필요할뿐더러 마귀를 내쫓을 때는 술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병을 고친 뒤에 의사에게 수고했다고 술을 대접하는 시절도 있었다.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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