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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자연풍광, 민초들 삶 노래한 ‘서귀포 칠십리’

[엠디저널]시원한 물, 바람, 그늘이 그리운 여름이다. 이맘때면 바다, 섬, 강, 계곡을 많이 찾는다. 그 가운데서도 제주도는 단연 인기다. 그런 까닭에 제주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다. 추억의 가요 ‘서귀포 칠십리’도 그런 부류다. 이 곡은 1943년 6월 남인수가 취입했다. 아름다운 서귀포 주변의 자연풍광을 노래한 것이어서 지역을 알리는데 한몫하고 있다.

노래제목인 서귀포 칠십리는 1132번 일주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중산간도로(1136번)의 한 구간이다. 그 옛날 새로 부임한 현감이 초두순시를 다니던 이 길은 성읍에서 의귀를 거쳐 서귀포까지 70리(약 28㎞)에 이른다.

잔잔히 흐르는 기타반주 선율 ‘일품’

오케이레코드사가 만든 이 노래음반엔 ‘대지의 사나이’와 함께 실렸다. ‘서귀포 칠십리’는 1938년 가사가 먼저 만들어지고 노래는 5년 뒤 발표됐다. 특히 그 시절 일류작사가였던 조명암(본명 조영출, 다른 이름 김운탄·이가실, 1913~1993년)이 노랫말을 써 눈길을 끈다.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등 불후의 히트곡들을 작곡한 경남 밀양출신 박시춘(본명 박순동)이 곡을 붙여 더욱 유명하다. 당대 최고 가수였던 진주출신 남인수(본명 강문수)의 맑은 목소리가 서귀포의 청정바다와 경관들을 떠올리게 한다. 잔잔히 흐르는 기타반주 선율 또한 일품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우여곡절이 적잖았다. 작사가 조명암의 월북 때문이다. 음반이 나왔을 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으로 ‘월북작가 노래’란 꼬리표가 붙어 금지곡이 됐다. 이후 가수 겸 작사가인 마산출신 반야월(본명 박창오, 다른 이름 추미림, 진방남 등)이 가사를 바꿔 남인수가 다시 취입했다. 그럼에도 개사한 노래의 인기는 여전했다.

조명암은 일반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생활정서와 토착정서를 노랫말에 많이 담아냈다. ‘서귀포 칠십리’도 그랬다. 일제강점기 말 혼돈과 암흑의 상황에서 민초들 삶과 생활현장을 그렸다. 뱃노래, 물파래, 전복, 물새, 물안개 등의 단어들이 정겹다. 충남 아산태생인 조명암은 시인, 작사가, 극작가, 연출가, 레코드회사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4세 때 부모와 함께 서울로 옮겨 서당수준의 보통학교를 다녔다. 1924년 건봉사로 출가, ‘중련’(重連)이란 법명을 받은 이력이 이채롭다. 북한에선 1982년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서귀포엔 ‘서귀포 칠십리’ 노래비가 있다. 작사가의 월북, 금지곡 지정, 개사, 해금 등 수난을 겪은 이 곡을 서귀포시가 1997년 외돌개 동쪽에 주철로 된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나 2004년 여름 태풍 14호 ‘매미’로 부서졌다. 그러자 서귀포시가 (구)라이온스클럽 터인 ‘이중섭 미술관 잔디광장’ 안에 화강석과 청동으로 다시 만들어 제막식을 가졌다. 비에 새겨진 노랫말은 조명암의 월북 이후 새로 바뀐 것이어서 아쉬움을 준다. 처음 취입 때 노랫말은 이렇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물새가 운다
자갯돌이 철썩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 머리 빨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저녁달도 그리워라 저녁별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졌다
모래알이 철썩철썩 소리치는 서귀포 / 고기 잡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
모래알도 그리워라 자개알도 그리워 / 서귀포 칠십리에 맹세가 컸소

노래 배경지 서귀포는 시, 그림, 노래가 있는 항구도시다. 아름다운 풍광만큼 가요의 무대로도 손색없다. 도시전체가 큰 레포츠단지다. 드라마 ‘아이리스’, ‘추노’, ‘태양을 삼켜라’ 등이 그곳에서 촬영됐다. ‘거상 김만덕’,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서귀포 모습들을 보여줬다.

서귀포는 2008년 12월 6일 문을 연 시(詩)공원이 유명하다. 천지연폭포 절벽 위 산책로를 따라 만들어진 시공원은 전국 처음으로 서귀포시 명소다. 삼매봉 입구 남성리공원에서 절벽을 따라 산책로 600m 구간에 있는 시공원은 천지연 재해지구정비사업의 하나로 마련됐다. 서귀포를 소재로 한 전국 유명시인들 시 13편과 노래 3편이 오석, 화강석, 애석에 새겨져 있다. 노래는 오민우의 ‘내 고향 서귀포’, 정두수의 ‘서귀포 바닷가’, 정태권의 ‘서귀포를 아시나요’ 등이 있다.

‘서귀포 칠십리 축제’도 유명

노래 못잖게 ‘서귀포 칠십리 축제’도 유명하다. 1995년 서귀포시칠십리축제위원회 주관으로 천지연광장과 서귀포항 일대서 첫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가을 한라산, 기암절벽, 그림처럼 펼쳐지는 관광휴양지 서귀포를 알리고 있다. 축제는 제주전통문화 정취를 담은 공연프로그램, 서귀포 칠십리 해안에서 펼쳐지는 해양체험 등 다양하다. 서귀포의 간판축제이자 2003년 문화관광부 예비축제로 선정돼 해녀태왁수영대회 등 여러 행사들이 열린다.

서귀포시는 제주도면적의 47.1%를 차지한다. 179㎞의 해안선을 따라 성산일출봉, 용머리해안, 섭지코지 등 화산지형들이 즐비하다.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를 합쳐 유인도 2개, 무인도 10개가 있다. 연평균 온도 16.2도. 한반도에서 가장 따뜻하다. 천혜의 자연환경, 독특한 전통문화, 풍부한 생태자원을 가진 국제관광휴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봄이면 감귤향내가 진동하고, 여름이면 환상적인 바다축제가 펼쳐진다. 겨울은 눈 덮인 한라산풍광으로 상징된다. 제주국제공항에서 5·16도로나 평화로, 번영로를 따라 서귀포권역으로 가면 된다. 성산포항과 뭍을 잇는 뱃길도 생겼다. 서귀포시 천지연광장에서 정방폭포 입구 서복전시관까지 약 1.2㎞구간은 ‘칠십리 음식특화거리’로 길손들을 맞고 있다. 최남단모슬포방어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북으론 한라산, 남으론 수평선까지 이어져

서귀포는 1940년대 전까지만 해도 작은 어촌이었다. 널리 알려진 건 ‘서귀포 칠십리’ 노래 덕분이다. 일제에 눌려 살던 우리 겨레에게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끌어내며 큰 인기를 누렸고 서귀포도 자연스럽게 떴다. 서귀포 칠십리는 거리개념이다. 1416년(태종 16년) 안무사 오식(吳湜)은 제주도 행정구역을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으로 나눴다. 이어 1423년(세종 5년) 안무사 정간(鄭幹)이 정의현청(고성)을 지금의 표선면에서 성읍으로 옮기면서 70리 개념이 싹텄다. 제주목사 이원진이 1653년 펴낸 탐라지(耽羅志)엔 ‘서귀포는 정의현청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고 원나라에 조공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처였다’고 돼있다. 숙종 때 정의현감으로 있던 김성구가 기록한 남천록(南遷錄)엔 서귀포 칠십리에 대해 ‘현청에서 의귀까지 30리며 서귀포까지는 40리가 된다. 북으론 한라산, 남으론 바다가 수평선까지 이어져있다. 

왕성상 편집국장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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