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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초상> 오버 더 탑Over the top
  • 정정만(성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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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생식의 테두리를 벗어난 에로티시즘의 결정체. 암수가 용융된 신인(神人) 일체의 경지다. 그 곳에 어찌 이성(理性)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성애의 본질은 이성간 융합을 위한 강렬한 욕망이다. 갈망의 구현으로 융합되는 순간은 정점(頂点)을 한 단계 더 뛰어 넘은 오버더탑(over the top), 즉 오르가즘(orgasm)이다. 탑(top;絶)을 초월한(over;超) 초절(超絶)상태를 의미한다. 한 점(点)에 응착(凝着)된 성 에너지가 일순간 대폭발, 무한 차원의 별빛으로 발광하는 황홀경. 우주를 뒤흔들어 만상의 실체가 붕괴, 멸실 되는 무아의 실신 상태. 시공을 초월하는 작은 죽음. 살아 있는 육신이 체득한 고통 같은 쾌감, 죽음과 등가(等價)를 이룬 악마적 감각 때문에 ‘죽어도 좋아’를 읊조리며 찰나주의에 마냥 탐닉한다. 서로 이웃한 2개의 파도가 하나의 폭풍노도로 합일되는 생리 현상. 생식의 테두리를 벗어난 에로티시즘의 결정체. 암수가 용융된 신인(神人)일체의 경지다.

그곳에 어찌 이성(理性)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그곳엔 빈부의 격차도, 세벌(世閥)의 높낮이도 없다. 갈등, 걱정이 없고 선악, 우열도 없다. 이 초절정의 세계에는 오직 엄청난 파도에 쓸려가는 미미한 생물체만 존재한다. 한낮 비천한(?) 음란성이 이처럼 찬란한 감각을 빚어내는 인체의 매직(magic)! 빼박이의 박고 빼는 단순한 물리력을 무형의 찬란한 쾌감으로 전환시키는 위력. 삶의 잡다한 찌꺼기마저 모조리 휘산(揮散)시키는 인체의 생화학 반응은 정말 신비로운 것이다.

기껏해야 8~9초, 평생 동안 묶어 모은 15~18시간의 희열이 인류 문명을 창조해 온 저변의 힘이라니…에로스의 극한 상태가 연이어 지속되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법. 그래서 하느님은 탑을 초월하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킨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커다란 암석이나 수목으로 가려진 공간에 숨어들어, 사랑을 나누어야 했던 원시 인간의 행태도 맹수의 공격에서 살아 남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초 절정의 순간에는 자기 방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기 때문이다. 성 행위의 은밀성은 그 시절의 관행이 정착된 것이다.

물줄기가 바닥날 때까지 인체의 심연을 관통하는 생명의 강. 초절정의 보석은 항시 강안(江岸)의 사석(沙石)에 파묻혀 있다. 보석의 광휘를 체험할 수 있는 수단은 생물학적 요식 행위 아니라 금제(禁制)를 철폐한 음란성이다. 보석은 음란성의 극단에서만 광채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진저리치는 쾌감을 방해하는 커다란 요인은 남녀 등정(登頂)의 시간차이다.

경사가 심한 단일 봉우리를 서둘러 올라가는 남자에 비해 완만한 경사를 서서히 걸어올라 여러 개의 봉우리를 넘어 가는 여자. 남자가 3분이면 완주하는 거리를 여자는 10-15분 동안 행군한다. 적어도 10분의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남자의 물건을 제자리에 붙잡아 두는 사이, 여성의 유락 시설을 주유(周遊)하는 구수(口手)의 맹활약으로 시간차를 극복한다. 최고의 여성 달구미는 역시 남자의 구수(口手)다.

남자의 물건은 불안정하고 어설픈 존재다. 조향(操向)장치나 제동 장치가 없어 의지 밖에서 제 멋대로 작동, 정지된다. 저돌하지만 뒷심이 없고 그저 반복 왕복 운동에만 매달리는 단순 노동자. 피동의 하수인이다. 따라서 물건의 힘에만 의존하는 남자는 어리석다. 하지만 물건의 힘을 과신하는 여성은 더 더욱 어리석다. 여성의 절정감은 힘이 아니라 기술에서 우러나온다. 공략의 일차 타켓은 감각 신경이 고밀도로 집적되어 인화성이 뛰어난 여성의 핵심, 음핵이다. HJ(hand job), Bj(blow job)을 거침없이 동원한다.

입과 손은 갖가지 기교로 천태만상의 감각을 빚어내는 다재다능한 성기다. 여체의 빈 곳에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터져 나오면 그때가 바로 남자 물건의 투입시기다. 남자의 물건은 마무리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한번이라도 절정 감의 정체를 체험하지 못한 여성은 불행하다. 하지만 그것의 신화에만 매몰된 여성은 더욱 더 불행하다. 그것은 지향하는 목표일 뿐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목적이 아니며 또한 마음대로 주어 담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세로 접근하다 탑을 넘는 감읍(感泣)의 절정에 도달하면 하느님의 촉복이요 미흡하드라도 잔잔한 쾌감과 포근한 행복을 수확할 수 있다면 상대 남성이 준 사랑의 선물이다.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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