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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 초상> 난중일기Sex Diary
  • 정정만(성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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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하루에 340여 쌍(124,590건, 통계청 통계, 2007)이 혼인 서약을 백지화하다니…날이 갈수록 인연의 거울을 부숴 버리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외도, 폭력, 경제적 무능 등이 표면적 이혼 사유이지만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입지가 넓어지고 자기 중심적 사고 성향 등 가치관의 변화가 이혼을 재촉하는 내면적 인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드러내기 어려운 사연이 숨어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적 갈등이 그것이다. 성적 실행 능력은 타고 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된다. 음식 맛이나 기호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처럼 성적 감흥도 심리적, 육체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더구나 성차(性差), 개인차를 뛰어넘어 성적 조율을 이루기 위해선 상대의 심신에 대한 면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요철(凹凸)의 기하학적 맞춤만으론 일체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휴먼 섹스다. 함께 가는 섹스의 요강은 남녀 간의 성 생리적 차이에서 비롯된 10분이라는 시간차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획일적 성기(性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육감을 터득하고 상대방의 심신을 탐구하는 노력만이 시간차를 줄일 수 있는 요체가 된다.

어디를 무엇으로 어떻게 자극해야만 성감이 고조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섹스 다이어리(Sex Diary)가 그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난중 일기 말이다. 섹셜 이벤트마다 자신의 성적 느낌을 가감없이 기록하고 미흡했던 점, 불만스러운 점, 상대방에게 바라는 점과 자신의 성감대를 솔직하게 기재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백전백승이다. 상대방과 자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참고서가 섹스 다이어리다. 흥미를 반감시키는 심리적, 육체적 문제점도 기술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성적 능력을 질책하거나 비교하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격리로 포장하며 문제점을 제시하고 노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원망(願望)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일기는 반드시 교환하여 정독함으로써 성적 쇄신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언어를 빌린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호소력이 있다. 성적 화제는 더욱 그러하다. 수치감이나 내숭이 끼어들기 쉬운 화두이기 때문에 직접 주문이 쉽지 않다. 섹스 다이어리를 통해 숨겨진 이성의 불씨를 찾아라. 솔직 담대, 담백하게 기술한다. 더 좋은 음악, 환상의 선율을 창조하기 위한 훌륭한 도우미가 될 것이다.

 1월 4일 아내의 일기

이것이 소위 섹스라는 것인가? 영화나 소설의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섹스는 허구인가? 처녀시절의 기대는 초야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순응해야만 하는 인간사이기에 임기응변적 응대(應待)로 첫 날밤 의식을 치른 이래 나는 한낱 수컷의 발정을 해소시키기 위한 가녀린 암컷에 불과했다. 물론 초보자의 미숙을 감안하더라도 남편은 도무지 배려라는 것이 없다. 내 육체가 요구하는 절실한 원망(願望)을 외면한 채 자신의 육감에만 몰두하는 남편의 이기적 성 행동에 환멸마저 느낀다. 틈만 나면 그저 육중하고 딱딱한 괴물을 내 몸에 들이 밀 뿐 정신적, 육체적 공감을 위한 예열 과정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광란 같은 율동으로 흔들어대는 거함이 자폭(自爆)하며 깊은 수면으로 침몰한 뒤에야 나는 겨우 해방감을 느낀다. 나는 단지 남편의 먹거리에 불과한 존재인가? 좀 더 자상하고 성실한 탐구적 섹스는 불가능한 것일까? 언제까지 남편의 성폭력을 모른 척 해야 할까? 이것이 늘 상 반복되는 부부간의 일상사라면 그리고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 아내의 입장이라면 나는 더 이상 아내의 지위를 포기하고 싶다.

1월 4일 남편의 일기

아내는 섹스를 싫어한다. 나를 거부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남편의 존재를 무시한 것이다. 양보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아 처참한 모멸감까지 느끼게 한다. 마지못해 허용하는 육체적 대꾸에도 아내는 여전히 구경꾼이다. 난 항시 아내의 몸을 쫓는 걸신들린 수혜자일 뿐인가? 아내는 마냥 도망치다가 내킬 때만 가끔 은혜를 베푸는 시혜자 입장이다. 나는 여린 새를 포획하는 무지한 사냥꾼일까? 아내 강간을 일삼는 파렴치범일까? 아내는 항ㅇ시 비협조적이다. 아니 철저한 훼방꾼이다? ‘피곤하다’, ‘생리중이다’, ‘감기 기운이 있다’ 아내의 변명은 한결같다. 나에 대한 애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서 내 몸을 들쑤시며 선동질하는 남성의 무식한 동물성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아내가 갑자기 멀리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남자의 성 생리를 이해한다면 ‘남편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막다른 언행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퇴치하는 식의 거절에 익숙해진 아내, 거절하더라도 거절의 매너가 아쉽다. 부부간에도 섹스 예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언제까지 생계형 구걸을 지속해야만 할까? 이제 아내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기혼 남자가 자위행위로 성적 긴장을 풀어내다니…내 자신이 한심하기만 하다. 가끔은 직업여성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패악(悖惡)임을 강변하는 아내와 도둑질이라는 내면의 충동적 모반 사이에서 괴롭기만 하다.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약물은 없는 것일까? 

혼력(婚歷) 3개월 정도의 신혼 부부 일기 가운데 성사(成事)에 관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여성은 수요자의 강요로 파생된 성적 좌절과 실망 때문에 섹스에 대한 환멸을 호소하고 남성은 성적 수요에 미흡한 공급자의 횡포(?)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성적 불협화음은 결코 낯설지 않다. 성 정보의 소스는 대게 대중 매체(媒體)이다. 신문이나 잡지, 소설의 활자, 인터넷이나 포르노 등의 영상물에 반복 접근하면서 나름대로 성의 정체를 그려가며 구체화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원래 미화, 과장, 허구로 포장되어 성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위험한 환상을 심어주기 쉽다.

육신의 포만감은 아무 노력 없이 쉽게 챙길 수 있는 노변의 사석(沙石)이 아니다. 섹스란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요, 생활이기 때문이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 없는 법. 부부 생활의 와중에서 부닥치는 실망이나 좌절을 휘황한 보석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은 서로의 이해와 노력뿐이다. 척박한 땅을 함께 개간하고 경작해야만 찬란한 보화(寶貨)를 수확할 수 있다. 결혼은 육체의 나눔을 공인하는 유일한 통과의례이다. 부부의 인연을 이어주는 최고(最高)의 교량을 통해 서로의 육체를 공유함으로써 정신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상승적(上乘的)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성행동이 생산을 전제로 한 요식 행위일 수 없다. 고감도, 고충실의 섹스를 지향할수록 금실지락(琴瑟之樂의 크기는 커져가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 갈등은 성교(性橋)를 흔드는 풍파(風波)가 되기도 한다. 교각이 침식되어 붕괴되기 전에 이성(異性)의 심신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 섹스 다이어리를 채용하라. 1년, 2년, 아니 평생 동안 계속해도 해로울 게 없다. 낡은 가치관이나 구습에 안주하지 말라. 난중 일기는 이상적 성 관계에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전술전략의 개발은 부부 당사자의 몫이다.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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