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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 초상> 뒷간 소고(小考)

History Of Bathroom

  • 입력 2019.08.16 10:50
  • 기자명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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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아무리 돈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은 먹고 싸고 자는 일이다. 인간은 먹는데 2~3년 이상, 배변으로 1년 남짓의 세월을 할애하며 인간 본연의 생리적 본능을 해결한다. 먹고 싸는 일이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만큼 싸는 장소는 필수 불가결한 생활공간이 아닐 수 없다. 뒷간에선 누구나 가장 사적인 업무를 본다.

뒷간은 은밀성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습속 규범의 틀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욕망의 색깔과 형태가 본연의 모습에 더욱 접근하여 누구나 정신적, 육체적 회포를 마음껏 풀 수 있다. 고립(孤立) 상태의 욕망은 통제를 벗어나면 크기와 색깔이 훨씬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뒷간을 통해 배설의 쾌감을 느끼고 성에 눈을 뜨면서 성적으로 성장한다. 공중 화장실 벽면은 주체하기 어려운 성적 고민과 호기심, 성적 탐구열이 예술(?)로 승화되는 성게시판이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불결함과 역겨운 악취는 아랑곳하지 않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육체의 막무가내식 외침과 미지의 성에 대한 발칙한 공상을 원색의 언어나 그림으로 표출하는 전시 공간. 막연한 성 상식을 확고한 지식으로 확인하고 이성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성 정보 알림판 구실을 하는 것이다. 부담 없이 자신의 성기를 내려다보며 성적 환상을 가미시켜 성 정체성을 자습하는 밀실. 때로는 벽면 게시판의 사실적 포르노그래피가 유발한 성기의 도발 -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랫도리의 분노-을 달래기 위해 유희적 장난으로 물건을 설득하는 성희의 실현 창구이기도 하다.

오늘 날, 화장실은 다양한 욕구를 실현하고 해결해주는 다목적 생활공간으로 진화되었다. 수세식 변기, 첨단 비데, 화장실용 향수, 아로마 오일, 향균 탈취제 등 다채로운 용품으로 채워진 호화로운 내당 또는 사랑채로 정착되고 있다. 대형 거울, 서가(書架), 소형 TV, 사방에서 물줄기를 뿜어내는 욕조, 방귀소리, 오줌소리, 똥소리 등 민망한 소음을 시냇물 소리나 음악으로 은폐시켜 주는 에티켓 벨이 설치된다.

용변은 뒷간의 일부 기능일 뿐이다. 머뭇거리는 배설물을 내보내기 위해 복근에 힘을 집적시키는 ‘운동실’, 초를 다툴 만큼 급박한 뒷일을 처리하는 ‘응급실’이며, 심신을 정갈하게 단장하고 휴식을 취하 수 있는 ‘휴게실’, 신문 잡지를 숙독하게 하는 ‘독서실’, 미성년자 전용 ‘흡연실’, 하루 일정을 미리 정리하는 ‘기획실’, 시간에 쫓기는 출근 시간대에 조식 대신 스낵으로 떼우는 ‘간이 식당’, 생리대를 차거나 교환하는 ‘패드룸’, 화장을 하거나 고치는 ‘파우더룸’, 손, 얼굴, 그리고 몸을 씻어내는 ‘욕실 기능’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미 관용적(慣用的)행태로 저착한 기상(奇想)은 화장실 섹스다. 배변, 배뇨, 목욕 등 문명이 비켜간 원시 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루어지는 밀폐된 공간이기에 알몸과 알몸의 접촉이 그리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고 물기에 젖은 관능이 색다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게다가 물줄기의 압력, 비눗물 위를 활강하는 야릇한 촉감 그리고 변기 시트, 욕조 모서리, 찰랑거리는 물 등 성 보조시설이 구비된 제2의 침상으로, 적나라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하는 쾌감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일이 뒷일 전용 공간을 장악하여 뒷일을 한 구석에 몰아낸 형상이다.

엽록소를 가진 식물은 거의 태양빛을 먹고 산다. 태양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광합성 과정을 거쳐 탄수화물을 만들어 낸다. 식물은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켜 탄수화물에 저장하고 동물은 식물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함으로써 생명 에너지를 만든다. 동물이 식물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수단은 오줌똥을 흙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생태적 뒷간에서 찾을 수 있다. 분뇨 수거를 목적으로 한 푸세식 칙간(則間)말이다. 분뇨 배설과 자우맞춤이 동일 공간에서 함께 이루어지리라고는 언감생심 꿈이라도 꾸었겠는가? 어쨌든 자연법칙을 거역, 지력(地力) 쇠퇴 죄를 범한 대신 화장실 섹스라는 독특한 영역을 창출한 수세식 뒷간이야말로 길이길이 뒷간 문화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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