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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무새의 초상> 들무새의 초상(肖像)Portrait of Penis
  • 정정만(성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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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수요공급의 법칙.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원리이다. 시장 가격과 거래량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있으면 반드시 공급이 따르는 법. 하지만 수요는 여전하되 공급이 따르지 않아 내핍을 강요당하며 궁핍한 생활을 인내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인 남정네들이다.

들무새는 퇴행을 피할 수 없지만 결코 정지되지 않는다. 과묵해 지나 결코 벙어리는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착된 오해와 편견 때문에 노인성의 실상은 심히 왜곡되어 있다. 섹스를 젊은이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노인을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간주하여 노인들의 섹스를 엽기적인 저질 코미디로 희화화(戱畵化)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 그때서야 그것이 엄청난 오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노인의 성은 비록 퇴색되긴 하지만 탈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편으로는 그릇된 고정관념으로 노인의 성을 꽁꽁 묶어 활로를 차단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노인을 들쑤시고 선동질하는 작금의 실태. 노인의 성이 안주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온라인 세상의 야동, 오프라인 상의 활자 매체, 영상 매체가 달린 사내들의 식욕을 무차별 충동질한다. 출렁이는 젖가슴을 드러낸 채 혓바닥을 주고받는 장면은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 뒤엉켜 벌리는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도 이젠 낯선 구경거리가 아니다. 공급을 중지시켜 놓고 구매 욕구를 부채질하는 이율배반. 그래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준동하는 들무새를 다독여야 하는 일이 이 시대 노인들의 운명적 고충이다.

젊은 사람은 모두 예비 노인이다. 노인도 수요를 초과한 공급 과잉의 젊은 시절이 있다. 빛깔 좋은 질그릇을 골라 질그릇에서 우러난 맛깔에 탐닉하며 완성도에 신경을 집중하던 전성기, 양념을 곁들여 음식 맛을 마음껏 음미하던 호시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오랏줄에 포박당한 상태에서 ‘그림의 떡’이라도 먹을 수밖에 없는 배고픈 노인들. 되새김질로 배를 불려야 하는 남루하고 고단한 늙은 성의 현실적 모습이다. 남자는 불쌍하다. 평생을 일벌로 살다 용도 폐기되면 벌집에서 퇴출당한 수벌 같은 늙은 남자들이 너무 불쌍하다. 오갈 곳도 없고, 자생할 수도 없어 그저 객사를 기다려야 하는 수펄 남자들.

달거리가 단속(斷續)할 때부터 들무새의 출입을 달가워하지 않은 아내. 그런대도 닫힌 출입문을 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개점휴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 어느 날부터 문을 굳게 닫고 완전 폐업을 선언한 아내. 역사와 추억이 서려있는 성소(性所)의 문을 섬세하고 면밀(綿密)한 손놀림으로 어루만지고 두들겨 보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는 주책’으로 매도하며 한사코 은둔(隱遁)을 고집한다. 점주(店主)의 의지가 단호해진 것이다. 무상 공급이 완전 중단되어 기초 생계 보장마저 위태로운 비참한 지경. 이때부터 들무새의 바둥거리는 방황과 시련이 시작된다. 아직도 현역을 지키려는 들무새의 집념과 은퇴를 강요하는 아내의 비정한 아집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풍족한 성 생활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해도 최소한의 식생활은 보장해줘야 할 게 아닌가? 사면초가에 빠진 들무새. 성 정체성을 상실한 들무새는 결국 쇠잔과 자진(自盡)의 길로 들어선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생명을 접는 들무새. 이는 자살이 아니다. 자살을 위장한 타살이요, 분명한 강제 퇴직이다. 하릴없이 지체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 대열에 합류하는 들무새.

하지만 끼니마저 때울 수 없는 궁핍에서 탈출하기 위해 처절한 일탈을 감행하는 용감한(?) 노인들도 있다. 갈 곳 없는 홈리스(Homeless) 들무새가 취로 사업장에 뛰어든 것이다. 휘황한 일몰의 장엄한 빛살을 등에 업고 들무새는 나들이를 감행한다. 박카스 할머니, 돗자리 아줌마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허름한 여관이나 쪽방 촌에서 한잔 소주의 취흥을 빌려 ‘죽어도 좋아’를 외치는 초라한 들무새의 무용(武勇). 누가 감히 살아 남기 위한 들무새의 처절한 몸부림을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찌든 일상과 억압된 본능에서 벗어나 성의 정체성과 자아를 확인하는 생존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시니어의 품위를 지키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성을 나눌 수 있는 노인의 성채를 축조할 순 없는 것일까? 이 땅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러브호텔. 60만개 객실의 70%를 차지하는 불륜 남녀를 몰아내고 노인, 숙성인(熟成人)들이 초연한 사랑의 열기를 지피며 행복을 지킬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본다.

정정만(성칼럼니스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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