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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에 숨은 정신병자, 우울증 환자가 자살률이 높다

  • 입력 2019.08.23 10:45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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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필자는 정신과 의사를 20년간 한 후 중년의 위기를 맞았고, 위기를 이겨나가는 안간힘의 하나로 신학공부를 했다. 특히 ‘기독교 초기 역사’ 공부를 통해서 나는 서양인들의 ‘궁극적 질문’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질문’의 중요성을 배웠다. 더 중요한 문제일수록 인생에는 정답이 없거나 그 답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도 배웠다.

1992년 ‘프로작(Prozac)’이 시판되자 미국 의학계는 희망에 부풀었다.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여 ‘의지만 강하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우울증이 사실은 당뇨병이나 그와 비슷한 체질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약물로 치료나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당뇨병처럼 우울증도 유전인자를 통하여 대를 물리며 그 소인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삶의 시련이나 스트레스가 큰 상태에서 발병하는 수가 많다. 적절한 운동이나 생활습관을 통하여 대부분 회복이 되고 정도가 심한 우울증 환자는 당뇨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것처럼 항우울제로 치료함으로써, 생명을 건질 수가 있다.

그러나 80%정도의 우울증 환자들이 완치되는 것을 보고 일부 종교집단은 거센 반발을 보였다. ‘마인드 컨트롤’ 약품(?) 불매운동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그 약을 처방하는 의사를 고소하기 시작했다. 프로작을 사용하여 우울증 치료를 받던 환자들 중에서 증상이 많이 호전되다가 갑자기 자살을 기도한 사례가 발표되자 ‘프로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거나 자살할 확률을 높인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다.

우울증 환자가 자살율이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손가락을 움직일 만한 의사마저 상실된 극심한 우울증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면, 자신에 대한 미움이 남아있는 경우 환자는 ‘자살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다.

과거 10여 년 간 이루어진 대뇌기능의 연구 중에서도 가장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다 준 것은 뇌화학 전도체이다. 세로토닌 등의 분비 정도에 따라서 인간의 기쁨이나 분노, 우울 증상이 조절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인의 40%는 아직도 우울증이 의지력 부족 때문에 온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국인 비율은 조사는 안 해봤지만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본다. 집안에 정신병 환자가 있어도 밖에 행여 알려지지나 않을까 하여 쉬쉬하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누구누구 집에 정신병자가 있다고 하면 주위에서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현대과학은 우울증이란 「대뇌 화학전도 물질의 불균형상태」라고 정의한다. 가을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면 공연히 마음이 울적해져 하숙방에 처박혀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살아가는 도중에 슬픈 일을 당하거나, 사춘기 때의 감정변화 등으로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단지 이것이 도를 지나쳤을 때가 문제인 것이다.

‘병적 우울증’과 ‘삶의 일부인 우울 감정’을 구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미국정신과 학회에 의하면 장애의 심각도와 기간이다. 대학교수를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집밖에 나가기를 거부하거나 꺼린다든가, 살림꾼인 주부가 갑자기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대신에 침대에 온종일 누워있는 일 등이 2주 이상 진행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스트레스가 많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간단히 고칠 수 있는 병도 사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하는 일이 흔하다. 정신병은 감기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부끄러워할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루 속히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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