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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와 사랑

  • 입력 2019.08.29 11:30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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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오월의 갯가는 분주하다. 첨벙! 물 뛰는 소리가 들릴 뿐인데, 빛나는 녹청색 물총새는 삼단처럼 늘어진 버드나무 그늘에 숨은 피라미를 쏜살같이 낚아챈다. “꽥꽥 꾀꾀꾀꽥, 꾀꼴!” 꾀꼬리 한 쌍이다. 버들가지 사이로 두 개의 샛노란 빛이 숨바꼭질하며 봄 노래를 부른다. 갯가는 봄으로 넘쳐난다.

이런 봄이 그 옛날 고구려에도 찾아왔고, 유리왕(瑠璃王, 제2대)은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드나무 밑에 쉬면서 왕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왕이 사냥 간 사이에 두 계실(繼室, 본처가 죽은 뒤 새로 맞은 부인)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하나가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서다. 모든 것을 가진 왕이었지만 무척 슬펐다. 부여족(夫餘族) 출신인 화희(禾姬)와 한족(漢族) 출신인 치희(雉姬)가 싸워서, 결국 치희가 궁을 나갔다. 왕은 <황조가黃鳥歌>를 지어 마음을 달랬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가 정다운데(翩翩黃鳥 雌雄相依)
외로운 이 내 몸, 뉘와 함께 돌아갈꼬(念我之獨 誰其與歸)
《삼국사기三國史記》

불교에서 버들가지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상징한다.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할 때에는 33종으로 나타나는데 그중의 제1위가 양류관음(楊柳觀音)이다.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쥐고 왼손은 왼쪽 가슴에 대고 있다. 때로는 앉아 있는 우측 화병에 버들가지를 꽂고 물가의 바위 위에 앉아 있을 때도 있다. 여기에서 버들가지는 미천한 중생의 어떠한 소망에도 유연하게 응해서 병(病)을 제거해 주는 자비를 상징한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버들가지처럼, 관세음보살님은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이 버들가지로 정병 속에 들어 있는 감로수(甘露水)를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뿌리는 데도 사용한다. 즉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사바세계에 널리 퍼지게 하는 게 목적이다. 고려청자의 상감무늬와 철화무늬에는 흔히 버드나무 문양이 등장한다. 이는 자비의 상징으로 불교의 교화를 염두에 두었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버드나무를 상실의 나무로 여겼다. 그 옛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 강변의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하프를 매달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성경의 시편에서부터 1970년대 해리 닐슨의 <버드나무의 울부짖음Wailing of the Willow>에 이르기까지, 버림받아 애처로운 여인과 실연으로 아픈 이들의 대명사였다.

이런 의미로 버드나무는 훌륭한 문학 소재였다. 버드나무는 애정이 무너지고 끝내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절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버드나무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들을 울고 싶게 만드는 속성이 있는 듯하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모습 때문일 성싶다. 어느 여름날 한강 변 버드나무 우거진 어느 카페에서 멋진 W. B. 예이츠의 시(詩) <수양버들 공원에 내려가(Down By The Sally Garden)>를 읽은 적이 있다.

Down by the salley garden My love and I did meet;
수양버들 공원에 내려가 내 사랑과 만났습니다
She passed the salley garden with little snow-white feet.
그녀는 눈처럼 흰 귀여운 발로 버들 공원을 지나갔습니다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나뭇잎 자라듯 쉽게 사랑하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지만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나는 젊고 어리석어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 하략 -

대문호 셰익스피어의《햄릿》에도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거트루드 왕비가 버드나무가 비스듬하게 서 있는 개울 아래 물속 무덤으로 오필리아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을 처절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16세기인 이때의 버드나무는 갯버들이지 수양버들이 아니다. 중국 원산인 수양버들이 서양에 보급된 때는 18세기라고 한다. 18세기 말 중국의 자기가 서양에 널리 보급되면서 파란색과 흰색으로 그린 수양버들 문양도 따라갔다. 이때 권세가 아들의 구혼을 뿌리치고 사랑을 택한 가려한 중국 처녀의 비극적인 종말 얘기도 같이 퍼졌다. 궁정정원 다리 위로 높이 솟은 버드나무 아래, 가련한 한 여인에게 손을 흔드는 버들잎들이 애처롭게 그려져 있다. 동양적인 것을 좋아했던 당대의 유행이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한비자(韓非子)는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은 가는 허리를 좋아해서 나라 안에는 굶는 사람이 많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왕이 허리 가는 미녀를 좋아하니, 후궁들은 다투어 절식해서라도 살을 빼려 하여 굶어 죽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후 초나라 왕의 후궁을 ‘세요궁(細腰宮)’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양버들은 가지가 가늘기 때문에 세류(細柳)라고도 한다. 그 가늘고 나긋나긋한 가지의 모습은 가는 허리에 다리가 쭉 뻗은 우아한 팔등신(八等身) 미인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여인의 가는 허리를 유요(柳腰)라고 하여 미인의 조건으로 첫손에 꼽기도 하였다. 이를 당나라 두보(杜甫)는 〈만흥(漫興)〉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창밖의 수양버들 하늘하늘 隔戶楊柳弱(격호양류약뇨뇨)
열다섯 살 아가씨의 허리 같구나 洽似十五女兒腰(흡사십오여아요)

신윤복의 유명한 풍속화로〈단오풍정〉이 있다. 단옷날 창포물에 몸을 씻고 그네 타는 모습을 그렸다. 여인들이 상반신을 드러낸 채 몸을 씻고 있는 곳은 수양버들이 서 있는 시냇가다. 수양버들 옆 바위 뒤에는 두 동자승이 몸을 숨긴 채 이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옛날 서울지방에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한다.

북산의 황률은 작대기로 때리지 않아도 절로 벌어지고
北山黃栗不棒坼(북산황률불봉탁)
남산의 푸른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홀로 습하다
南山靑柳不雨濕(남산청류불우습)

석양에 금빛 놀이 질 때 강변 버드나무를 보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여인을 연상하게 한다. 실버들 가지가 늘어진 수양버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많은 시인의 사랑을 받았다. 전설적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감미로운 노래가 들려온다.

It's now or never/come hold me tight/kiss me my darling
- 중략 -
Just like a willow we would cry on ocean/If we lost true love And sweat devotion
(우리는 물가의 버드나무처럼 울었겠지요/참사랑과 달콤한 헌신을 잃어버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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