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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관방서 만들어진 추억의 가요 ‘잘 있거라 부산항’

[엠디저널]지방순회공연 중 코미디언 백금녀 생일축하 자리서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 취입 빅히트…한때 방송금지곡 묶여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온다는 기약이야 없으랴만은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못 잊어 미스 리도 못 잊어
만날 땐 반가웁고 그리워해도
날이 새면 헤어지는 사랑이지만 사랑이지만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정들고요 미스 리도 정들어
행복도 짧은 시간 꿈과 같건만
다음 날짜 다시 만날 마도로스다 마도로스다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추억의 대중가요 ‘잘 있거라 부산항’(손로원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 노래)은 언제 들어도 흥겹고 경쾌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50대 이후 장·노년층이면 기억하는 전통가요다. 4분의 2박자 스윙리듬으로 가사가 그리 길지 않아 따라 부르거나 배우기 쉽다. 다른 유행가들과 달리 3절까지 나가지만 노랫말은 비교적 짧다.

부산시 중구 중앙동 부산항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3절의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이뤄져있다. 1절은 마도로스가 보는 부산항 여인의 순정을, 2절은 곧 헤어질 처지이지만 만날 때의 반가움을, 3절은 행복한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마도로스 마음이 담겼다. 젊은 마도로스와 부산아가씨들 이별을 노래했다. 이들의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한 것이었고, 또한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었다. 원양어선 마도로스들은 가끔 부산항에 들어와 부산여인들과 하룻밤을 보내며 회포를 풀었다. 여기서 빚어지는 청춘남녀 사랑과 이별이 ‘잘 있거라 부산항’에 잘 녹아있다.

‘홀쭉이’ 서영춘, ‘비실이’ 배삼룡 작사에 동참

‘잘 있거라 부산항’은 대부분의 노래가 그렇듯이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노래가 태어난 건 50여 년 전 일이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김용만 씨가 지방공연을 다닐 때였다. 그 무렵 연예인들은 방송이나 전속회사보다 주로 극단에 소속돼 활동했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연주자, 무용수 할 것 없이 주 수입원이 쇼 단이었다. 방송출연이 가끔 있긴 했지만 특별히 인기연예인이 아니고선 가뭄에 콩 나듯 전파를 탔다. 그래서 극단멤버들은 지방을 돌면서 공연을 많이 했다. 김 씨가 소속된 쇼 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부산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코미디언 겸 배우였던 ‘홀쭉이’ 서영춘(1928년 8월 25일~1986년 11월 1일), ‘비실이’ 배삼룡(1926년 12월 27일~2010년 2월 23일) 여자코미디언 ‘뚱순이’ 백금녀 등은 공연을 끝내고 밤늦게 여관에서 묵게 됐다. 숙소에 들어간 일행은 공연을 끝낸 뒤라 한 잔 하자는 분위기였다. 이들은 여관방에서 술자리를 펼쳤다. 마침 그날이 백 씨의 생일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파티가 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행은 백 씨의 생일축하 술잔을 돌렸다. “오늘처럼 좋은 날 술만 마시지 말고 이왕이면 기념노래를 하나 만들자”는 얘기가 우연찮게 나와 모두 그러기로 했다. 생일축하 덕담 한마디와 노랫말 한 소절씩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먼저 배삼룡 씨부터 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 만은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로 운을 뗐다. 다음은 서영춘 씨 차례였다. 역시 백 씨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라고 한 대목 읊었다. 마지막으로 김용만(1933년~) 씨 순서였다. 다음 공연지를 향해 부산을 떠나야하는 점을 들어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라며 배삼룡·서영춘이 만든 가사 앞뒤에 들어갈 노랫말을 지어냈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가사는 평소 손발이 잘 맞았던 작사가 손로원 씨에게 넘어가 매끄럽게 다듬어져 3절까지 나왔다. 여기에 김용만 씨의 뛰어난 악상에다 순발력으로 곡이 붙여졌다. 김 씨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이처럼 지방공연 때 자투리시간을 이용, 짬짬이 작곡했다. 그가 만든 노래들은 대부분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마무리됐다.

쇼 극단 단골곡으로 단시간에 히트

문제는 이 노래를 누가 취입할 것이냐였다. 노랫말과 밝은 음색으로 볼 때 당시 신인가수 백야성이 부르는 게 좋겠다는 제의에 따라 취입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음반이 나오고 발표된 노래가 ‘잘 있거라 부산항’이다. 이 노래는 쇼 극단 단골 곡으로 단시간에 떴다. 백야성은 부산시내 극장 쇼가 있으면 수시로 초청돼 ‘잘 있거라 부산항’을 구성지게 불렀다. 관중들 앵콜이 쏟아지고 방송전파를 타면서 히트곡 대열에 들어갔다. 간드러지듯 리드미컬한 이 노래는 1960년대 중반 월남파병이 시작됐을 때 군함에서 파월장병들이 목 터져라 부르기도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백야성의 독특한 창법이 특징이다. 그 바람에 왜색조 창법이란 오명을 쓰고 1965년 방송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김용만 씨는 이 노래 말고도 백야성의 히트곡 ‘항구의 영번지’, ‘마도로스 도돔바’, 가수 현철이 부른 ‘못난 내 청춘’ 등도 작곡했다. 그는 백야성과는 아주 가까웠다. 둘은 한창 전성기 때 가요계 동료이자 작곡가와 가수로 친했던 사이다. 그 무렵 가요계에 나돈 ‘김군백군(金君白君)’ 용어는 두 사람의 성씨를 딴 것으로 명콤비였다. 김용만 씨는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월하의 공동묘지’ 등 5~6편의 주제곡을 만들었다. 영화 ‘팔도강산’, ‘연전부자’ 등에 출연했고 다른 작품에선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특히 1970년 후반에도 창작활동을 해 노래그룹 ‘강병철과 삼태기’가 부른 ‘행운을 드립니다’를 비롯, 나비소녀의 ‘두 마음’ 등도 작곡했다.

김용만 씨는 가수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무대에 자주 섰다. 1953년 데뷔곡인 ‘남원의 애수’, ‘생일 없는 소년’(1958년), ‘회전의자’, ‘청산유수’, ‘청춘 보우트’, ‘여반장’, ‘청춘의 꿈’, ‘효녀심청’ 등 취입한 노래가 많다. 처음엔 만요(漫謠)가수로 가요계 생활을 시작했으나 트로트가수, 민요가수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작사?작곡가, 영화음악감독, 영화 단역배우 등의 이력을 지닌 원로가수로 요즘도 방송출연, 무대공연, 봉사활동을 하며 노익장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생일날 ‘잘 있거라 부산항’ 노래제작 계기를 만든 백금녀(1931년~1995년 3월 17일, 본명 김정분)는 그날 함께 있었던 서영춘과 콤비를 이뤄 유명세를 탄 코미디계 여왕이었다. 서울여상을 나온 그는 몸매가 풍만(약 90㎏) 했고 애주가였다. 1958년 영화 ‘공처가’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63년 ‘웃기지 마소’(김성운 작사, 하기송 작곡) 노래도 취입했다. 그의 이름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있다. 김수용 감독이 배우로 쓰면서 김정분이란 이름은 배우로서 맞지 않다며 ‘돈이 필요한 여자’란 뜻의 백금녀(白金女)로 지어줬다.

서울태생 백야성, ‘마도로스 가수’ 별명

‘잘 있거라 부산항’을 취입한 백야성(1936년~, 본명 문석준)은 서울태생으로 어린 시절 태평레코드 사무실과 가까워 일찍부터 여러 대중가수들을 만날 수 있어 음악활동을 하게 됐다. 1958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데뷔한 그는 마도로스 관련노래를 많이 불러 ‘마도로스 가수’란 별명으로 인기였다. 대표곡은 ‘잘 있거라 부산항’.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맞은 그는 ‘마도로스 도돔바’, ‘샌프란시스코 굿바이’, ‘항구의 영번지’, ‘마도로스 부기’ 등 히트곡이 많다. 그는 특유의 섬세한 고음으로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왕성상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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