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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조경을 말하다!바람이 전하는 노래, 소리에서 찾는 안정감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19.09.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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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파릇파릇 새 기운이 꿈틀대는 봄의 시기가 지나면 길고 지루한 우기가 시작된다. 날씨에 예민한 이들을 우울하게 할 만큼 궂은 날씨가 이어지는 이 기간은 8월까지 이어진다. 결코,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는 날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간 극심했던 봄 가뭄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밝은 전망도 있다.

▲ 1981년 Gallery Stratford에서 열린 머레이 셰이퍼의 전시를 위해 발매된 앨범 표지

이처럼 불쾌함이나 우울함이 지속되는 날씨이지만 이 빗줄기 덕에 논에 물을 대어 풍년을 기약하고 뙤약볕 가득한 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렇듯 봄을 끝내고 여름을 준비하는 장마는 한반도 여름 날씨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뭄에 단비가 농민의 마음을 풀어주었듯 지속되는 비 소식으로 우울한 마음을 잡아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를 찾아 나선다. 그 어느 장르의 음악보다 자연의 소리, 바람 소리, 계곡의 물소리, 폭포수 소리, 산중에 새소리, 벌레소리, 처마 밑의 낙수 소리, 양철 지붕 위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 다듬이 소리 등 소리를 듣고 있는 그 순간은 마음의 편안함과 때로는 정화되는 느낌의 경험을 하게 한다.

숲 길의 바람이 소나무 솔잎을 스쳤을 때 소리를 풍입송(風入松)이라 한다. 이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들은 생명을 품은 여인들이 태아에게 좋은 감성을 전해주기 위해 소나무 밑에서 풍입송을 듣게 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주로 듣는 격한 음악은 주파수가 높아져도 소리의 크기는 변하지 않고 거의 일정한 특성을 보이는데 이는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우리 몸에 부담을 준다.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소리는 들을수록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자정과 회복작용으로 심신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정원을 조성하는 데 있어 나무와 꽃, 바위와 조각상 등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자연경관을 인문 경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음악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을 함께한다. 그만큼 인간에게 음악은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음악은 인간의 혼돈된 마음을 치유하며, 사회 과학에서는 인간의 언어와 행위를 통합시키고 사회적, 종교적 분류의 계급을 강화하는 매개체로도 이용되었다. 체계적으로 분류된 음악사에서 음악을 통해 한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는 시대별 인류의 생활 패턴과 사고의 방식이 음악을 통해서도 묻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 속 음악의 서사

음악의 서사는 인간은 물론 식물 동물들의 호흡에서도 자연에서도 노래를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소리에 대한 생물 음향학 분야의 연구는 각 동물에 대한 각각의 소리를 녹음하는 방식이었다. 음악이 그러하듯 우리 주변에는 많은 소리가 존재한다. 모든 일상이 소리에 덮여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소리(音)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소리는 맑고 쾌적한 기분을 제공하지만 때론 불쾌함과 짜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이를 우리는 소음(騷音, Noise)이라 한다.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없듯이 모든 음악이 공감을 일으키진 않는다. 그렇기에 음악이나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존재한다.

이처럼 소리는 같은 음(音)이어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나 개인차에 의해 기능과 역할을 서로 달리한다. 또한 물리적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들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소리, 기억속의 소리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소리’(音)는 그 자체로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 머레이 셰이퍼가 활동한 캐나다 온타리오의 숲 이미지

환경의 소리적 짜임새

우리는 다양한 자연적, 문화적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접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자연적, 문화적 소리환경을 소리풍경(Soundscape, 音風景)이라 한다. sound(소리, 音)와 조경을 의미하는 landscape(배경, 풍경)이 합해진 복합어이다. 이 개념은 60년대말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현대음악의 거장으로도 알려진 머레이 셰이퍼(R.Murray Schafer)에 의해 제창되었으며 환경의 소리적 짜임새에 주목한다. 소리 풍경은 우리 주변의 소리 환경을 단지 물리적 음향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닌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듣는 행위와 관련지어 판단하는 사고방식이다. 이 소리 풍경의 개념은 서양 근대의 음악 예술제도를 근원에서부터 성찰함과 동시에 생태학의 태동 시기와 맞물려 나왔다. 소리 풍경이라는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소리 풍경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노래, 생물음의 분석을 통해 동물의 영역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 생물군계 전체의 건강을 평가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자연을 소리로 이해하는 방식은 어렵지만, 효과적인 방식이다. 시각적 정보만으로는 자연의 풍경을 이해하기 힘들고, 야생의 소리 풍경은 정밀한 정보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숲에서 벌목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데이터에서 알 수 있듯 선별적 벌목은 시각적으로는 숲의 모습이 거의 달라지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소리 풍경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말해준다. 겉으로는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풍요로웠던 목초지의 소리가 사라진 결과이다. 인간의 눈이나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는 자연은 착시나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지만 음향학으로 접근하는 소리는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결과물을 나타낸다.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소리 풍경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현재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자연의 현실은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현상보다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숲은 있지만 생물이 없다. 새의 소리도, 곤충의 소리도, 야생 동물들의 소리도 극히 희박해진 것을 우려한다. 셰이퍼의 연구에서 녹음한 소리 풍경의 절반 이상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앞으로 오는 계절에는 이전과 같이 녹음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연의 소리 풍경 자체에는 무궁무진한 정보가 가득하다. 자연에는 우리의 기원과 과거에 관한 비밀들이 들어있다. 그리고 현재의 문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예측 중요한 통찰력까지 소리 풍경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머레이 셰이퍼의 주장처럼 소리 풍경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자연의 소리에서부터 현대 건축물의 방음 문제까지 더 넓은 지평에서 환경을 배려하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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