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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내어준 담백한 밥상 같은 詩, 강릉솔빛안과 의사 시인 정의홍 원장

  • 입력 2019.09.10 15:22
  • 기자명 김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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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서로 기대어 사는 것이라 하여 ‘人’이 되고,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하여 ‘人間’이 되었다. 그렇다면 詩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시는 사람이 쓰고, 사람에 의해 읽히고,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의사 시인 정의홍 원장의 시에는 사람이 있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아픈 이웃이 있다. 도로 위에도, 낡은 벽돌집에도, 둥둥 떠다니는 바다 위에도, 바람에도, 그리고 허공에서조차도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아름답다.

시는 재주가 아니라 따뜻함과 여유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

“시를 잘 쓰거나 좋아했다기보다는 그냥 시를 쓴다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시를 쓰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더 좋았다고 할까요. 그래서 고교 시절에는 적극적인 문예반 활동이라기 보다는 그 분위기를 쫓아 문학이라는 동네의 주변에서 맴돌았던 것 같습니다.”

의사 시인 정의홍 원장의 어린 시절은 글에 심취한 문학 소년도, 백일장을 휩쓰는 예비 문학도도 아니었다. 경기중·고 시절 문학 동아리 ‘AMI(불어로 친구라는 뜻)’에 몸담으면서 친구들과 고전 명작과 시를 함께 읽고 토론을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와 문학의 인연은 서울의대에 진학해서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고.

“시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선후배와 친구들이 함께하는 분위기에 이끌려 문예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시는 한 줄도 쓸 줄 모르는 엉터리 부원이어서 시화전을 할 때면 작품 대신 행사의 잡일을 돕는 게 저의 일이었습니다.”

비록 시는 잘 쓰지는 못했지만 문예부원들과 어울리고 이들의 시화전 작업을 뒤에서 도와주는 것만도 즐겁고 좋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정 원장은 몰랐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따뜻함과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시인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자질이라는 것을…

외로움으로 찾아온 시, 그리고 늦깎이 등단

정의홍 원장도 다른 의대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거쳐 안과 의사가 되었다. 인제의대 백병원에 근무하면서 욕심보다는 사명감으로 환자를 돌보다 보니 감사하게도 1992년 미국 하버드의대 스케펜스 안연구소로 연수를 갈 기회도 주어졌다. 감사함과 소명의식, 그리고 순리대로, 그것이 정의홍 원장이 살아가는 법이었다.

“시는 까맣게 잊고 살았죠. 대학을 졸업한 지 16년이 되던 해, 미국 메인주의 무스헤드 레이크라는 큰 호숫가에 가족이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불현듯 그때의 아름다웠던 정경을 글로 남기고픈 욕심이 생겼지요. 그래서 그 모습을 시로 한 번 옮겨보았습니다.”

그 시가 바로 ‘1997년 여름’, 정 원장이 마흔둘 되던 해에 쓴 그의 첫 ‘시’였다. 한 편의 시였지만 그것은 정 원장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시에 대한 갈망이 보여준 찰나의 꿈틀거림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시인이 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 미동은 더 큰 파장이 되지 못하고 다시 잠들게 된다.

그러던 중 정 원장은 2000년 가족들을 미국에 두고 홀로 귀국을 한다.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정 원장이 택한 것이 바로 시였다. 시인이 되겠다는 무슨 목적을 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술을 잘 못하는 그로서는 일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에 와서 한 편씩 쓰는 시가 그의 마음을 더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을까, 어느새 60편의 시가 모였다.

“제대로 쓰여진 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홀로 지냈던 지난 시간들의 흔적들을 기록해놓은 시들이라서 이것들을 묶어 책을 만들면 좋은 추억의 기념품이 될 것 같아 책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때 시들은 그냥 초보 수준의 습작들이었죠.”

그 시집이 정 원장의 첫 번째 시집 ‘홀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하였을(2002년 출간)’이다. 그때부터 혼자 시를 쓰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써 내려갔다’고 하지만 어느덧 그의 필력에 살이 붙고 시에는 자신만의 철학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흐른 2011년 정 원장은 그의 두 번째 시집 ‘나는 왜 꽃 피우려 하는 것일까’를 출간한다. 그리고 그해 정의홍 원장은 문학계의 권위 있는 시단 ‘시와 시학’의 가을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 강릉

“이전까지만 해도 생각에서 나오는 대로, 그리고 순전히 저의 즐거움으로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막상 등단하고 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으니 이렇게 시를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시, 독자에게 울림을 전할 수 있는 시다운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에 시 쓰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모든 시인이 등단 후 치르는 홍역이라고나 할까, 정의홍 원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대부분 시인이 그렇듯 정 원장 역시 그 고민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 원장에게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2013년 바로 그의 고향인 강릉에서 의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천국아파트(2013년)’과 ‘북한산 바위(2018년)’을 출간한다. 그의 시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최고를 향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주 낮은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우리의 이웃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래서 감정의 속임도, 표현의 과장도 없다. 지나친 은유 대신 어린아이와 같은 솔직함이 담겨 있다. 정 원장은 독자와 교감이 이뤄질 때 시는 생명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시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시집을 한 권 읽는다는 것은 보통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시가 너무 어렵고 관념적이고 비약과 은유가 심하면 오직 시인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시가 되고 맙니다. 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아주 쉬운 말로 주변 일상의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속에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언어라는 도구 속에 슬쩍 숨겨 독자와 찾아보는 과정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어렵게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시를 쉽게 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사물에 대한 깊은 관찰력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없으면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서는 시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원장에게 강릉에서의 일상은 평온한 고향의 삶 그 자체이다. 아침이면 바닷가 해송 숲을 걷고, 일터에 나가 환자를 돌보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올 때면 노랗게 차오른 달이 바다 위로 떠 올라 그를 기다린다.

정 원장은 네 번째 시집 ‘북한산 바위’에서 자신의 시를 “그저 시골집에 내려와 담백한 밥상 하나 받으신 것처럼 편하게 읽어 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그리고, “저의 밍밍한 글에도 간혹 쓴맛 단맛이 있고 더러는 아픈 맛 뭉클한 맛이 있어 어쩌다가 그것들이 가슴 끄트머리에 걸려 마음에 작은 무늬 하나 남겨 놓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참으로 시인다운, 참으로 시보다 더 시 같은 시인의 말이다. 어느 시인이 이보다 더 겸손하게 자기를 말할 수 있을까, 불현듯 강릉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부럽다.

▲ 카페 기와 앞에서 정의홍 원장과 아내 윤상미 씨
▲ 카페 기와 앞에서 정의홍 원장과 아내 윤상미 씨

시인의 고통으로 피는 꽃, 새로운 아름다움을 기다리다!

최근 정의홍 원장의 평온한 삶에 고민거리 하나가 들어왔다. 서울 살 때 정원 가꾸기와 집안 꾸미기를 좋아했던 아내 윤상미 씨를 위해 2년 전쯤 작은 카페 하나를 인수했는데, 그곳이 요즘 아이들 말로 ‘핫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돌보지 않아 방치되었던 오래된 한옥과 정원의 여기 저기를 모두 손질해서 카페 기와(Kaffe KIWA)라고 이름 붙이고, 한옥 내부는 아내의 미적 감각을 발휘해 독특한 색깔의 장소로 바꾸어놓자 초당동 순두부 마을에 또 하나의 강릉의 명소이자 ‘강릉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곳’ 중 하나로 인터넷 포탈사이트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카페 기와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또 하나의 주인공은 바로 정 원장의 ‘시간을 멈추어 커피가 되다-카페 기와’라는 시다. 커피향 가득한 이곳에서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뜰 아래에 100년 전 그 아이들이 뛰어노는 듯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

시와 커피, 그리고 그 따뜻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강릉을 여행할 일이 있을 때 꼭 한번 찾아보기를 바란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겠지만, 정 원장의 시는 지극히 서정적이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지긋이 눈이 감기기도 하고, 아련함에 짧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시는 언어의 예술입니다. 또한, 서정은 시의 생명입니다. 좋은 언어의 선택과 아름답고 맵시 있는 적절한 비유가 독자의 감정을 건드려 그 마음에 가서 닿아야 합니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훌륭한 그림을 보았을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의 가슴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느낄 수 있듯이 독자가 그 시를 읽었을 때도 ‘아’하고 뭔가 느낌이 있어야 하고, ‘이 시, 참 좋다’는 느낌을 전하려면 서정적 묘사로 그 마음에 파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는 그냥 듣기 좋은 말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는 시인의 고통을 양분으로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시인에게 고통을 요구한다. 바로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꼭 언제쯤 다음 시집이 나온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이제는 몇 권의 시집을 내느냐가 아니라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시를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좋은 시가 많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면 10년이 지나도 새 시집을 낼 수 없겠죠.”

등단 후 8년이 지났다. 짧으면 짧은 시간이라고 하겠지만 그새 정 원장은 시인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고, 슬럼프도 겪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엄격해지기 시작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고통 속에 시인을 과감히 던져넣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재를 찾아야겠지요. 의사 시인이라는 핑계로 언제까지 진료실에서 글감을 찾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정 원장은 이제 의사 시인의 굴레에서 벗어나 기도와 안식을 주제로 새로운 글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꼭 진료실이 아니라 짧은 성지순례를 하기도 하고, 환자가 아닌 여러 사람을 만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인의 꽃을 함부로 꺾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고통으로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잘 알면서도 어찌 ‘편하게 받는 밥상 하나’로 표현될 수 있을까. 그래도 정 원장은 “한 권의 시집에서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가 단 한 편만 있어도 그 시집은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라고 말한다.

따뜻한 감성이 살아있는 의사 시인 정의홍 원장이 있는 곳, 그래서 강릉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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