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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단골축가 안치환의 히트곡 ‘내가 만일’

  • 입력 2019.10.29 16:13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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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 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댈 위해 비가 되겠어
더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나 시원하게 내리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워~ 이런 나의 마음을

대중가요 ‘내가 만일’은 가요계 음유시인이자 우리나라 대표적 민중가수로 통하는 안치환의 4집 음반(1995년 봄 발표)에 실려 크게 히트한 노래다. 김범수(본명 김영국)가 작사하고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 리듬으로 잔잔히 흐르는 멜로디와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일면을 보여주는 노랫말, 안치환의 가창력이 돋보인다. 우리들 삶의 이야기와 시대 아픔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끌린다.

안치환의 대표곡 ‘내가 만일’은 우연한 기회에 태어났다. 건축가 출신 음악인(가수) 겸 경영인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의 도움으로 만들어져 성공한 곡이다. 안치환이 어느 날 친구 결혼식장에서 양 대표를 만나게 됐다. 새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던 양 대표는 안치환에게 “누구한테 받은 좋은 곡이 하나 있다. 한번 들어봐라. 내가 부르기엔 안 어울린다”고 말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안치환은 양 대표가 말한 곡의 데모테이프를 자동차 안에서 들었다. 멜로디 느낌이 좋고 마음에도 들었다. 그는 양 대표에게 “그럼 내가 부르겠다”며 김범수 작사·작곡으로 취입, 자신의 간판곡이 됐다.

이 노래는 원래 안치환의 4집 음반에 들어갈 계획이 없었다. 안치환은 양 대표와 만나기 전 4집 음반에 담길 곡들을 음반사로 가져갔다. 반응은 싸늘했다. 담당자가 “안치환 씨, 다 좋은데 방송에서 틀 노래가 없어요. 3~4분 안에 부를 수 있는 1~2곡을 더 넣어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안치환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꾹 참고 “알았다”며 노래를 찾던 중 그날 결혼식장에서 양 대표를 만나는 바람에 ‘내가 만일’ 취입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안치환의 4집 음반에 막차를 타고 들어간 ‘내가 만일’은 크게 빛을 봤다. 특히 음반 성공에 이바지한 곡이자 안치환을 민중가수에서 대중가수로 인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까지 했다. ‘한국 노랫말 대상’ 후보곡에 올랐고 방송과 무대에서 많이 소개돼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김범수, ‘내가 만일’ 계기로 작사·작곡 본격화

노래가 뜨면서 방송 드라마 삽입곡(OST)으로도 쓰였다. ‘김밥’, ‘대화가 필요해’, ‘잘 가’ 등 히트곡들을 부른 여가수 자두가 KBS-2TV 일일드라마 ‘여자의 비밀’ OST에 합류, 2016년 8월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불렀다. 자두 특유의 상큼한 느낌의 창법이 원곡과는 또 다른 맛을 준다. 여러 장르의 드라마 OST작업으로 호흡을 맞춰온 작곡가 김의용과 키맨이 편곡, 연속극에 맞는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었다. 2017년엔 OCN 드라마 ‘블랙’ 삽입곡으로도 쓰였다.

‘내가 만일’은 탤런트 주원, 곽진언 등에 의해서도 리메이크됐다. 주원은 2013년 12월 31일 ‘2013 KBS 연기대상 시상식’ 때 이 노래를 불렀다. 그해 10월 막을 내린 KBS-2TV 월화드라마 ‘굿닥터’에서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앓고 있는 박시온(주원)이 불렀다. 서번트 증후군이란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암산, 기억, 음악, 퍼즐 맞추기 등 특정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현상을 말한다.

‘내가 만일’은 결혼식, 음악회의 단골노래로 자주 불린다. 2013년 6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KBS 도경완 아나운서와 가수 장윤정의 결혼식 때 불렸다. 그날 도경완 아나운서가 장윤정이 좋아하는 ‘내가 만일’을 축가로 열창한 것이다. 그는 결혼 1주년 기념행사 때도 ‘내가 만일’을 또 불렀다. 2015년엔 KBS-2TV ‘불후의 명곡-안치환 편’ 프로그램에서 가수 정준영이 불러 매스컴을 탔다.

이 노래의 작곡 과정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다. 김범수는 남성노래그룹을 결성, 1991년 포크 록 밴드(Folk-Rock Band) ‘노래그림’ 이름으로 음반을 2집까지 내고 가요계에 뛰어들었지만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노래그룹이 깨지면서 그는 솔로가수가 돼 홀로서기를 했고, 노래 못잖게 곡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뛰어난 작곡실력으로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기 시작하다 마침내 ‘내가 만일’을 내놨다. 이를 계기로 김범수는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며 작사·작곡에 본격 나섰다.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음악학과와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출강에 이어 세한대 실용음악학과 보컬전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안치환, 대학시절 노래패로 가수활동 시작

안치환은 2017년 8월 26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생 71주년 기념 봉하음악회’ 때 ‘내가 만일’을 불렀다. 그는 노래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고 달래주는 가슴 따듯한 가수로 꼽힌다. 노래주제엔 사랑·삶·저항의 문제가 녹아있다. ‘386세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2017년 6월 9일 ‘고 이한열 열사 추모문화제’, 촛불정국 때 서울 광화문광장 무대에서 노래했다. 6·10민주항쟁 30주년 공식기념식 때 그가 부른 ‘광야에서’는 참석자들을 뭉치게 했다.

1965년 10월 24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안치환은 서울 신림동 남강고,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시절 노래패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어 학교 내 동아리를 찾다 없어 노래패 ‘울림터’를 시작으로 1986년 노래모임 ‘새벽’,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거쳐 1989년부터 솔로가수가 됐다. 이후 1997년 결성한 밴드 ‘자유’와 함께 더 탄탄해진 록 어법으로 ‘안치환과 자유’만의 음악적 질감을 완성, 선보인 5집 음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정규음반 13장, 자신의 노래 97곡이 담긴 ‘COMPLETE MYSELF’ 앨범을 포함한 기획음반 5장, 2012년 디지털싱글까지 19장의 음반을 냈다.

2014년 여름 대장암수술은 받은 그의 삶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다. 아프면 아프면서 노래한다는 그는 음반 ‘50’에 ‘나는 암환자’란 곡을 실었다. 노래 자체가 바로 삶의 구원이란 생각에서다.

하동출신 정호승 시인과 호흡 맞춰

안치환은 경남 하동출신 정호승(1950년생) 시인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안치환 콘서트-정호승을 노래하다’는 주제로 전국을 다니며 공연한다. ‘내가 만일’, ‘처음처럼’, ‘당당하게’, ‘늑대’, ‘자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위하여’ 등 기존 히트곡들 외에도 시의 느낌을 잘 살린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가슴 뛰는 가사의 ‘고래를 위하여’, 시가 담고 있는 그리움과 쓸쓸함이 유장한 가락에 담긴 ‘풍경 달다’ 등 정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선보이고 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낮은 곳에 시선을 두는 정 시인의 시낭송과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우리들 삶과 시대 아픔을 달래주는 이 공연은 가는 곳마다 인기다.

둘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문학작품을 접해본 적 없는 안치환이 가수로 뛰면서 노랫말 쓰기가 어려워 시를 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문인들과 교류하다 정 시인과의 만남이 이뤄져 음반작업과 공연까지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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