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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서정과 ‘브람스의 눈물’

  • 입력 2019.10.30 13:44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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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 이번 가을은 도심 속 현대인들에게 드높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잠깐의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두차례의 태풍이 지나며 공기는 우리에게 포효하는 음성으로 사랑을 재촉하는듯 했다. 빠른 흐름으로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비치는 강렬한 태양빛은 마치 기쁨이 열리는 창(窓)과 같았다.

▲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
▲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

유난히 높아 보이는 하늘은 대기가 안정화되어 자연이 빚어낸 선물이다. 드높은 하늘과 지금 이 자리, 그 공간의 차이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단연 클래식 선율이다. 클래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을의 서정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지난 호에 이어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올해, 그 인생과 작품을 재조명하는 시간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브람스와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

가을의 서정을 담은 브람스의 현의 음색

방향을 가진 연속의 흐름 속 따뜻한 햇볕과 여유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울려 퍼져 나가는 짙은 현의 음색 생각나게 한다. ‘가을의 작곡가’로 인식되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독일 낭만파 작곡가 중에서도 실내악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의 실내악곡은 독일 실내악 역사에서 큰 정점을 이룬다. 브람스는 24곡이라는 많은 실내악곡을 남겼지만 현악 6중주곡은 단 2곡을 남겼다. 이런 편성의 곡은 실내악의 역사에서 드물다. 브람스 이전에는 보케리니(Luigi Boccherini)와 슈포어(Spohr)의 작품 정도만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곡이 작곡되기 이전 그는 2년간 매년 가을 독일의 데트몰트(Detmold)에서 궁정음악가로 활동했다. 당시 브람스는 궁정악단 사람들과 실내악 연주를 즐기곤 했는데 그러한 경험이 이 6중주곡의 작곡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1번은 6중주의 풍만하고 가득 찬 울림으로 브람스의 윤택하고 짜임새 있는 대위법의 운용에 잘 맞게 쓰여졌다. 대부분의 현악 6중주는 각 두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해 쓰여진 앙상블이다. 6명의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앙상블의 레이아웃(무대 위 자리 배치)은 보통 제 1, 2바이올린, 중앙에 제 1, 2비올라 그리고 오른편에 두대의 첼로가 자리한다.

클라라와 브람스

브람스는 1856년 그의 스승인 슈만의 죽음으로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과 그의 가족의 후견인이 되었고 클라라의 연주 여행 등을 동행하며 주변인들도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었지만 자기 성찰적인 성격의 브람스는 그 이상을 더 나아가지 않았다. 평생 믿음직한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로 서로를 아끼며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그 상태로, 즉 환상으로 남으며 존경심과 얽힌 마음을 가슴 속에 간직했다.

이 시기는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상당 부분 제한되었지만 당시, 클라라 슈만은 남성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프로 연주자로 맹렬히 활약했었다. 여성 전문 연주자였지만 여성으로서의 특혜나 차별을 마다하며 남성 연주자들과 동등한 연주료를 당당히 요구했다고도 알려진다. 슈만의 작품을 꾸준히 세상에 알리면서도 남편과 자신을 하나로 묶는 사회적 인식에는 고뇌하기도 했다.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또한 클라라에게 헌정하였는데 맹렬하고 깊이 있는 연주로 청년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작품을 대중 앞에서 연주한 피아니스트였으며 브람스를 그녀를 자신의 작품을 가장 완벽하게 연주하는 거장이라고 이야기하며 이 음악적 존경은 점차 애끓는 사랑으로 진화했다.

브람스는 독일인의 낭만을 노래했으나 열정보다는 애조를, 격정보다는 절제를 앞세워 그의 선율은 ‘남성적인 선’에 ‘여성적인 음’을 입힌 화음으로 들린다. 겉으로 분출하기 보다는 안으로 삭이는 브람스의 음악은, 희로애락의 정서를 풀어놓지만 마무리는 언제나 밝은 분위기로 맺는다. 그런 이유인지 그의 음악은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준다.

브람스의 첫 실내악곡, 그 회한의 낮은 선율

현악 작품으로는 첫 번째 실내악곡인 현악 6중주 1번 B플랫 장조 작품 18은 그의 청년시절에 작곡되었다. 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하고 작품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이다. 당시 교제 중이던 아가테 폰 지폴트(Agathe von Siebold)라는 소프라노 가수와 연관이 있다고도 전해지지만, 곡을 들어보면 마치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차마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한 감상으로 다소 느슨한 서정적 분위기의 소박하고 음악적인 단락으로 구성된다.

1859년 가을부터 다음해 여름에 걸쳐 작곡된 곡으로 전원적이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단순한 민요풍의 선율이 풍성하여 즐겁고 행복하며 젊고 정열이 넘치는 이 작품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이 곡의 2악장은 D단조의 ‘안단테 마 모데라토(Andante, ma moderato)’로 3/4박자 변주곡 형식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느리지만 명쾌한 악장이다. 특히, 이 작품이 완성된 같은 해에 2악장을 ‘주제와 변주’라는 제목을 붙여 솔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클라라의 41번째 생일에 선물로 헌정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브람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후세의 사람들은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이 곡이 완성된 해인 1860년 10월 하노버에서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당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 (Joseph Joachim, 1831~1907)이 이끄는 앙상블에 의해 초연되었고, 출판은 1862년에 이루어졌다.

이 곡의 감상은 가을 저녁에 느끼는 현악의 깊은 울림, 우아하고 깊이 있는 현악의 소리와 함께 가슴과 영혼이 따뜻해 지는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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