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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자원봉사로 우울증에서 벗어난 주부

  • 입력 2019.11.12 11:52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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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60세의 라틴 아메리카 주부는 한 달 전에 비해 아주 표정이 밝았습니다. 

남편과의 문제 때문에 잠을 못 자고, 가끔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다가, 화가 날 때마다 사탕이건 과자건 먹어댔더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는 그녀에게 제가 권고한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였습니다.

첫째, 30여 년 간 같이 살면서 느꼈던 남편의 문제점, 특히 음주벽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할 것.

둘째, 나에게만 모든 기대를 걸어볼 것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자원봉사를 찾아 볼 것.

셋째, 새 친구를 찾아보거나, 옛 친구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대할 것.

넷째, 그녀의 우울증이 ‘체질적’인 것이므로, 그에 걸맞은 항우울제 치료를 당장 시작할 것.

다섯째, 우리 인생에서 강력한 힘을 부여해줄 수 있는 영적인 분야(Spiritual Field)를 개발해 볼 것. 기도(Pray), 명상(Meditation), 종교 유적지 답사 등을 시도해 볼 것 등이었습니다.

항우울제의 약효를 기다리고 앉아 있지 말고, 우선 나머지 네 가지의 심리적, 사회적 문제에 온 정열을 쏟게 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라틴 여성은 처방해드린 Paxil(팩실) 20mg을 매일 복용하면서, 비교적 양호한 치료 효과를 보는 듯 했습니다. 집 주위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일주일에 3일씩 ‘자원봉사’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도 사귀게 되었답니다. 게다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을 매일 만나게 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남편의 음주문제에 대한 것은 아주 잊어버린 듯했습니다. 아마 병원에서 보는 수많은 환자들의 각종 질병, 곧 심한 음주에 관련된 문제들을 옆에서 보면서, 남편에 대한 재평가(?)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환자는 조심스레 서두를 열었습니다. “제게는 40대의 외아들이 있답니다. 남편이 플로리다 주로 휴가를 떠날 플랜을 세워서 아들 부부와 우리 둘은 일등석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 며느리가, 일주일간 우리 두 부부가 묵을 숙박소를 너무나 싼 곳을 예약했답니다. 플로리다는 워낙 습한 곳이라, 혹시 싸구려 숙박소에는 벌레가 있을지도 모르니, 다시 한 번 확인해보라고 저의 여행 에이전트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말이, 며느리가 우리와 여행하는 것을 취소하겠다나요? 분명히 자신이 너무 긴장하게 되어서 휴가를 즐기지 못할 거라는군요. 아니, 제가 무얼 잘못했다고, 저희랑 같이 가면 긴장이 더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한달 전에 아주머니가 우울한 감정 때문에 고통 받으실 때에는 그 원인을 알 수 있으셨나요? 우울, 긴장, 두려움, 불안감 등등 이런 감정(Emotion/Feeling)들은 뇌저부(Subcortex)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절이 힘들고, 원인을 찾기 힘들지요. 왜냐하면 사고하고, 분석하며, 원인들을 규명하는 기능은 대뇌 피질의 역할인데, 서로의 부서가 아주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그럼 우리 아들은 뭡니까? 아내의 감정이 부모의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하기는 얼마 전에 둘이 별거를 한 적은 있지만.”

“우선 아드님과 며느님의 감정 조절하는 일을 해야 되겠군요! 결혼생활이 계속되려면….”

“하기는 걔들이 십여 년 살면서 처음 하는 별거였지만!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다니, 이 다음 번에 오셨을 때에 더 깊이 의논하면 어떨까요? 그때까지는 열심히 봉사하시고, 남편과 두 분이 즐거운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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