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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마음을 갈대에 빗대 만든 대중가요 ‘갈대의 순정’

  • 입력 2019.11.15 11:27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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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아아아~~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가신 여인이 눈물을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눈물에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아아아~~아 갈대의 순정

가수 박일남이 부른 ‘갈대의 순정’(4분의 2박자, 트로트곡)은 중·장년층 남성들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낙엽의 계절 가을이면 자주 불린다. 이 곡은 남자 마음을 갈대에 빗대 만들어진 대중가요다. 오민우(본명 차상용) 작사·작곡으로 1964년 첫 발표되고, 1966년 가을 음반이 나온 저음가수 박일남의 공식 데뷔곡이다. 킹레코드사가 이 노래와 ‘그 여자에게 내 말 전해주오’ 등 12곡을 실어 선보인 음반은 큰 인기를 끌어 30만 장이 팔렸다. 음반 앞면에 박일남 노래 6곡, 뒷면에 한지영·김복자 등 남녀가수(6명) 노래 6곡이 실렸다.

작사가 정두수가 노래 사연 증언

‘갈대의 순정’은 작사·작곡을 한 오민우와 가수 박일남의 자전적 노래로 알려져 있다. 군 입대로 애인과 헤어진 오민우가 제대 후 “빨리 결혼하라”는 집안어른들 성화를 못 이겨 가출한 옛 애인 소식을 듣고 만들었다는 설이다. 다른 설은 박일남이 떠나간 여인(‘희야’)을 그리워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 얘기가 설득력 있다는 게 가요계 사람들 견해다. 노래를 부른 가수보다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인 사람의 자전적 작품이란 설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남자의 참회록 같은 가요 ‘갈대의 순정’이 태어난 배경에 대해 작사가 정두수(작고)가 생전에 들려준 얘기가 일리 있게 받아들여진다. 홍익대학교 법대생 오민우는 사법고시를 세 번이나 쳤으나 계속 떨어져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그에겐 이리공고 시절부터 지역 음악모임에서 만난 지숙이란 여자친구가 있었다. 둘은 고교졸업 후 자연스럽게 애인 사이가 됐다. 노래 배경지가 된 곳은 둘의 데이트코스였던 전북 이리 목천교 아래 만경강가 갈대숲. 애인에게 아무 확신도 주지 못하고 입대한 오민우는 제대 후 ‘집안의 결혼성화를 견디지 못한 애인이 가출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탓이란 죄책감에 쌓였다. 남자의 진한 순정을 덧칠한 ‘갈대의 순정’은 그런 마음을 담아 작곡한 노래였다는 게 정 작사가 설명이다.

오민우는 곡을 만들면서 세상 흐름을 노랫말에 잘 접목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시대와 세대를 헤쳐 온 사나이들 노래로 1960년대 상황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빗댔다는 것이다. 노래가 발표된 1964년은 이합집산의 혼란기였다. 1960년대는 3·15 부정선거, 4·19혁명, 이승만 대통령 하야, 5·16군사정변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엔 배신과 타협의 물결이 일었다. 노래 소재가 된 갈대는 지조 없음의 상징물로 비유됐다. 오민우가 노랫말을 썼을 때 그 무렵 기회주의적 시대 상황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음을 암시했다는 견해다.

1960년대 대표 가을 시즌 송(Season Song)

1966년 킹레코드에서 제작된 ‘갈대의 순정’은 박일남 음반에 거의 담겼다. 새 곡을 발표한 음반에 이 노래가 빠지면 장사가 안될 정도로 빅히트했다. 나중엔 어느 게 처음 발표한 음반인지 확인조차 힘들 만큼 약방의 감초 같은 곡이 됐다.

‘갈대의 순정’은 나훈아, 오기택, 강병철과 삼태기, 주병선 등 남자가수는 물론 은방울자매, 문주란, 오은주, 김수희, 김연자, 최진희 등 여가수들까지 리메이크해 불렀다. 그 바람에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가을철 노래가 됐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절묘하게 그려낸 이 노래는 1985년 KBS가 뽑은 ‘시대별 트로트 대중가요 베스트’(1960년대 톱10에서 6위)에 올랐다. 특유의 저음이 매력적인 박일남의 호소력 깊은 목소리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래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박일남이 음악인 오민우로부터 곡을 받았을 때 ‘사나이 순정’이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갈대의 순정’으로 바꿨다. 그는 “요즘처럼 작곡자를 엄격하게 가렸다면 공동작곡가로 내 이름이 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남은 1945년 3월 부산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1939년생이다. 태어난 때가 일제강점기로 그는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엔카(演歌-일본 대중가요장르의 하나)도 잘 부른다. 부산 해동고, 동국대(불교철학과)를 졸업했다. 가요계 데뷔 연도는 1953년. 67년째 현역가수로 뛰고 있다(본인이 2018년 12월 23일 KBS 제1라디오 가요프로그램 ‘세월 따라 노래 따라’에 출연해 밝힌 내용임).

그는 큰 몸집에서 울려 나온 특유의 구수한 저음이 노래 팬들을 사로잡는다. 문주란과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저음가수로 꼽힌다. 후배가수 현철의 애창곡이기도 한 ‘갈대의 순정’이 크게 히트하면서 후속곡 ‘그리운 희야’, ‘엽서 한 장’, ‘정’, ‘정 주고 내가 우네’, ‘마음은 서러워도’, ‘전선야곡’ 등 저음의 맛을 살린 노래를 불러 줄줄이 히트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로부터 “가요 테이프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옛 노래 40여 곡을 불러주고 두둑한 사례를 받은 일화가 있다. 스피커가 앞뒤로 달린 대통령 전용차에 박 대통령이 들을만한 ‘산 팔자 물 팔자’, ‘복지만리’, ‘나그네 설움’ 등을 불러 테이프에 담았다. 그는 20여 년 만인 2017년에 신곡 ‘정녕’을 냈다. “당신은 나에게 할 말이 없나요~”로 나가는 이 노래는 조운파 작사, 임종수 작곡으로 박일남이 새로운 목소리(테너) 버전으로 불러 이채롭다. 그는 “20여 년 사업 등을 했으나 제대로 안 됐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신곡을 냈다. 노랫말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부른 2000여 곡의 노래 중 100곡을 골라 인기특집음반을 낼 계획이다.

작고 대중문화예술인 추모제 등 대외활동 ‘활발’

박일남은 △제11대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 △1985년 가수노동조합 설립 초대위원장 △(주)코리아뮤직 회장 △전국예능인노동조합연맹 가수지부장 △재단법인 한국인력개발원(한국 연예인 국외송출 협의기구) 회장 △한국노총 전국예능인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주)민기획 회장 등을 지냈다.

전국예능인노동조합연맹 상임고문으로 봉사 중이다. 지난해 11월 27일엔 ‘2018년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 봉사대상’을 받았다. 국제엔젤봉사단에서 전국자원봉사연맹 활동과 6·25 납북자 가족 위로공연을 활발히 한 공로다. 또 하나 화젯거리로 ‘제1회 故 문화예술인 합동 추모제 및 위패 안치식’을 가져 눈길을 끈다. 2017년 6월 25일 대성사에서 대중가요 태동과 발전을 위해 작고한 대중문화예술인들을 기리는 행사로 대중음악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 유족, 시민 5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요양병원 건립도 추진 중이다.

노래 제목으로 나오는 ‘갈대’는? 겉모습이 대나무와 비슷한 데서 비롯된 이름

‘갈대’는 겉모습이 대나무와 비슷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화본목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북극에서 열대지방까지 물가에서 무리를 이루며 자라는 대형식물로 잎이 넓고, 1.5~5m까지 자란다. 깃털 모양의 꽃이 무리 지어 피며 줄기는 곧고 매끈하다. 땅속줄기가 있어 옆으로 뻗어나가면서 마디에서 수염뿌리가 난다.

꽃은 8월 하순~9월에 핀다. 자주색에서 자갈색으로 바뀌며 꽃 모양은 중심축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나와 꽃이 달리는 원추형의 꽃차례로 끝이 밑으로 처진다. 전체 길이는 15~40cm, 열매는 10월에 익어 씨앗이 바람에 날린다.

우리나라 갈대군락지로 유명한 곳은 충남 서천군 금강하구 신성리 갈대밭, 전남 순천만 갈대밭 등지가 꼽힌다. 한방에선 갈대 뿌리줄기를 말린 노근(蘆根)을 위 운동 촉진, 이뇨, 지혈 등에 쓴다. 중금속 등이 흘러드는 곳에 갈대를 심어 나쁜 물질을 걸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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