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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말이 없는, 귀여운 소년 이야기

Selective Mutism이라는 질환

  • 입력 2019.12.18 10:30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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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말이 없는 아이

아주 또릿또릿하게 생긴 여섯 살배기 소년이 엄마의 손에 끌려 찾아왔습니다. 영리하게 느껴지는 반짝이는 눈동자나, 엄마와 소곤거리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짐작이 가지 않는 소년이었습니다. 실력이 상당히 좋은 아이들만이 입학이 가능한 사립초등학교 1학년생이라 합니다.

“이름이 뭐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청각에 문제가 있나?’하고 의심하기에는 소곤거리는 소리일망정 엄마와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분명하고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지?”
“좋아하는 친구 이름 하나만 말해 줄 수 있니?”

소년과 상담을 시작하기 이전에 전화를 통해서 하소연한 엄마의 말씀대로, 엄마나 가까운 가족 이외에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 아이’임이 확실했습니다.

‘Selective Mutism’이라고 불리는 이 소아정신과 증세는 5~6세에 시작되고, 일반인 중에 0.6~0.8%정도 나타나는 병입니다. 제가 소아정신과 의사를 한 과거 약 38년 동안 약 20명의 이런 환자를 본 듯하니, 아마 21번째 케이스인 듯합니다. 대부분 치료 경과가 아주 탁월하기 때문에, 사실은 이보다 더 많이 보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대부분의 경우처럼, 소년도 출생이전이나 이후에 별 문제가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9개월간의 임신기간(Full-Term Baby)을 거쳐서, 황달이나 다른 선천적인 기형이 없는 7파운드 몸무게의 정상아였답니다. 6개월에 앉기 시작하였으며, 한 마디씩 말을 하더니, 2살이 되자 두세 마디 말을 시작했답니다. 세 살에는 제법 두 개의 단어를 섞어 쓰는 발달 능력까지 보였답니다. 그러다가 소년은 한국에 있는 외가에 가서 유창한 한국어를 배웠답니다.

미국인 아버지는 두 살이 되기도 전에 한국으로 떠나버린 소년을 무척 그리워했답니다. 비록 소년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지만, 소년을 위해서 이웃에 살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엄마가 소년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것은 소년이 4살 정도였습니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는 주말이면 소년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둘은 가끔 낚시도 가고, 모형 비행기도 만들어서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소년은 한국말을 차츰 잃어갔고, 영어를 배웠습니다. 미국에 되돌아온 소년의 어머니는 이혼 후의 외로움과 생활수단을 찾느라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가능한 한 소년의 앞에서는 언쟁을 삼갔습니다.

침묵 속에 벌어진 사건

소년이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Selective Mutism’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즉 학생들이나, 선생님의 질문에 절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고, 누구에게 말을 거는 적도 없었답니다. 그러나 머리는 영리해서, 수업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뿐더러, 모래 쌓기나 축구 등의 그룹 활동도 즐기는 듯 했답니다. 오랜 전통의 훌륭한 교사진과 교장 선생님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혹시나 소년이 수업을 받기 위해 엄마 곁을 처음으로 떠났기 때문에 오는 ‘결별 불안 심리’증세를 보이나 싶어서 가끔 엄마를 교실에 같이 앉아 있도록 조처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소년은 자신의 엄마와만 대화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해서 이것도 중지되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한 가지 사건 때문에, 소년과 어머니는 정신과에 ‘등을 떠밀려서’ 오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소년은 사고로 학교 층계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학교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 일이 곧장 의학적, 법적 문제로 확대된 것입니다. 즉 아이가 행여나 ‘뇌 손상’이라도 입는 경우가 발생하면 학교의 선생님이나 간호원들에게 법적 책임이 돌아가니, 소년을 더 이상 학교에 등교시킬 수가 없다는 ‘경고’가 내려진 것이지요. 적어도 ‘정신과 의사의 진찰’과 그 소견서를 받기 전에는 학교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말에 엄마나 소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후천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소년

소년은 이 초등학교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비록 학비는 비싸지만 엄마도 가능하면 소년이 이 학교를 계속 다니기를 원했습니다. 요즈음에는 ‘Selective Mutism’증세를 ‘사회적 공포증’증세의 일부로 보는 학자들이 많음을 저는 어머니께 우선 설명해 드렸습니다. 어른들에게도 가끔 ‘강연’을 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겁내는 사회공포증’ 증세가 있는 것처럼 어린이들도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대화에 대해 수줍어하거나, 불안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증세는 본래의 타고난 ‘천성’과 후천적인 각종 스트레스에 의해 악화될 수 있다는 것, 특히 이 소년의 경우에는 부모님의 이혼, 외조부모와의 이별, 그리고 주중과 주말이면 두 부모 사이를 오가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 등과 모두 관계가 있으리라는 것 등…그리고 저는 소년에게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뇌전파 물질을 뇌 안에서 조절시켜 주는 프로작(Prozac)을 소량 처방했습니다.

아이는 드디어 말문을 열고

우선 엄마의 동의를 얻었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이해시키는데 두세 번의 만남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 전화로 우리의 계획을 알렸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부모님과 함께 ‘행동 요법’을 시작했습니다. 즉 소년이 ‘한 마디’말을 할 때마다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친구를 적어도 한 명은 사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프로작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투약 이후 1~2주 또는 간혹 3~4주가 지나서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부모님의 이혼은 ‘자신이 나쁜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고, 엄마, 아빠가 ‘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버지 입에서 직접 나와서 소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족치료시간’을 가졌습니다.

몇 주안에 저는 부모님을 통해서 소년이 드디어 선생님과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친구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답니다. 저와 소년의 교장 선생님과 부모님은 소년이 2학년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축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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