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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石榴나무에 걸린 고전
  •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 승인 2020.03.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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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아침 햇살을 받아 타오를 듯 붉게 피어나는 꽃나무 속에서 인기척을 느낀 참새들이 호록호록 날아간다. 참새들은 빽빽한 가시에 용케도 걸리지 않는다. 천자문(千字文)을 옆구리에 낀 여섯 살 학동(學童)은 사랑 마루 앞 댓돌에 놓인 신발을 살핀다. 스승인 증조부님 신발을 확인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증조부님은 벌써 정좌를 하고 책을 읽고 계신다. 한참 후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학동은 익을 대로 익어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탐스러운 붉은 보석들이 탐나 군침을 흘린다. 휘어진 가지에서 한 통을 따고 싶지만 빽빽한 가시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다.

예부터 사랑 앞에는 훌륭한 자손이 나고 자손들이 번성하기를 바라며 석류나무를 심었다. 일찍이 이율곡 선생은 그의 천재성을 석류 시(詩)를 통해 보여준 일화가 있다. 3살 때부터 말과 글을 동시에 배우던 선생에게 그의 외할머니가 석류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 같게?”하고 물었다. 어린 선생은 잠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석류를 쳐다보고는 “석류 껍질 속에 붉은 구슬이 부서져 있어요(石榴皮裏碎紅珠 석류피리쇄홍주)”라는 옛 시 구절로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아름다운 처녀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해 저승으로 끌려갔다. 처녀의 어머니이자 곡식의 신인 데메테르가 처녀의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딸을 되찾게 해줄 것을 탄원했다. 데메테르가 딸을 찾아 저승을 헤매고 다니니 어떤 곡식도 익지 못했다. 보다 못한 제우스는 "딸이 저승에서 먹은 것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만일에 무엇이든 먹은 것이 있다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알아보니, 처녀는 이미 저승에서 석류 한 알을 먹은 뒤였다. 결국, 데메테르는 곡식이 자라지 않는 일 년의 삼 분의 일만 딸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데메테르는 곡식을 위한 사계절의 변화를 확립하였다.

소설 ≪석류나무 그늘 아래(Shadows of the Pomegranate Tree)≫는 파키스탄 출신 영국 작가 타리크 알리가 쓴 작품이다. 영국 BBC방송이 1991년 중동전쟁 때 ‘이슬람에는 문화가 없다.’라고 보도하자 이에 반발하여 썼다고 한다. 이 소설은 1490년경 이베리아반도 최후의 이슬람 왕국이 있던 그라나다에서 정복자의 대주교가 159개 도서관의 모든 책을 모아 불태우는 화염으로 시작한다. 냉철한 비평가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인 타리크 알리는 따뜻한 유머와 세심한 묘사로 이슬람의 빼어난 문화와 관용 정신을 그려냈다. 이베리아반도의 찬란한 이슬람 문명은 정복을 통한 기독교의 영광보다 더 경이롭고 독창적이며 아름다웠다. 소설 속에서 지혜로운 영주 우마르는 기독교 군대에 목숨을 잃는 순간을 맞이한다. “우리가 저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라.”고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지금 이슬람 국가들은 진정한 구원은 관용과 용서에서 온다는 그의 말을 잊고 있다.

석류나무는 이란 터키 등 중동이나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다. 오랫동안 경작된 석류는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석류는 성서에도 여러 번 나오는 과일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그림과 조각, 모자이크에 많이 이용되었고, 석류 열매 무늬는 성직자의 옷(에봇)에 수 놓였다고 한다(출애굽기 28:33-34). 페르시아에서 석류는 ‘생명의 과일’, ‘지혜의 과일’로 알려져 왔으며, 건강에 유익한 여러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클레오파트라도 석류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최근 천연 여성호르몬이 들어 있는 석류를 즐겨 먹는 이란 지역 중년여성들이, 갱년기 장애를 거의 겪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석류가 주목을 받고 있다.

불교에서는 석류를 길상과(吉祥果)라 하여 귀자모신과 관련된 얘기가 전한다. 귀자모신은 만 명의 아이가 있는 불교의 호법신인데 아이의 양육을 맡고 있다고 한다. 야차(夜叉,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귀신)였던 부자모신이 부처님께 귀의할 때 인육 대신에 먹으라고 준 것이 석류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한무제(漢武帝) 때인 기원전 126년 장건(張騫)이 서역으로 갔다가 13년 만에 돌아오며 석류나무를 가져왔다고 한다. 양귀비도 아름다워지려 석류를 즐겼다고 한다.

석류나무는 8세기경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비록 외국에서 이주해왔지만, 석류는 우리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무다. 고향을 그릴 때 흔히 ‘담 밑에 석류 익는 내 고향’이라 한다. 석류는 화려하고 완숙한 미를 자랑하는 붉은 꽃과,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붉은 과실들이 일품인 기묘한 과일나무다. 뒤틀린 나무에 풍성하게 과실이 열린 모습은 민화에 자주 등장한다. 석류는 씨가 많이 들어 있어 다산(多産)을 상징하고, 생남(生男)의 표징이기도 하다. 혼례 때 새색시가 입는 활옷이나 원삼에 유별나게 석류 문양이 많은데, 이는 석류 송아리처럼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기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한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석류는 안석국(安石國, 이란)에서 들여왔고, 남쪽 지방에서는 석류가 돌을 좋아한다고 하여 뿌리를 돌에 싸서 심는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석류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이 많다. 전북 전주의 석류가 품질이 좋고, 석류를 화분에 심어 선물하는 게 서울의 유행이라는 기록도 있다. 단맛이 나는 감석류, 신맛이 나는 산석류가 있는데 산석류뿌리는 구충제로 쓰였다고 한다.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석류가 으뜸이라 했으며, 석류 알갱이를 쪼개서 씨를 빼고 연지를 만든다고도 했다. 염료로도 사용되었다. 석류는 추위에 약한 편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만 노지에서 자생한다. 석류나무는 보통 과수나 관상수, 또는 약용으로 심으며, 씨로 번식하지만 꺾꽂이해도 잘 산다.

내가 일생 중에 가장 멋진 석류나무를 본 곳은 터키 에페소스의 유적지에서였다. 장엄한 코린트식 셀수스 도서관 정문과 아고라의 멋진 계단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에, 화려한 선홍색 꽃들 사이로 풍성하게 과일들이 매달린 몇 그루 석류나무가 보라는 듯이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런 석류의 모습은 마치 그 옛날 풍요롭게 번성했던 그리스 로마의 항구도시였던 에페소스를 보는 듯하였다. 눈이 시리게 푸른 가을 하늘에 빛나는 황금빛 열매는 위풍당당한 로마군대의 투구 같았다. 육각형 통꽃이 비좁다는 듯이 겹겹이 펼쳐진 선홍색 꽃잎들은 플라멩코 춤 무희들의 풍성한 주름치마가 떠올랐다. 플라멩코 춤도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아랍계 무어인들의 춤에서 유래했다 하니 석류꽃이 연상되었다. 가을철에 터키를 여행하며 끝없이 펼쳐진 석류과수원 사잇길을 버스로 달릴 때는, 흥에 겨워 새로 산 머플러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석류꽃의 꽃말은 ‘원숙한 아름다움’이다. 이해인 시인은 ⟪석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지울 수 없는/사랑의 화인火印/가슴에 찍혀//오늘도/달아오른/붉은 석류꽃//

황홀하여라/끌 수 없는/사랑//초록의 잎새마다/불을 붙이며/꽃으로 타고 있네

해마다 초여름이면 석류나무에서 풍성한 붉은 향연이 벌어진다. 선홍색 꽃들은 깔끔하고 경건하며 다소곳하다. 장마 속에 더욱 타올라 붉은빛들이 주렴을 뚫고 대청마루까지 들어온다. 도저히 끌 수는 없는 황홀한 불빛이지만 가을로 접어들어 열매를 맺으면서 수그러든다. 고개 숙인 가지에 하나둘씩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껍질마저 터뜨려 자줏빛 붉은 보석들을 내보이고야 만다.

가끔 서울에서도 화분에 키운 석류나무를 골목길에서 만날 때가 있다. 석류꽃을 보면 어릴 적 증조부님께서 천자문을 가르쳐주시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립지만 다시 갈 수 없는 꿈 같은 추억이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새큼한 석류 알은 생각만 해도 한 입 군침이 돈다. 서울에 살며 석류를 옥상 정원에 키우다가 두 번이나 겨울을 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새해에는 다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멋지게 키워서 꺾꽂이로 번식하여 지인들에게도 나눠드리고 싶다.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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