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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에 걸린 고전

  • 입력 2020.04.20 09:02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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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올해도 많이 열릴라카나?”
“그래 많이 열릴라칸다.”
“몇 섬 열릴라노?”
“백 섬 열릴란다.”

정월 열나흘 달은 아직 떠오르지 않아 어스름하다. 동생은 커다란 대추나무 가지 사이를 작은 손도끼로 살짝 찍으며 묻고, 나는 찍힌 틈새에 새로 지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찰밥을 대추나무에 먹이며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이미 쇠마답 거름더미에는 수수깡으로 보리, 콩, 나락 등을 만들어 풍년 농사를 지어놓았다. 자정 무렵이면 휘영청 보름달 아래서 타작하여 불태운 후 재를 꿀밤 껍질 되로 몇 섬인지 되어 볼 판이다. 아련한 시절에 했던 세시(歲時) 풍속이다. 

대추나무는 한국인에게 아주 친숙하여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녹아 있다. 풍성한 가을을 대표하는 정경 중에 으뜸
이라면 가지가 휘어지게 열린 붉은 대추, 감, 밤이 아닐까. 선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을 개척하며 구황식물로 대추나무, 밤나무와 감나무를 심어왔다고 한다. 폐백 때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의 다홍치마에 던져주는 붉은 대추는 대추처럼 주렁주렁 아이들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다. 추운 날 따뜻한 대추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는 오랜 풍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찻집에서도 마실 수 있다. 대추는 조율이시(棗栗梨柿)라 하여, 제사상 과일 중 맨 앞에 놓인다. 감과 밤을 제치고 먼저 놓인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충(忠)을 강조하던 시대라, 씨가 하나뿐인 대추는 오직 한 임금을 섬기는 충을 상징하기 때문이라 한다. 

대추는 대조(大棗)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며, 우리말 속담에 자주 등장한다. 흔히 작지만 단단한 것을 말할 때 ‘대추씨만 하다.’라 한다. 음식 앞에서 체면 차리는 양반의 모습으로 ‘양반은 대추 세 알이면 한 끼 요기가 된다.’라는 말도 있다. 소설 삼국지에서 혈기왕성한 관운장의 입술을 ‘붉은 대추 같은 입술’이라 한 것처럼, 붉은 대춧빛은 건강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하다.’라는 말뜻은 여기저기 빚이 많다는 뜻이다. 대추나무에는 가시가 많은데, 이곳에 연줄이 걸리면 풀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연줄이 끊어져 버린다. 그러니 큰 대추나무에는 줄 끊어진 연이 걸려 있는 수가 많았다. 빚쟁이에게 줄 돈처럼 속상하게도 걸핏하면 연이 잘 걸렸던 탓이다. 대추나무 가시를 조지형극여위국(棗枝荊棘如衛國, 대추나무 가시는 나라를 지키는 방위망 같다)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대추나무는 대표적인 가시나무였다.
가시나무에 관한 휘호라면 널리 알려진 안중근 의사의 유묵족자가 먼저 떠오른다. 추구집(推句集)에 실린 글귀로 ‘일일부독서(一日不讀書), 구중생형극(口中生荊棘),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고, 이득을 보면 먼저 그 이득이 옳은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쳐라.’라는 뜻이다. 여순(旅順) 감옥에서 사형을 앞두고도 의연하게 이런 글씨를 쓴 것을 보면 안 의사의 고결하고 뜨거운 구국정신이 글귀에 서려 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哈爾濱)역 플랫폼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직함을 가진 안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한 것은 사적(私的)인 단순 테러가 아니었다. 성현의 말씀대로 나라가 위태롭기 때문에 적의 괴수 이등박문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여기서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은 논어 학이편 학이시습(學而時習)을 떠올리게 하며, ‘견리사의 견위수명’은 논어 헌문(憲問)편에 나온다. 

형극(荊棘)에서 형(荊)은 ‘광대싸리 가시나무’이며, 극(棘)은 ‘멧대추 가시나무’라고 한다. 이 ‘멧대추 가시나무’로 ‘그리스도의 가시’(Christ’s thorn)로 불리는 ‘가시 면류관’(마 27:29)을 만들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병사들은 예수님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둥근 가시관(冠)을 엮어 머리에 씌운 다음 ‘유다인의 왕 만세’하고 외치면서 조롱했다(마르 15,17). 그 이후 이 가시관은 예수님이 유다인의 왕으로 불렸음을 상징하고, 수난과 고통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루살렘 지방에는 적어도 12가지 이상의 가시나무가 있어서 어떤 나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유대 지방에서 가장 흔한 이 대추나무로 가시 면류관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이 가시관은 히브리어 ‘시림’이라고 한다. ‘시림’은 높이가 1~3m 정도 되며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관목으로 잘 구부러져서 모자처럼 둥글게 엮기 쉬웠다. 이 나무는 지중해 연안에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지금도 예루살렘 모리아산 동쪽 경사진 면과 골고다 계곡 등에서 흔히 자라고 있다 한다. 

몇 년 전 북경에 가까운 만리장성에 오를 때, 마침 가을이라 야산에 멧대추들이 발갛게 열려 있었다. 어릴 적 내 고향 언덕에서 본 것과 같은 나무라 무척 반가웠다. 붉은빛을 유난히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그 옛날 ≪시경(詩經)≫ 국풍(國風) 편에도 개풍(凱風)이라는 시를 남겨놓았다. 여기서 가시나무는 멧대추나무라고 하고, 이 시에는 애달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凱風自南(개풍자남) 산들바람 남쪽으로부터 불어와 
吹彼棘心(취피극심) 가시나무 새싹을 어루만지네!
棘心夭夭(극심요요) 어린 새싹이 앳되거늘 
母氏劬勞(모씨구로) 어머니여, 수고하셨습니다. 

음풍이 유행하던 위나라에 아들 일곱을 난 어머니가 자식들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을 가버렸다. 그럼에도 아들들이 그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낳아준 수고에 대한 은혜를 노래한 시다. 극심요요(棘心夭夭)는 즐비하게 늘어선 어린 자식들을 말한다고 한다.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 대추나무속에 속하는 교목성 과수나무다. 한국에는 중국계 대추와 인도계 사과대추 등 생태형이 전혀 다른 2종이 재배되고 있다. 대추나무는 유럽 동남부와 아시아 동남부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야생으로 멧대추가 자라고 있으며, 열매가 큰 대추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대추나무는 열매를 먹거나 약으로 쓰기 위해 오랜 옛날부터 곳곳에서 심어왔는데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란다. 봄이 되어도 아주 늦게 잎이 나오기 때문에 양반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추는 다른 과수에 비하여 풍흉의 변이가 심하며 개화기의 기상조건, 즉 강우, 저온, 일조 부족 등에 풍흉이 좌우된다. 

대추나무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하여 방망이나 떡메 등 높은 강도가 요구되는 기구 어디에나 쓸 수 있다. 목재의 색깔은 붉은빛이 강하므로 요사스런 귀신을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벽조목(霹棗木)이라 하여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부적을 만들거나 도장을 새기면 불행을 막아주고 병마가 범접할 수 없는 상서로운 힘을 갖는다고 믿었다. 아직도 내 시골집에는 낡았지만 6대조 때부터 쓰던 대추나무로 된 커다란 쇠죽 통이 있다. 재 너머에서 이사 오실 때 가져오신 거라니 2백 년은 족히 되었으리라.

어제는 병원 옥상 큰 화분에 키우는 네 그루의 대추나무가지를 가지치기하였다. 진달래는 이미 피었지만, 양반 나무인지 늦게 싹이 트는 대추나무에게는 아직 겨울이다. 코로나 유행 때문에 고려대에서 매주 듣던 고전강의는 개강도 못 했다. 대추가 익을 때면 코로나 사태도 멈출 것이고, 그땐 친한 문도들에게 옥상 대추를 몇 개라도 맛보여 드리고 싶다. 가을이면 옥상에서 생대추 몇 되씩 거둘 때면 고향집에서 대추 줍던 때가 떠오른다. 명절 때면 인절미 빚으려 소나무 안반 위를 누비던 그 옛날 대추나무 떡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떨어져라. 송아지야 밟아라. 아이야 주어라!” 하시던 할머님의 노랫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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