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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감 물음욕증'

퐈가의 질병이 탄생시킨 명화

  • 입력 2020.04.20 12:03
  • 수정 2020.04.20 12:08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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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프랑스의 화가 마네는 19세기 회화를 근대화의 방향으로 전환시킨 역사적인 역할을 한 화가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1832년 1원 23일 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사법부의 고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스웨덴 대사의 딸로 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지적인 분위기에서 매우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부모들은 그를 영재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게 하였으나 그는 학업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고 친구들과 노는 것에 열중하였다. 즐기는 것은 고미술을 좋아하는 숙부를 따라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고전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또 여름이면 부모를 따라 해변에 있는 별장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는 바다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 까가 궁금했다.
그의 아버지는 마네를 자기와 같은 법률 공부를 시키려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해군병학교에 가겠다고 고집했다. 당시 해군병학교에 가려면 배를 탄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입학이 허용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선박회사를 하는 친지에게 부탁해 그를 왕복 8주간의 브라질 항해를 하게 하였다. 배는 리오 데 자네일로에 도착하자 그 눈부신 태양 빛으로 밝은 거리는 마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이름 모를 색색의 꽃들과 새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곤충들에 매혹된 마네는 숲속을 헤매다가 갑자기 나타난 독사에 물려 배로 돌아와 응급치료를 받고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무렵부터 마네에게는 이상한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여성 중에서 이국감(異國感)이 강한 여성을 보게 되면 그녀를 따라가 그녀가 소지하고나 몸에 붙이고 있는 물건들 예를 들어 파라솔, 모자, 목도리, 장갑, 양말, 신발을 자세하게 감상하는 기묘한 행동을 매일같이 계속하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물건이나 신체 일부보다 어떤 목적의 실물을 더 좋아하는데, 어떤 체험 또는 생각 때문에 실물을 피하고 그 상징 또는 비유되는 것을 택하는 것을 물음욕증(物淫慾症 fetishism)이라 한다. 이것의 어원은 아프리카의 원주민 가운데는 나무 또는 돌 등이 특수한 마력을 지닌 것으로 굳게 믿고 이것을 fetico라하고 이것에는 성령이 깃들어 있어 자기를 지켜주고 액운을 멀리해 주는 것으로 맹신하는 것에서 fetishism 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남녀 간의 사랑 문제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속옷이나 양말, 신발, 장갑, 손수건, 모자 등의 무인격한 것에 대한 애착으로 성적인 느낌을 더하게 된다는 것으로 다소 이상한 감은 있으나, 이런 느낌은 누구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이것을 곧 물음욕증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네의 경우는 좀 심하였던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도 어린 나이에 특히 이국적인 감이 강한 여성에 열중하였으며 이런 경향은 어려서 뿐만이 아니라 장년이 되어서도 물음욕적인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그의 ‘롤라 데 밸런스’(1862)라는 그림에서 그 주인공은 당시 파리에 와서 공연 중이던 스페인의 무희로 그녀를 본 마네는 무대 뒤로 가 교섭을 끈질기게 하여 그녀를 그렸다는 것으로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녀의 옷을 보면 무희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형태나 무늬나 색상이 그림의 장미색과 검은 보석이 빛나는 것같이 보이고, 목걸이가 길어서 가슴에 두르고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시인 포드레르는 ‘굉장한 여성이다’라고 감탄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네에게는 물음욕적인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폴리 베르제르 바’(1881-82)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림은 그의 만년의 작품이지만 시각은 비교적 정확하고 색채가 너무나도 수려하여 이 그림을 본 많은 평론가는 “이 이상의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 아닌가?”, “색채미의 정점이 될 것이다”라고 극찬하였다는 것이다.
바의 중앙에는 한 여인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여인의 앞에는 많은 와인병과 술병이 놓여있다. 여성의 뒤는 거울로 되어 있어 그녀의 뒷모습이 비쳐지고 있으며 그 안쪽에는 술 마시며 대화하는 많은 손님의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에는 인간의 시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온갖 색채가 무수하게 널려 있어 마치 비너스의 보석함을 뒤집어 놓은 것 같아 그림이 하나의 무대가 되고 있다. 마네는 이러한 무대에 무엇인가 비밀을 남기는 화가이다. 이 무대의 주역은 여인이며 조역은 카운터 위에 배열된 술병이다. 주역과 조역의 관계를 이렇게 선명하게 그리는 것으로 무엇을 표현하려 하였을까의 의문이 꼬리를 문다.

마네 작: ‘폴리 베르제르 바’(1881-82) 런던, 커톨드 미술관
마네 작: ‘폴리 베르제르 바’(1881-82) 런던, 커톨드 미술관

그림의 나열된 술병들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사람들의 구미에 달렸다 할 것이나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과의 사귐도 술병을 택하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의 여성을 보는 눈에 달렸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지며 그것은 마네의 살아온 방식과 관계된다고 생각된다.
우선 그림의 주인공인 여인은 아름다운 드레스로 몸을 장식하고 있으며 미술평론가들에 의하면 당시 파리에서는 매우 드물게 보는 앞머리를 직선으로 자르고 있으며 특히 목에 하고 있는 목걸이 역시 당시 파리에서는 유행되지 않았던 것이라는 점으로 보아 이 여인 역시 이국에서 온 여인임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 여인은 바의 카운터 안에 서 있다. 그녀의 뒤편에는 거울이 있으며, 그 거울에는 그녀 이외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이쪽 편 세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의 의문이 생긴다.
현재 일반적으로 술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바(bar)라는 용어는 원래 막대기. 빗장, 창살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 소위 ‘경계선’의 의미가 함유된 단어이다. 따라서 이 그림으로 보자면 그녀가 서 있는 바의 안쪽은 성역(聖域)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성역 안에는 누구도 침입하여서는 안 되는 신성한 장소가 된다. 즉 신을 모시는 신전이나 성령이 머무는 산 등에 해당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에덴동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달면 이 작품의 성역에 서 있는 여인은 에덴동산의 이브인 듯싶다. 마네는 이국감이 나는 여인에게 매혹되었으며, 여러 명의 여인과 관계를 맺었던 그의 여인 행각을 배경으로 그림의 주역과 조역을 결부시켜 볼 때 주역은 이브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능히 상상이 간다. 이 그림은 마네가 사망하기 1년 전에 그린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여인 행각의 총정리이며 반성인 듯싶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면 그는 매독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을 모르고 30여 년을 지내다가 결국은 척수매독으로 사망하게 되어서야 매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1860년에 경한 뇌 발작과 더불어 심한 관절통을 느꼈는데 그 통증이 너무 심해 자살까지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주치의는 그 통증은 류마티스성 관절염이라 진단하고 치료하였는데 그 효과는 전연 없이 병은 점점 진행되어 1878년에는 어느 오후에 길을 가다 갑자기 실신하여 병원에 운반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 병원에서 비로소 매독이 척수를 침범하여 그것 때문에 오는 동통이며 운동실조증에 빠지는 한편 좌측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어 그 다리를 절단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마네 작: ‘자화상’ (1879) 개인 소장
마네 작: ‘자화상’ (1879) 개인 소장

그가 그린 ‘자화상’(1879)은 자기의 모습을 거울을 보고 그린 것이어서 좌우가 바뀌었다. 깡마른 얼굴에 매우 심각한 눈초리를 하고 있어 자기의 앞날이 걱정됨을 스스로 느끼는 것 같으며 결국은 자기의 이국감이 나는 여성들과의 무절제한 성 접촉으로 신세를 망치게 됨을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그의 병력을 알고 자화상을 보면 그가 죽기 전에 왜 ‘폴리 베르제르 바’라는 그림을 그렸으며 그 그림은 결국 마네가 이브를 찾아 헤매던 자기의 인생 항로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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