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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비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감성 짙은 가요

  • 입력 2020.04.20 12:07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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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포크가수 채은옥 1976년 가요계 데뷔곡이자 대표적 빅히트곡
김중순 작사·작곡…서정적 멜로디, 시적 가사, 애잔한 음색 인기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날이 생각이 나네
옷깃을 세워주면서 우산을 받쳐준 사람
오늘도 잊지 못하고 빗속을 혼자서 가네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돌아보면은 아무도 없고 
쓸쓸하게 내리는 빗물 빗물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달래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 사람 생각이 나네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돌아보면은 아무도 없고 
쓸쓸하게 내리는 빗물 빗물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달래주듯이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 사람 생각이 나네 
우 우 ~ ~

김중순(金重純) 작사·작곡, 채은옥(본명 최은옥) 노래인 ‘빗물’은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대중가요다. 4분의 4박자 슬로우고고(포크트로트) 리듬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곡이다. 장맛비 내리는 여름철에 들으면 더욱 운치가 있다. 젊은 날의 사랑과 그 뉘우침에 대한 절절한 고백 같이 들리기도 한다.
‘빗물’은 서정적인 멜로디, 시적(詩的)인 가사, 우수(憂愁) 어린 가수의 허스키(husky : 쉰 듯하고 탁한 목소리)한 목소리로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포크와 트로트의 가운데 있는 성인가요의 전형이기도 하다. 특히 같은 가사가 되풀이될 듯한 부분에서 ‘우~ 우~’ 하는 허밍(humming, 입을 다물고 콧소리로 내는 창법)으로 마무리하는 끄트머리 대목은 감성에 푹 젖게 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폴 모리아(Paul Mauriat) 악단, ‘빗물’ 연주
이 노래는 포크가수 채은옥의 1976년 가요계 데뷔곡이자 대표적인 빅히트곡이다. 우리 가요사에 남을 명곡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잔잔히 흐르는 반주에 그녀의 매력 있는 목소리, 애잔한 음색이 대중을 사로잡는다. 채은옥의 목소리는 개성이 뚜렷하다. 허스키를 바탕으로 약간의 비음(콧소리)과 두성(頭聲, head voice)을 보탠 소리다. 감상적인 곡을 소화하는데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두성은 안정된 발성을 하는 사람이 고음역을 낼 때 머리가 울리는 느낌(공명현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를 서양음악에서 두성이라 한다. 고음역을 내지 않아도 올바른 발성을 하는 상태에서 머리가 울리는 듯하면 두성이다. 채은옥의 가녀린 듯 깊은 음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슬프고도 감동적인 노랫말까지 더해져 많은 연인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 
‘빗물’은 1976년 최고인기곡으로 무명가수 채은옥을 인기스타가수 대열에 오르게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20살. 노래가 발표되자 국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만큼 유명했다. 재벌가 2세들이 공연장 밖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기다렸을 정도였다. 그 시절 청년문화의 둥지였던 서울 명동 라이브음악클럽 쉘부르사단의 일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더욱이 프렌치 팝(French Pop)의 거장 폴 모리아(Paul Mauriat) 악단 내한공연 때 ‘빗물’을 특유의 감성적인 멜로디로 편곡한 연주곡을 유럽음악계에 알리는 다리역할도 해 노래에 날개를 달았다.
이처럼 ‘빗물’이 크게 히트하자 채은옥은 여러 음반에서 이 노래를 머리 곡으로 올리기도 했다. ‘빗물’을 리메이크해 취입하는 가수들도 줄을 이었다. 조관우, 정동하 등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 색깔을 입혀 불렀다. 
2014년 코믹영화 ‘수상한 그녀’에 ‘빗물’ 등장
이 노래는 2014년 1월 22일 개봉된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흘러나와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오두리 역을 맡은 심은경이 ‘빗물’을 부른다. ‘수상한 그녀’는 70대 욕쟁이 할머니가 20살 처녀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칠순의 할머니가 난생처음 누리는 빛나는 전성기를 통해 웃음과 감동을 안겨준다. 약 86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이다. 감독 황동혁이 메가폰을 잡았고 심은경(오두리 역), 나문희(오말순), 박인환(박 씨), 성동일(반현철), 이진욱(한승우), 김현숙(박나영), 황정민(애자), 김슬기(반하나) 등이 나온다. 채은옥은 “영화제작진이 ‘빗물’을 부르겠다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나중에 영화를 봤더니 정말 재미있더라. 스토리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잘 나갔던 채은옥에게 먹구름이 덮쳐 큰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1977년 ‘대마초 사건’. 어쩔 수 없이 가수 활동을 접어야 했다. 대법원판결까지 받으며 명예는 되찾았지만 7년 가까이 쉬어야 했다. 그는 판결 후 미국이민을 준비하던 중 결혼(중매)하는 바람에 그냥 눌러앉았다. 
하지만 그의 안정적인 삶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0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았다. 아들이 사춘기 때 말을 잘 듣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때 신앙(기독교)을 가져 지금은 교회 권사다. 2012년 CCM(현대기독교음악,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음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내기도 했다.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하고 낸 것이다. CCM은 대중음악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용 면에선 기독교 정신이 담긴 장르의 음악을 말한다.
‘TBC 대학생 보컬경연대회’ 우수상
채은옥은 1955년 11월 전남 보성에서 기독교 집안 딸로 태어났다. 올해 우리 나이로 66세. 보성여중·고를 졸업한 그는 1970년대 ‘여자 김정호’로 불리며 우리나라 여성 포크음악계를 대표하는 목소리였다. 1975년 ‘Young Family Series 7’ 앨범에 가수 이종용이 부른 가요 ‘너’와 ‘세월이 가면’을 실으며 음반 활동에 발을 디뎠다. 이듬해 ‘빗물’을 머리 곡으로 한 자신의 1집 음반을 냈다. 간판곡이 된 ‘빗물’을 비롯해 ‘어느 날 갑자기’(1983년), ‘지울 수 없는 얼굴’(1985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헌정음반곡 ‘아프다’(2015년), 싱글음반 수록곡 ‘고마워요’·‘입술’(2016년) 등을 발표했다. 리메이크곡인 ‘꿈속의 사랑’ 등도 있다. 2017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포크싱어상 등을 받았다.
한때 채은옥에 관한 틀린 정보들이 나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게 많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동양라디오(TBC) 대학생 보컬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가수로 데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맞지 않다. 그녀가 사는 곳이 시흥으로 고교졸업 후 집을 나와 서울 여의도 아는 사람 집에서 하숙을 하다 보컬경연대회에 나가 얼떨결에 가수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대학생 보컬경연대회 때 상을 받은 건 맞지만 대학은 안 나왔다. 어떤 곳에선 본명이 ‘박세원’으로 돼 있으나 이것 또한 아니다. ‘최은옥’이 본명이다.
‘빗물’ 40주년 기념콘서트…미성의 목소리로 변해 
그는 2016년 11월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가요계 데뷔 40주년 기념 첫 단독콘서트를 열었다. 40년 지기 가수 유익종, 국내 최고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힘을 보탰다. 
흥미로운 건 요즘 채은옥의 목소리가 놀랍게도 맑은 미성으로 거듭났다는 소식이다. 그녀의 미성이 담긴 '빗물'의 유튜브(YouTube)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콘서트를 열며 가수 활동을 다시 하게 된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가수 활동을 접었다가 어렵게 노래를 다시 시작하면서 맑기만 한 내 음성이 참 신기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데 CCM, 복음성가를 부르며 허스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애잔함이 가슴으로 부르는 찬란한 슬픔이 됐다. 그 일이 가요계로 돌아온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빗물’을 작사·작곡한 김중순(1938~1999년)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분이다. 작사가이자 작곡가로 남진의 히트곡 ‘울려고 내가 왔나’(작사)와 ‘어머님’(작사)을 비롯해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작사),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작사·작곡), 조용필의 ‘잊혀진 사랑’(작사) 등을 만들었다. 대중의 심금을 울린 애절한 노랫말과 멜로디로 대중은 물론 가수들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생전엔 “최고 히트곡메이커”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고인은 외국 노래 번안에도 힘을 많이 쓴 음악인이다. 남진과는 인연이 깊다. 1965년 1집 음반 ‘서울의 플레이보이’로 가수로 데뷔한 남진이 노래가 알려지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을 때 히트곡작곡가로 알려진 김영광 씨를 소개해줬다. 지금의 남진이 성공한 가수로 클 수 있게 인기작곡가를 만나게 길을 터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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