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LIFE 문화&라이프
예술적 창의성과 다양성을 담은 확장된 공간으로의 초대예술공간의 이해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20.04.21 09:12
  • 댓글 0
퐁피두 센터 내 연주 장면 스틸컷, 가운데 Michel Guay 보컬, (좌)인도 타악기 타블라, (우)현악기 탄푸라 / 이미지출처 YouTube

[엠디저널]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련의 사태로 인해 모든 공연장이 무기한 휴관에 들어가는 등 대중이 모이는 공연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에서 예술의 분야에 있어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다. 
음악예술의 직접적 소재인 음악적 소리는 시간 진행에 따른 예술적 편성에 의해 그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음악예술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기본단위로 하며 회화나 조각 등의 공간예술에 대해 상대적 의미인 시간예술로 이해된다. 회화나 조각, 건축 등의 공간예술은 3차원의 세계에 실재하는 구체적 소재로 풀어내지만, 시간예술인 문예나 무용, 음악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성되는 모든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성되고 전개되는 예술로 풀어지기에 일정한 시간의 종료와 함께 소멸되는 예술이다.
음악은 그 발생에서부터 언어와 직결되기에 무용과 극작품에 연결된다. 또한 음악은 완성된 그림이나 설치물을 정해진 공간에 전시하는 것과 달리, 연주를 위한 연습시간을 넘어 그 예술행위가 이루어지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때마다 공연 또는 연주를 통한 재현과정이 필수적이기에 음악을 포함한 공연예술의 경우 재현 예술로서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이 요구된다.
 
재현의 예술, 음악을 위한 그 공간
이렇듯 재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음악예술에 있어 공간의 이해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에 앞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정의 방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는 뛰어남으로서의 문화, 예술 및 정신적 산물로서의 문화, 그리고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 중 뛰어남으로서의 문화로 해석되는 방향에 치중할 때, 공연예술계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으로 이분화함에 따라 엘리트주의(Elitism)라는 비판적 질문에 둘러싸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음악전용 연주홀은 때때로 ‘클래식 문화예술공연의 장소’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기도 한다. 즉, 소수를 위한 문화공간으로서 구분 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이해는 소위 예술과 대중문화예술의 이분법과 우열화, 서열화로 인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랑스 국립 조르주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는 소수 엘리트를 위한 박물관 문화에 도전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가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이분법에 맞서 엘리트주의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최대한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과거 미술관이나 콘서트홀은 그 활동의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와 연관되어 여겨졌으며, 특히 오늘날처럼 순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이분법적 구분이 제도적으로 확연해진 사회에서 그 공간이 단지 순수예술만을 위한 곳임을 자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었다.
특히나 일부 공연장들은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그곳에서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기에 여전히 그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들이 존재한다.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전경 / 이미지출처 Klook

세계를 변화시키는 공간으로의 인식 변화
그러나 퐁피두 센터의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노숙자들의 터전으로까지 이용되기도 한다. 공동 제작자인 두 젊은 건축가(그 당시), 영국의 리처드 로저스(R. Rogers)와 이탈리아의 렌조 피아노(R. Piano)는 나이와 종교, 이념, 빈부를 초월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퐁피두 센터를 통해 반영시켰다. 렌조 피아노는 공간건축에 대해 “시(詩)이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의 창설에 힘쓴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1977년 개관된 퐁피두 센터는 실내를 가로 지르는 철골·배관 등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지어 가장 현대적인 파리의 맨 얼굴을 보는 듯하다. 
예술적 창의성과 다양성은 새로운 기획과 도전이 풍부하게 이루어질 때 드러난다. 이러한 창조적 실험을 담아 건축물 하나에도 다양한 접근법을 적용하는 프랑스의 ‘다양성’을 보이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센터 앞 넓은 광장엔 매일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음악을 듣거나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