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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으로 전해준 파라노이아의 진실화가 얀센 (Horst Janssen, 1929-1995)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20.05.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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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화가 호르스트 얀센(Horst Janssen 1929-1995)은 괴짜 화가로 그와 그의 그림은 생전 시부터 많은 화제가 되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가 평탄치가 않아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와 숙모의 손에 의해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그림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미술학교로 진학하여 화가가 되었다.

얀센의초상 1990,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미술관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는 생활이 곤란하자 술집을 열었는데 그 술집의 이름을 ‘손수건 선술집’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간판을 붙이고 영업을 하였으며 파는 술보다 자기가 마시는 술이 많았다. 그는 모주가로 술에 만취해 여러 화제를 낳았으며 때로는 살인사건에 말려들어
구금되어 조사 받는 일도 있었다.

얀센이 그린 자화상 가운데 자기가 술의 취하였을 때의 얼굴의 표정을 그린 것이 있다. 머리카락은 산산이 흐트러지고 그래도 정신 차려 거울을 보고 붓을 놀이고 있지만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던지 그대로 그렸다.(그림 1)

(그림 1) 얀센 작: ‘자화상’(술 취한) 1882,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 미술관

또 환락가와 암흑가를 종횡무진하며 사람의 얼굴과 나체화를 그려서 생활을 겨우 유지하였다. 그러면서 여자관계는 복잡하여 정식으로 결혼한 몇 명의 여자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고는 오래가지 못하고 곧 헤어지는 것이었다.

얀센이 그리는 대상은 정물, 동물, 풍경, 창부, 시인, 부둥켜안는 남녀 등 일상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을 보는 그의 눈은 매우 예리한 관찰력으로 마치 그 표정들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이 그렸다. 즉 그는 뒤라 이래의 독일 전통의 내향적이면서도 내면응시의 강한 묘선(描線)의 악센트를 살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취되지 않을 수 없게 그렸다. 그러면서도 정밀한 데생과 드로잉은 관념의 부댓자루에서 질식하여 오랫동안 잊혔던 화법을 되살리는 듯이 그림을 그렸다.

얀센의 그림에는 이상하게도 유화는 하나도 없으며 그 대부분이 단순한 연필화, 색 연필화 아니면 수채화가 전부이다. 그리고 방대한 수에 달하는 동판화, 목판화, 리도그래프, 그래픽 등을 화가들의 어떤 특수한 파와도 무관한 자신만의 대규모 끼우게 식 화집(Portefeuille)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얀센은 그림을 세 종류로 구별하여 그렸다. 우선은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 팔기 위해 그리는 직업적인 그림과 자기를 초대해주거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게 답례로 선사하기 위한 그림, 그리고 세 번째는 자기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술 마시고 여인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맺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에게는 이상한 병이 생겼다. 병원에 진찰한 결과 편집병(偏執病 paranoia)라는 진단을 받았다. 편집병이란 우리에게는 낯선 병이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이 병의 전형적인 양상을 알아보고 이것에 얀센의 그림을 결부시켜 보기로 한다.

편집병이란 일명 망상증(妄想症)이라고도 하며 이 병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있었던 것으로 히포크라테스 이전에도 이 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즉 환각(幻覺)을 동반하지 않고 체계적 망상상태가 점차 발전하여 정서적 반응과 행동이 피해망상 또는 과대망상과 일치하나 지능은 보존되는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프로이드(S. Freud)는 망상증의 심리적 갈등의 핵심을 동성애적인 소원이나 환상이라고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무의식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욕망을 부정하고 이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투사(投射)가 그 심리적 원인이라 하였다.

망상이란 자기 생각에 생기는 이상 현상의 일종으로
병적인 상태에서 생기는 그릇된 판단인데, 대개는 감정이 내재(內在)되고 이상하게 강한 확신성을 지닌 사람에게 보인다. 또 이런 사람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경험에 미뤄볼 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설득하고, 그런 사실이 없다는 증거를 보여줘도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고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런 사람이 하는 망상의 내용이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신(神)이라고 믿거나, 방에 있는 텔레비전 속에 적이 숨어 있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등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것들에 몰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망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높고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여 집요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이런 성격의 사람이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가족과 동료들의 태도를 곡해하여 불합리한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망상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점점 체계화시켜서 확고한 망상을 갖게 된다.

얀센은 1945년부터 자기의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남긴 말에 ‘끊임 없이 새로운 표정은 탄생된다.’ 라고 하였다. 즉 사람의 표정은 부단히 변하는 것으로, 그 변하는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의사(意思)가 교류되고, 그 사람의 현재의 상태나 의중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무 언어교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한 얼굴들의 표정 가운데는 편집병에
걸린 자기 자신을 ‘파라노이아’(1982-85)라는 화제로 그린 것이 있는데 이 자화상 중에서 망상의 여러 증상이 나타날 때의 표정과 같다고 생각되는 그림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그림 2) 얀센 작: ‘자화상’(주시망상) 1882,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 미술관

주시망상(注視妄想, delusion of observation)이라 해서 다른 사람이 항상 자기만을 주목하고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신문에 난 기사가 자기를 은근히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인데 이러한 망상에 젖었을 때의 표정을 그린 것이 있다(그림 2).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자기를 주시한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눈을 떼지 않고 주목하게 되어 콧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있는데 화가는 그대로 그렸다.

(그림 3) 얀센 작: ‘자화상’(질투망상) 1882,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 미술관

질투망상(嫉妬妄想, delusion of jealousy)이라 해서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의 피해의식으로 생겨나는 망상으로 예를 들어 자기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기 때문에 심한 질투를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다(그림 3).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크게 떠서 어떤 목적물을 주시하며 눈썹은 위로 올라가 있고 미간에 세로로 된 깊은 주름이 잡혀있는 것으로 심사가 편안치 않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4) 얀센 작: ‘자화상’(죄업망상) 1885,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 미술관

죄업망상(罪業妄想, delusion of self-accusation)이라 해서 자기가 저지른 조그만 잘못을 크게 실수한 것으로 생각해 언제까지나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며 또 자기의 가난함이나 빚을 지나친 죄책감을 갖고 한탄하기도 한다(그림 4). 괴로운 나머지 눈을 아래로 깔고 무엇을 생각하다가 자책감을 느낀 나머지 한 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후회하거나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그림 5) 얀센 작: ‘자화상’(과대망상) 1881,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 미술관

과대망상(誇大妄想 grandiose delusion)이라 해서 자기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아주 우쭐하는 표정이나 거만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그림 5). 그림은 눈을 사납게 뜨고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는데 보이는 상대가 자기의 위대성을 몰라주니 참으로 딱하다는 눈치이다.

(그림 6) 얀센 작: ‘자화상’(변신망상) 1882, 올덴블그, 호르스트 얀센 미술관

변신망상(變身妄想, delusion of transformation)이라 해서 자기의 몸에는 신이나 엄청나게 힘이 센 동물이 들어와 있다고 믿거나 아니면 자기의 몸이 동물이나 돌로 변신되어 있다고 믿어 아주 심각하고도 거만한 행동을 하게 된다(그림 6). 그림은 무엇인가에 미쳐 헛것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을 맞추느라고 좌우 눈의 크기가 달라졌으며 그래도 한쪽 손을 올려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려 열심히 바라기 때문에 앞머리의 머리카락이 일떠서있다.

이렇듯 사실의 경험이나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 주관적인 신념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표정을 자신의 얼굴로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얀센의 ‘파라노이아’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파라노이아가 많이 이해 되는 것 같다.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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