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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문화생활, 관객을 찾아가다

  • 입력 2020.05.25 08:52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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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매체, 미디어는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디어의 미래는 이 연결고리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끊어지지 않고 원하는 콘텐츠를 계속 발견해서 즐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매체를 통한 문화 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 산물 그 자체, 그리고 대중에 의해 수용되는 과정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매체를 통한 문화가 대중들에게 다가오기까지의 그 과정은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며 주위의 존재들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도이치그라모폰이 중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의 ‘거실 음악회’ 화면
도이치그라모폰이 중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의 ‘거실 음악회’ 화면

대중매체, 문화의 전달자 역할

대중매체는 대량의 정보와 문화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매체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다매체 시대로 이끌었고 관객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 중인 가운데 외출 자제 부분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나 대면 접촉이 힘들어지면서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갈증도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는 감염확산으로, ‘언택트(un-contact) 문화’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문화예술계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대면 생활방식 기반의 ‘언택트’ 개념은 접촉하다(contact)에 반대되는 개념인 non-contact의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짐작되며, 우리가 변화 속에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처럼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소비 철학 변화와 ICT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생겨난 새로운 소비 패러다임에 맞추어 문화예술계도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언택트의 일상화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기술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하며,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각종 연주와 공연이 취소되면서 공연 예술계 또한 침체를 겪고 있다. 문화예술 콘텐츠를 향유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이겨내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작지만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공연자와 관객이 온라인을 통해 만날 기회를 모색하며 비대면, 즉 언택트 문화가 새로운 흐름을 찾아가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디지털 기술의 구축이 비교적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과 결합하여 기존의 오프라인에서만 향유할 수 있었던 공연을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수도권 문화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인터넷 생중계 등 활로를 모색하며 문화, 예술 콘텐츠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현장감이나 감동은 실제 공연장을 따라올 수는 없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중계 화면을 통해 클로즈업되는 연주자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공연장에서는 관객석에서 놓칠 수 있는 무대 배경이나 소품 등의 디테일한 면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의 요소이다.

IBS 아트 인 사이언스 온라인 VR전시 이미지출처 사이언스모니터
IBS 아트 인 사이언스 온라인 VR전시 이미지출처 사이언스모니터

공연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연주회, 연극 등 공연 분야에서는 온라인 무관중 생중계가 이어지고 있고, 박물관과 미술관은 ‘가상현실(VR) 미술관’을 운영하거나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한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은 인기 공연을 영상으로 만든 ‘SAC On Screen’을, 국립국악원은 가상현실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전통공연을 스트리밍 플랫폼인 YouTube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객석에 가득 찬 환호와 커튼콜 그리고 앙코르는 기대할 수 없지만, 실시간 대화창을 통해 관객들은 목소리와 박수를 대신해 ‘좋아요’로 그 마음을 전달한다. 이렇게 비대면 온라인 라이브 공연인 ‘랜선 콘서트’가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대중예술계처럼 공연예술계에도 미디어를 통한 관람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국내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유럽의 경우에도 베를린필하모닉은 공연을 온라인으로 보여주는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 서비스를 당분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베를린필은 일찌감치 2008년에 이 스트리밍 미디어를 런칭하며, 그들의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공연 영상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았다. 이는 세계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 중계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HD의 고화질 화면으로 베를린의 청중과 함께 느끼고 호흡하고 감동할 수 있다. 최근 50년간 주요 공연을 업로드하는 한편, 2008년 이후 열린 공연은 콘서트 아카이브에 보관하여 언제든지 최근 공연들도 스트리밍 방식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황 영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5년에는 베토벤 연주의 리허설 장면을 VR 카메라로 리허설을 촬영하여 공개했다. 덕분에, 시청자는 화면의 버튼을 눌러 공연장을 좌우 360도, 상하 180도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사태와 관계없이 더 많은 관객들이 베를린 필의 공연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독일 정부와 사회에서 배려한 것이다.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이전부터 그들은 클래식 음악 산업의 미래를 제시한 것이다. 당시 음악계의 가장 큰 혁신은 바로 이 디지털 콘서트홀이었고,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Digital Concert Hall 페이지 이미지 출처 Digital Concert Hall
베를린 필하모닉의 Digital Concert Hall 페이지 이미지 출처 Digital Concert Hall

이러한 아카이브 형태의 공연 외에도 예술가들이 직접 나서서 라이브 공연을 열기도 한다. 연주 단체뿐만 아니라 공연을 준비해온 아티스트가 직접 SNS를 통해 라이브로 팬들과 함께 즉흥 공연을 하기도 하며 이는 많은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한 만남은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의 SNS 계정을 통해서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Daniel Hope)의 거실 공연이 업로드되면서, 청중들과의 음악적 소통뿐만 아니라 공연이 취소된 동료 예술가들을 자신의 거실로 초대해 매일 오후 6시 스트리밍 콘서트를 열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했고, 경기도문화의전당은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서울시오페라단이 연주하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를 시작으로 자체 기획공연을 온라인 생중계로 대체했다.

이러한 ‘랜선’ 콘서트 혹은 VR 공연, 전시들은 이후에 실제로 관객들이 공연장, 갤러리로 발걸음을 향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실제로 콘서트홀에서 우리의 귀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다른 어떤 첨단 기술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는 관객을 만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도, 무엇보다 현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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