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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이 만나게 된 의료

  • 입력 2020.06.09 11:03
  • 기자명 최인석(중국사천항공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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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사무장 인터폰이 울린다.

‘띵동’ “기장님! 응급환자가 생겼습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승객과 함께 장시간 항공기를 타고 가다 보면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기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항공법에 근거하여 명문화 된 규정이 있다. 의사도 일반인도 잘 모르는 규정일 것이다.

‘객실서비스 및 객실안전규정’에 따라야 한다. 객실승무원은 상황판단 후 초동조치를 취하고, 기장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고, 기내의료진을 호출하는 방송을 하고, 최악의 경우는 가까운 공항에 긴급 착륙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중국의 항공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필자도 비행 중 여러 건의 응급환자의 발생을 보았다. 다행히 순조로이 해결되었었다. 항공법에서 항공기의 기장은 책임이 막중하다. 흔히 파일럿이라 부르지만 정확히는 Pilot in Command이다. 항공법에서 항공기의 기장은 해당 항공기 긴급회항의 최종 결정권자이다. 주변 동료 기장 중에는 기내 응급환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미국 법원에 다차례 출두해야하는 소송사건에 휘말린 안타까운 이도 있었다.

비행훈련을 받는 학생조종사는’ “메추리” 라고 호칭된다. 메추리가 닭이 되거나 타조가 될 확률은 제로이다. 시간이 지나면 ‘독수리’가 된다. 물론 되기까지는 험난하다. 학생조종사인 메추리는 지상에 있을 때 IQ 140이라면 조종석에 앉는 순간 그 절반인 IQ 70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륙하는 순간, IQ 35으로 떨어져 완전 닭대가리가 되어 모국어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리버리한 상태로 헤맨다. 비행횟수가 늘면서 IQ가 회복되지만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공중에서는 여전히 지상만큼의 IQ로의 회복이 불가하다. – 어느 학생조종사의 고백 -

지상의 안전한 사무실 데스크에서 300명의 고객을 책임지는 관리자도 결정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론 최선의 결정을 못 할 때도 있다. 시속 수백킬로미터로 날아가는 항공기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기장은 항공지식, 규정, 경험을 토대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조합 산출하여 단숨에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처한다. 이전 어떤 조종사도 해보지 못한 창의적 결정을 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조종사 중에서는 기장이 되기를 포기하고 부기장으로 안주하다 은퇴를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만족해야하는 결정

기장이 내리는 판단과 그에 따른 결정은 좋든 싫든 기내 전체 수백명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결정이 될 수 있다.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유명한 US Airway의 ‘설리 기장(Chesley B. “Sully” Sullenberger Ⅲ)’은 이륙 중 세떼를 만나, 양쪽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150명의 승객들이 탑승한 여객기를 허드슨강으로 안전하게 내렸지만, NTSB(연방 교통안전위원회)의 사고조사위원회는 공항의 긴급착륙이 아니라 허드슨강을 선택한 설리 기장의 실수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그러나 결국 사고조사위원회는 ‘과거사례, 규정, 훈련절차’에도 없었던 허드슨강을 불시착지로 선택했던 설리 기장의 결정이 승객 모두의 생명을 구했다고 발표했다.

항공응급_허드슨강의 기적_사고당시 사진_출처 위키피디아
항공응급_허드슨강의 기적_사고당시 사진_출처 위키피디아

찰나의 순간에 내린 전대미문의 판단이 생명을 구했다는 이 미담은 극적이긴하나, 이러한 항공기의 불시착 사고는 흔히 발생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 빈번히 발생하는 ‘판단의 강요’ 사례는 승객의 의료적 응급상황이다. 항공기 기내에 응급환자가 생기면 ‘상황판단’ – ‘기장보고 및 닥터페이징’ - ‘EMCS, 긴급회항’ 순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상황판단

‘상황판단’ – ‘기장보고 및 닥터페이징’ - ‘EMCS, 긴급회항’의 3단계 순서 절차 중 응급환자가 생기면 우선 객실승무원들은 상황을 판단한 후 기장에게 보고를 해야한다.

첫 번째 상황판단에서는 제일 처음 환자를 발견하거나 승객으로부터 접수를 받은 객실승무원이 환자가 의식이 있을 경우 승객을 편안하게 이동시키고 환자에 대한 기저질환여부 등과 같은 의학정보를 입수한다.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 필요하다 판단되는 경우 환자승객을 항공기 바닥에 눕게 할 수 있으며, 또한 환자의 활력징후와 반응이 전혀 없는 경우 지체 없이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 때 다른 승무원은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호흡기 및 심장제세동기(AED)를 준비한다.

질병의 위급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응급처치 기초단계로 객실승무원은 기도, 호흡, 심장운동을 확인하는 ABC Survey 절차 응급처치 한다.

A : Airway – 기도는 유지되고 있는가?

B : Breathing – 호흡은 하고 있는가?

C : Curculation – 심장은 뛰고 있는가?

닥터페이징

상황 판단 단계에서 객실승무원의 응급조치가 통할 것이라 판단되었다면 그것은 다행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둘째인 ‘보고 및 소통’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Report & Communication and Coordinate’에서 임무기장에게 응급환자를 보고하고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 판단되면 기내방송을 통해 승객 중에서 의사 등 의료인의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것을 닥터페이징 또는 닥터콜이라 한다. 의료인이 있다면 다행이다.

의료진이 기내에 없다면

셋째로 기내에 의료진이 없거나 찾지 못하는 경우 또는 의료진이 해당 응급상황에 대한 조예가 부족할 경우 조종실의 위성통신을 이용한 EMCS를 통해 지상으로부터 의학적 조전을 얻는다.

마지막의 단계, 즉 최악의 경우 기내에서 의료인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의료인이 병원으로의 긴급이송을 추천한다면 기장은 항공광제기관에 ‘Medical Emergency’를 선포하고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을 하게 된다. 조종사는 긴급착륙에 앞서 공항 측에 구급차와 의료인력 지원을 요청하여 착륙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몰랐던 기내 매뉴얼과 기장들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최 기장은 그 이후를 늘 염려하고 있었다. 이 프로세스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다.

첫 째로 골든타임의 문제이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메디컬 이머전시 상황에는 골든타임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를 판단하고, 의료인을 기내 방송을 통해 찾아야만 한다는 것은 골든타임이 소모되는 일이다.

둘 째로 회항에 대한 판단과 그에 따른 리스크이다. 생명보다 중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회항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 또한 골든타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결국 앞선 판단, 즉 환자의 상태에 따라 회항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빨리 내려져야만 빨리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다. 두 가지 골든타임의 모래시계가 동시에 기장의 양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며 흘러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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