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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할 귀한 나무, 명자나무

  • 입력 2020.06.23 08:42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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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 양지쪽 언덕에 초록 잎들이 다복이 난 밭둑을 지나간다. 6살 어린 내 눈에 언뜻 초록 잎 뒤에 숨은 새빨간 수건이 보인다. 다가가 보니 소복이 핀 붉은 꽃들이다. 나도 몰래 꽃에 손을 가져가다 깜짝 놀라 손을 움츠린다. 가시가 지키고 있다. 곁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진달래나무에 함부로 손을 가까이해선 안 된다고 일러주신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봄꽃들이 무척 다양하다. 저마다 모양과 색깔을 돋보이려 애쓰고 향기까지 동원하여 벌, 나비를 모으려 최선을 다한다. 봄꽃 중에서 잎이 먼저 핀 다음에 피는 꽃으로는 명자나무가 맨 먼저다. 매화,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등도 꽃이 일찍 피긴 하지만, 이 꽃들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명자나무는 봄에 피는 꽃 중 가장 붉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청순해 ‘아가씨나무’라고도 한다. 진초록 잎 뒤로 붉은 꽃잎을 살짝 내민 모습은 이미 성숙했기에 몸을 숨긴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명자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과년한 딸이 바람난다고 한다.

명자자무는 중국원산이라 《시경》에도 나온다. <위풍> 편의 목과에 ‘나에게 명자나무(木桃)를 주었으니 옥으로 보답합니다(투아이목도投我以木桃 보지이경요報之以瓊瑤).’라고 했다. 산당화라고도 하는 명자나무에 얽힌 고사(古事)로 사돈(査頓)이라는 말이 있다. 사돈(査頓)을 한자로 표기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어에는 없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사(査)자는 나뭇등걸 사, 명자나무 사자다. ‘사’자를 한자로 査, 樝, 楂 3가지로 쓰는 '사돈'의 유래는 이러하다.

이 고사는 고려중기 윤관 장군과 부원수 오연총 사이에서 생겼다고 한다(한자 속에 담긴 우리문화 이야기, 이진오, 1999, 청아출판사). 사돈(査頓)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등걸나무에서 머리를 조아리다.’이다. 고려 예종 때 여진을 물리친 도원수 윤관장군과 부원수 오연총장군은 평생을 돈독한 우애로 지낸 사이였다. 여진정벌 후에 자녀를 주고받으며 혼인까지 시켰고, 자주 만나 술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회포를 푸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술이 잘 빚어진 것을 본 윤관은 오연총 생각에 술동이를 하인에게 지게하고 오연총의 집으로 향했다. 개울을 건너려는데 오연총도 윤관의 생각에 술을 가지고 개울 저 편에 있는 것인 아닌가. 그러나 간밤의 소나기로 개울이 불어 건널 수 없었다. 이에 윤관이 ‘가져온 술을 서로 상대가 가져온 술이라 생각하고 마시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등걸나무[査]에 걸터앉아 서로 머리를 숙이며[頓首] “한잔 하시오!” 하면 저쪽에서 한잔하고, 저쪽에서 “한잔 하시오!”하면 이쪽에서 한잔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서로 자녀를 결혼시키는 것을 '우리도 사돈(서로 등걸나무에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해 볼거나'했던 고사에서 사돈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다른 설에 의하면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우정을 쌓았는데 어찌하다보니 서로 자녀끼리 결혼하게 되었다. 이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사하며, 처음에 만난 등걸나무에 앉아 서로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에 유래됐다고도 한다. 또 다른 기원으로 사돈이란 말이 만주족의 여진어라는 설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이라 음만 따서 그렇게 썼다고 한다. 이런 내용의 강의를 내가 의과대학 예과 1학년 때인 1974년에 경희대학교 서정범 교수님으로부터 국문학 강의시간에 직접 들었다. 서교수님은 몇 안 되는 동북아어(여진어, 몽골어 등) 연구가였다.

명자나무는 잎 뒤에 숨어서 피는 꽃이다. 꽃이 왜 안 필까 해서 살펴보면 언제 그렇게 피었는지 잎에 가려진 붉은 꽃잎들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숨은 것도 아니다. 마치 누군가 봐주길 기다린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사람 마음을 간질인다. 묘한 설렘을 갖게 하기에 명자나무는 위험한 사랑을 꿈꾸게 하는 나무라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눈물로 헤어졌던 사랑을 뒤늦게 다시 만났지만 이미 이뤄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까움은 나중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더라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잘못된 사랑이 되고 만다. 불행으로 끝난 사랑의 간절함을 시인 장석주는 이렇게 노래했다.

<명자나무/ 장석주>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외양간이나 마른 우물로 휘몰려가는 진눈깨비를 바라보며 울 것. 비겁하게 피하지 말 것. 저녁마다 술집들을 순례하지 말 것. 모자를 쓰지 말 것. 콧수염을 기르지 말 것. 딱딱한 씨앗이나 마를 과일을 천천히 씹을 것. 다만 쐐기풀을 견디듯 외로움을 혼자 견딜 것.

쓸쓸히 걷는 습관을 가진 자들은 안다.

불행은 장엄 열반이다.

너도 우니?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이라는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마라.

장미과인 명자나무는 여러 변종이 있다. 꽃 색깔과 모양도 아주 다양하여 진홍색에서 옅은 분홍이나 흰색까지 있다. 나무의 크기나 모양도 가시가 빽빽한 작은 관목에서 모과(木瓜)처럼 가시가 없고 아주 기가 큰 교목(喬木)처럼 다양하다. 크게 보면 모과나무도 일종의 명자나무라고 한다. 열매도 사과 홍옥처럼 붉은 계통도 있고, 인도 사과처럼 누런 열매도 있다. 정원에 흔히 보는 키 작은 명자나무를 풀명자나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야산에 자라는 명자나무는 꽃이 유난히 붉고 두껍다. 나무 굵기는 손목 반쯤 되었고, 키는 약 2m가 넘는다.

외국 정원에서 한국 고유 명자나무를 만나 반가웠던 적도 있다. 미국에 유학 갔을 때인 1998년 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듀크(Duke)대학 교정에서 어릴 때 밭둑에 자라던 키 큰 명자나무를 만났다. 금방 알아보았다. 안내판에도 한국에서 옮겨왔다고 적혀 있었다. 할아버님께서는 밭둑에 절로 난 명자나무를 키워서 도리깨 발(휘추리)로 쓴다고 했다. 휘추리로 쓸 나무는 곡식을 직접 타격하는 부위라 명자나무나 물푸레나무처럼 재질이 아주 단단해야 한다. 내 고향 안동지방에서는 명자나무를 진달래라 하고, 표준어 진달래는 참꽃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명자나무를 온 나라에 많이 심었으면 좋겠다. 꽃이나 열매 때문이 아니다. 출산율 저하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다. 명자나무를 집안에 키우면 꽃이 너무 예뻐서 과년한 처녀들이 바람난다니 얼마나 유용한 나무인가. 우리 아파트 정원에라도 심어 과년한 제 딸이 시집가서 하루 속히 출산율을 높였으면 좋겠다. 사안이 시급하니 부질없이 시기를 다툴 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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