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PINION 전문가 칼럼
귀농 청년이 산양삼의 역사를 찾다.예맥의 정기를 받아 평창 · 원주 · 강원도
  • 남민수(김앤남대표)
  • 승인 2020.06.23 08:57
  • 댓글 0

[엠디저널] 동방예의지국의 이 땅에서 저 남민수는 서울의 동쪽인 강원도에 귀농하여 산양삼을 열심히 동분서주하며 가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천직이라 여겨짐에 따라 의문과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산양삼의 고질적인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논의를 국사학을 전공한 이창준 대표와 고고미술사학을 전공 중인 이창민 두 역사학도 형제와 함께 심도 깊게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각각 서울과 경주에서 사료를 찾았고, 저는 강원도 원주와 평창에서 현실을 찾아 함께 대조해 나갔습니다.

주된 한계점은 이러했습니다. ‘홍삼이나 인삼하면 떠오르는 것이 명확한데 산양삼은 없다.’이것이었습니다. 고려인삼, 개경인삼에서 이어진 정관장 홍삼은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 그러나 인삼이나 홍삼에 비해 효능차원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산양삼입니다. 그런데 홍삼은 지금 제국이라면, 산양삼은 지금 부족국가의 상태입니다.

산양삼의 효능이나 그 특장점은 다음 기회가 있다면 또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지금처럼 부연설명을 해야만하는 임산물은 결코 아닙니다. 좋으면 좋았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처럼 면역력이 중요한 시기 산양삼은 각광 받아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브랜딩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이 강합니다.

우선 산양삼에 역사에 대해 우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가장 또렷한 연구 성과는 예상 외의 것으로 산양삼과 인삼의 역사는 구분지어볼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산양삼을 인삼이라 불렀습니다. 그 앞선 기록들에는 그저 삼(蔘)이라 칭할 뿐 인삼이나 산양삼이나 명확한 구분이 없습니다. 다만, 그 중 산삼(山蔘)이 가장 고급임에는 명백합니다. 근본적으로 삼은 산에서 키우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려인삼은 그저 브랜딩의 산물일 뿐 고급품이라 칭할 수 있는가부터 출발하게 되었고, 우리는 산양삼의 역사적 원류를 쫓게 되었습니다.

남민수·이창준·이창민 3인방의 연구결과 산양삼의 사료적 시기를 최대한 상고에 준하게 끌어올리면, 전한(前漢)시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음을 확인하였고, 그에 따른 한반도적 원류 설정이 가능했습니다.

1세기 경 동예지도_출처_위키피디아

蔘이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급취장』으로 기원전 49~33의 전한시대에 쓰여진 문헌입니다. 인류가 취급한(식용한) 삼 자체는 이전 연구결과들을 살펴보았을 때, 선사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기에 전한시대로까지 올리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기존의 국내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록상의 최초를 산(양)삼의 문헌상 등장 건 중 백제 무령왕 시기를 원류로 잡기도 하나, 우리의 연구는 전한시대로 끌어올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백제 무령왕 시기에 해당되는 기록은 중국 문헌 중 『양서』의 기록으로 501~523 추정하여 백제 무령왕이 양 무제에게 산삼을 조공했다. 라는 기록의 단초입니다.

추가로 한국 문헌에서는 『삼국사기』의 662년, 문무왕 나당연합군 편성을 기려 산삼 200근을 당나라에 바치다.라는 기록이었고, 산삼이 아니라 하여 받지 않았다는 후문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 문헌 기준으로는 739년, 발해 문왕이 산삼 30근과 국서를 도다이사에 보내다. 라고 되어있으나, 신빙성이 높진 않습니다.

산에서 키운 蔘이라는 것의 문헌적 시초는 전한시대로 설정하는 것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이어, 본 연구의 목적이었던 우리 임산물의 브랜딩 측면에서의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전한시기의 한반도의 시점 중 하나는 위만조선이 전한에 의해 멸망되고,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시기라는 점에 우리 연구팀은 초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지도는 이미 국민 누구나 교과서에서 봤을법한 지도입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세우는 측면에서 누구도 아는 공감대 형성은 매우 중요하기도 합니다.

전한 시기의 한반도 중 산양삼의 요충지인 강원도는 ‘예맥’라는 민족 또는 국가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고조선과 예맥 땅에 4개 군현 설치’라는 것이 주된 단초입니다.

여기서 [예]란 함경도-강원도 일대를 말하면 일반적으로는 동예와 옥저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맥]이란 만주지방, 국가상으로는 고구려와 부여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이 때 주목할 것은 ‘예’입니다. 이 중 동예는 강원도에 해당되는 지역을 영유하고 있었고, 문헌상의 삼 또한 이 지역의 산삼 또는 산양삼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산양삼을 키우는 각 임산농가들의 일관된 견해는 산양삼을 기를만한 임야가 잘 없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강원도 지역이 산양삼을 키울만한 토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한정된 곳만 그러한 정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정기가 동방예의 지국의 예맥 족 중 ‘예’의 정기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산양삼 사업이 동예에 기원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단순히 삼장수라 칭했을 때와는 새로운 시야가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 상품에 대해 산양삼 시장에서는 새로운 그러나 검증된 방식으로 브랜딩을 하되, 그것을 역사와 우리 민족의 얼을 기반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 새로운 지상과업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온라인 마케팅 측면에서도 남들은 하지 않는 다양한 시도를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첨단화 된 농업이라 하겠습니다.

1년근 산양삼은 보통 새싹삼등으로 불리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새싹삼은 인삼도 산양삼도 모두 칭하기에 브랜드 요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애삼’이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론칭할 예정에 있습니다. 새끼돼지 요리를 애저 요리라고 부르는 것으로 연상해도 비슷하고, 어리다는 뜻 그 자체가 되겠습니다.

일명 파삼이라 불리는 상품성 떨어지는 산양삼에 대해서는 필자는 B급삼, 특히 못난이 산양삼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시장에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 연구 후에는 또 다른 명칭을 론칭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11년~12년근의 상등품에 대해서는 별다른 명칭 자체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의를 담아 ‘예삼’이라 부르며, 새롭게 다가갈 것입니다.

이름이 갖는 힘은 실로 강력합니다. 말의 힘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썸을 타는 것과 사귀자고 고백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면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농업은 낙후된 산업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지역의 특산물을 지역의 역사와 함께 더 나은 브랜드아이덴티티로 첨단화된 기법으로 승부할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시기의 임농업의 생존방식입니다.  

남민수(김앤남대표)  emd@mdjournal.net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민수(김앤남대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