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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분주했던 일상, 이제는 추억 속으로

  • 입력 2020.07.16 11:34
  • 기자명 강은홍(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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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이제 뭐 하실 거예요?” 근래에 와서 내 주변사람들이 틈만 나면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글쎄요......” 나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나는 늘 계획된 삶을 살아 올 만큼 철저한 사람은 아니다. “내가 A를 계획하는 동안 저 반대편에서 B라는 사건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법륜스님의 말이기도 한데 참 공감되는 말이다. 그저 내게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긍정하며 순리를 지키고 그게 어떤 형태로 나를 덮쳐 와도 잘 극복하며 살아내는 것이 나의 철학이며 계획이다.

비교적 큰 제약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감사함도 있지만 가끔씩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달리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 스스로 발을 디딘 그 길에 대해 후회나,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대충 살지도 않았고 철두철미하게 계획적인 삶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자의식이 강해 자유분방하게 살아 본 것은 절대 아니다. 타인에겐 조금 더 관대해졌고, 나 자신에겐 철저히 고지식하기 까지 해 ‘철벽녀’ 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다.

그랬다. 다채로운 사회의 경험 속에서 아픔과 성장을 거듭하며 그래도 성실과 소신을 지키며 건강하게 살아온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생활을 접어도 좋을 만큼 많은 시간과 세월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도전적이거나 용감하게 산 건 아니지만 꾸준히 뭔가를 시작했고 끝을 맺었고 지금이 또 한 번 그러한 시점이 되었다.

숨 막히는 임상현장에서의 오랜 병원생활도 그랬고 석사를 하고 힘겨운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늦게 시작한 박사과정이 교수라는 직책을 바라고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부교수라는 타이틀 까지 얻게 된 감사함이 또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나만의 결실이 되었는가? 대학이라는 사회에서 유독 낯설음과 경계심이 강해 적응이 느리던 나에게, 따스함으로 다가와 주었던 장 교수님! 그녀의 인간미 넘치는 뒷면엔, 내게는 부족한 현실적 감각마저 명확해 존경스럽기 까지 한데, 이젠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선물 같은 친구가 되었다. 진심어린 친절과 우정으로 감동을 주던 김 교수님과 황 교수님, 갑갑한 산골생활에서 격려와 칭찬으로 활력을 더해주던 윤 교수님! 나보다 일찍 학교를 떠났지만 늘 내 걱정이 많은 최 교수님! 그녀들은 내 길지 않은 교수생활에서 얻은, 고맙고 감사한 친구이자 지인들이다. 그 외 많은 고마운 분들, 아! 그리고 샛별처럼 사랑스런 내 제자들과의 수많은 기억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나는 오늘, 이 여름의 햇살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히 미소를 담아 대답해주고 싶다.

“글쎄요...”

쉼이라는 무한과제의 명제 속에서 나는 늘 갈망해 왔던 많은 일들을 순차적으로 해 나갈 예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 미술, 문학과 여행, 그리고 들꽃들과 함께하는 산책, 또 각종 차 마시기, 다양한 커피 내리기 등등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는 환희의 상상력을 실어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내가 늦잠을 자는 일은 없을 것이고 분주하게 출근을 서두르는 일은 더욱이나 없을 나의 가까운 미래... 그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보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허겁지겁 운전대를 잡고 마시던 모닝커피를 햇살 좋은 베란다 창가에서 음악을 들으며 유유자적 마시는 나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근사하다.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늘 그랬듯 열심히 나의 길을, 또 거뜬히 행복을 건져 올려, 계획 없이 다가올 내 삶을 향유하며 무던히 걸어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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