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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옛날 얘기해 주세요”

  • 입력 2020.07.16 11:43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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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와 동생들은 저녁마다 엄마 옆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이야기, 본인 자라난 평안남도 시골이야기, 피난 나오던 이야기 등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충남 예산군은 그러기에 제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저의 뇌리에 항상 못 박혀 있는 옛날 얘기 중의 하나는 ‘1·4후퇴’ 당시의 피난 여정의 고생담입니다.

엄마, 외할머니, 사촌언니 길자, 그리고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달음박질 잘하는 제가 인민들에게 쫓겨서 산 위로 달아나고 있는 장면입니다. 눈 덮인 산등성을 죽자고 달려가는 저희들 등 뒤에서 인민군 병사들이 총을 쏘면서 뛰어옵니다. 죽자고 달린 덕에 우리 가족들은 무사히 살아났는데, 그 중요한 요인은 ‘꼬마 영숙이(저를 가리킴)’가 워낙 잘 달렸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장면들이 너무나 또렷하게 영상에 비춰오기 때문에 아마 이것은 제가 어린 시절에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꿈과 현실의 중간분야를 저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이유는 아마 체육점수가 낙제급인 저를 ‘잘 달리는 영숙이’로 각색해 주신 어머니의 현명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기억(Memory)이 대뇌 안에 입력되는 것(Encoding)이나 다시 살아나는 것(Recall)은 재구성단계(Reconstruct)를 거칩니다. 사건에 관계된 감정에 따라서 어떤 ‘기억’들은 어른이 된 이후에 엉뚱하게 되살아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무의식적인 행동 저변에도 세 살 이전에 일어난 사건의 ‘기억’들이 큰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유아기 기억들을 ‘조기 기억(Early memory)’이라 부릅니다. 말을 배운 이후(3살 이후)에 생긴 사건에 대한 기억은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억(Declarative memory)’, ‘사건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 부릅니다.

‘해마(Sea horse)’는 조그마한 조직이 인간의 대뇌 안에서,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느 아기가 젖을 빨다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것도 아버지의 폭행 때문에! 청소년이나 성인이 된 후에 이와 비슷한 소리나 사건에 부딪쳤다고 합시다.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본인은 ‘설명을 할 수가 없고’, ‘사건이 연결되지 않은’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겠지요? 그 가장 좋은 예가 ‘아동학대’입니다. 매 맞던 당시의 또는 매맞는 것을 보던 심경이 격하게 발동되면, 자신도 모르게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버립니다. 단지 이제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서!(자녀나 부인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우겨대는 것의 많은 경우가 자신의 합리화로서 나중에 만들어내는 수가 많습니다.)

즉 세대를 넘어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원초적 기억의 한 가지 예시가 되겠습니다. 폭행하는 남편 또는 부모들이 ‘어느 날 좋은 사람으로 저절로 바뀌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뇌 기능에 변화가 오기 전에는. 요즈음에는 대뇌기능(인식/감정/행동)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동요법들이 발달되었고, 치료에 잘 사용됩니다. 그 원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롭고, 남의 칭찬을 받은 행동을 하면 기뻐집니다. 그러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 벌을 받거나 사랑을 잃게 되면 자연히 그치게 됩니다. 동물처럼 날뛰는 남편이나, 부모의 행동은 경찰이나 법을 이용해서 그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상담이나 좋은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도록 주위에서 칭찬하고, 사랑해주고, 격려하는 것은 가족, 교회 지역사회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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