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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와 칡덩굴은 왜 서로 갈등(葛藤)할까?

나뭇가지에 걸린 고전(17)

  • 입력 2020.07.21 12:44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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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휘파람새가 휘파람을 부는 오월 한낮, 소쩍새가 밤새 울던 언덕을 온통 보랏빛 등꽃 등불로 밝혀놓았다. 향기에 취한 온갖 벌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사태(沙汰)진 언덕 아래 떨어진 등꽃과 고운 모래가 쌓이면, 깔때기 모양의 모래 웅덩이들이 군데군데 만들어진다. 등꽃 씨방에 고인 꿀에 이끌려 개미들이 깔때기 속까지 들어간다. 아차! 개미들이 도망가려 기어오르면 작은 모래 언덕이 무너지기를 거듭한다. 이를 놓칠세라 개미귀신이 번개 같이 개미를 물고 모래 속으로 사라진다. 화려한 잔치와 죽음의 덫이 공존한다.

어릴 적 큰 대문 앞 등나무 언덕 아래서 많이도 놀았다. 두어 뼘도 넘는 등꽃 떨기에서 수 십 개의 등꽃 중, 하나를 골라 자세히 살펴보면 여간 아름답지 않다. 콧날이 유난히 오뚝한 버선 같은 보랏빛 꽃잎 두 장을 꼬투리로 묶었다. 그 안에 다시 보드라운 속버선 같은 꽃받침으로 받치고 가운데에 꽃술까지 달았다. 등꽃 떨기들은 부끄러운 듯이 언제나 아래로 쳐지며 자란다. 먼저 핀 꽃들이 지면서 삼태기로 날라 부은 듯이 언덕 아래에 쌓이지만, 또 새 꽃들이 쉼 없이 피어난다.

등(藤)나무와 칡(葛)덩굴은 같은 콩과식물로 줄기를 뻗어 크게 자라는 목본(木本)식물이다. 또한 다른 나무를 감아 올라가 햇볕을 독차지하는 점 등이 같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크게 보아 등꽃이 세련된 귀공자라면, 칡꽃은 고지식하고 투박한 민초라 할 수 있다.

등꽃이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사이, 소나무를 감고 올라간 칡덩굴은 아직 잎만 무성하고 꽃은 아직 준비 중이다. 갸름하고 매끈한 등나무 잎이 한 잎맥에 열 장에서 스무 장 내외로 자유로이 달리는데 비하여, 털이 숭숭하고 넓은 칡잎은 고지식하게 언제나 단출한 세 장뿐이다. 등꽃은 주렁주렁 아래로 달리며 고개를 숙이지만, 칡꽃은 절대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이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자란다. 등꽃이 무채색이 가미된 은은한 보라색으로 세련된 멋이 넘친다면, 칡꽃은 아주 진한 빨강으로 원색의 야성이 넘친다. 등꽃이 약 2주 이내에 폈다가 진다면, 칡꽃은 등꽃이 완전히 진 후 유월이 와야 조금 피기 시작하여 한 여름에 만발하다가 서리 올 때까지 끊임없이 핀다.

인간 사회는 여러 가지 갈등(葛藤)으로 넘쳐나고 있다. 갈등이란 말은 등나무와 칡덩굴을 예리하게 관찰한 일본인 현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라 한다. 덩굴식물은 종류마다 정해진 방향으로 감는데, 칡, 나팔꽃, 메꽃, 새삼 등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나 인동, 더덕, 환삼덩굴 등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중간에 억지로 뒤바꿔 놓아도 끝내 원래 제방향대로 되감는다. 이 말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이러하다.

등나무와 칡덩굴은 기둥이 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갈 때 감는 방법이 서로 반대다. 등나무는 오른 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간혹 칡덩굴과 등나무가 같은 기둥나무에 얽히면 감는 방향이 서로 다른 이 둘이 얽히면 모습이 매우 복잡해지고 생장에도 큰 지장을 준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의 이런 상황을 빗대어 탄생했다. 갈등상태에 놓인 칡과 등나무의 경쟁은 처절하다. 한 나무가 고사(枯死)한 후에야 끝난다고 한다.

생태학적으로 실제 자연 상태에서 칡과 등나무가 함께 살기는 힘 든다고 한다. 두 종은 서식처와 지리적 분포중심지가 각기 달라서다. 칡은 냉온대인 북쪽 만주로부터 한반도 중남부지역을 거쳐 일본열도에까지 넓게 분포한다. 그에 반해 등나무는 난온대인 중국이 원산지라 겨울에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칡은 한국에 자생하니 순수 우리말이고, 등(藤)나무는 중국에서 왔으니 한자어이다.

만약 냉온대와 난온대가 교차하는 지역이라면 등나무와 칡을 함께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 대륙 동남부지역에서 한반도의 중남부를 거쳐 동쪽으로 일본 교오토(京都), 나라(奈良) 지역들이다. 그런데 중국의 자등(紫藤)은 칡처럼 왼쪽으로 감는 덩굴식물이다. 때문에 갈등이란 단어가 중국산일 가능성은 없어진다. 이래서 갈등이란 말은 갈등이 만연했던 시대에 불교 선문담(禪問答)에 심취한 일본인 현자들이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한 이유다.

심리학에서 갈등(conflict)은 개인이 내적으로 발생하든, 집단이나 개인 간에 발생하든 모순과 대립 혹은 충돌이나 불일치와 연관이 있다. 갈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이며, 지속되고 고조될수록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늘 갈등이 있어왔기에 철학자, 종교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논하고 나름의 해결 방법을 제시해왔다.

사회심리학의 창시자 레빈은 접군과 회피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선택과 관련해 경험하는 갈등의 종류를 4가지로 분류했다. 접근이란 대상에 끌리는 마음이며, 회피란 대상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첫째, 접근-접근 갈등으로‘소주냐 막걸리냐’처럼 이끌리는 두 대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이다. 둘째, 화피-회피 갈등으로 상사와 갈등이 있는 직원이 회식에 안 가면 찍할 것 같아 싫고, 가자니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이때 선택해야 하는 갈등이다. 셋째, 접근-회피 갈등으로 앞의 두 경우는 선택의 대상이 다르지만, 이 경우에는 대상이 하나인데 두 속성에 갈등이다. 예를 들면 결혼상대를 두고 겪는 갈등으로 외모는 좋은데 성격이 맘에 안 든다든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넷째, 다중 접근-회피 갈등으로 결혼을 위해 다수의 이성과 맞선을 본 경우 갈등이 이런 예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값이 비싸고, 싼 물건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이런 예이다. 장단점이 명확한 대상들이 다수 존재하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겪는 갈등이다.

삼국지연의 칠종칠금 고사에서, 맹획의 부탁을 받고 출병한 올돌골이 거느린 등갑군(藤甲軍)에 제갈 량의 군이 크게 고전한다. 등갑은 기름을 먹인 등나무 갑옷을 말하는데, 금속제보다 가볍고 물에 뜨면서도 화살이 뚫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 등갑의 재료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등나무(藤)가 아니다. 한자가 비슷하여 흔히 혼동하지만 래턴(籐, rattan)이란 전혀 별개의 나무다. 이 나무는 열대와 아열대에 걸쳐 자라는 덩굴성 식물로서 대나무와 비슷하며, 래턴의 섬유는 식물섬유 중에 가장 길고 질겨 현대에도 래턴가구로 인기가 높다.

칡은 햇볕을 잘 받는 곳이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질긴 칡 줄기는 각종 농기구를 만들 때 끈으로 사용했고,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뿌리는 기근 때 양식이었다. 칡가루는 약으로 쓰였고 지금도 차로 마신다. 예전에는 칡을 꼬아 만든 새끼줄이 중요한 전쟁 물자였다. 을지 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때 쓰인 쇠가죽도 아마 칡 줄기로 꿰었을 거다.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처음 서울에 와서, 경복궁 경회루 연못 앞, 등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등나무 그늘에서 쉰 기억이 있다. 조선조 경복궁에서도 세계 어느 곳에 못지않게 갈등이 난무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진데다, 남한 내에서도 좌우 이념갈등이 등나무와 칡덩굴처럼 엉켜서 한 쪽이 고사하기 전에는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다. 최근에는 갈등을 이용한 속임수까지 반도체처럼 세계최고 수준이다. 이념을 앞세운 일부 시민단체들은 깔때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개미귀신처럼, 한 맺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을 위한 성금까지 꿀꺽 삼키고선 아무 일없었다 한다. 염치없는 사람들이 꼬리를 감추려 깔때기를 깨끗이 수리해놓는 수법도 개미귀신(명주잠자리 애벌레)의 수법이다. 참으로 슬프다.

칡과 등나무의 갈등이 아무리 심해도 해소할 방법이 있다고 한다. 두 덩굴을 조금 느슨하게 감아 올라가게 해놓으면서 키우면, 갈등을 해결하고 사이좋게 공생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이런 방법이 없는지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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