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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착한 아이

  • 입력 2020.08.14 08:30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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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S씨는 한국에서 우수한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교수생활을 하다가 유학을 왔습니다. 40대 초반의 S씨는 사업에 실패를 했고 가끔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S씨 가정을 제가 처음 만난 것은 12년 전 이었습니다. 작은아이인 딸이 가끔 주위산만증 증세가 있어서 학교에서 주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리탈린(Ritalin)이라는 Methyl Phenidate 성분의 약물을 사용하고, 공부 이외의 운동에 관심을 갖게 해 자신감을 길러주며, 가능하면 숙제는 조용한 방에서 일정한 시간에 하도록 격려를 하였습니다. 가령 학교 주위에서 담배를 피다가 경찰에 적발되었을 때에는 재판관에게 제가 편지를 써 보내어서 큰 문제에서 벗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주위산만증 증세가 있는 청소년들 중에 마약, 음주, 흡연 등의 ‘충동적 행동’으로 인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판사들이나 변호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소녀가 담배 피다가 첫 번째 걸린 경우에 앞으로의 치료 계획과 정신과 의사로부터의 과거와 현재상태의 감정상태소견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일단 “두고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슬아슬한 몇 번의 고비를 지나면서 그 딸은 잘 자라 주었습니다. SAT시험을 칠 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다른 종류의 편지를 부탁 받았습니다. 미국 법에 의하면 ‘주의산만증세’는 장애조건(Disability Condition)에 들어갑니다. 육체적인 장애가 있는 경우에 이를 돕기 위해서 특수보조를 해야 되는 것처럼 주위산만증 환자를 위해서 ‘시험시간 연장’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연장을 받아서인지 소녀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었던 그 소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 ‘우수한 오빠’에게 조금씩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서서히 성적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처럼 운동도 계속하고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깎듯이 예절바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저에게 왔을 때에도 아주 예의바른 ‘모범학생’의 진면목을 보였습니다.

고3이 되면서부터는 솔직히 그 동안 대마초를 사용해왔음을 말했습니다. 그는 항상 솔직했습니다. 자신의 친구들이 모두 훌륭한 대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우울해지며 열등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대마초를 끊을 수 없노라고 저에게 말하면서...

몇 번이나 정신과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본인과 부모님을 설득하여 입원한 후에 그는 병원에서 행하는 개인 상담이나 집단 상담을 전혀 참석치 않았습니다. 통 의욕을 보이지 않으니 병원에서는 며칠 만에 퇴원을 시켰습니다. 그의 준수한 모습과 예절바른 태도에 모든 치료사들과 간호원들이 마음 아파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착한 아이’였던 그는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답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서 부모님을 속상하게 만드는 동생을 볼 때마다, 그는 더욱 참는 것만을 연습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화를 낸다고 해서 역정을 내는 무식한 부모들이 아니었는데도...

10명중에 8명에게는 효과가 있다는 항우울제도 그의 큰 슬픔을 많이 가라앉히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서성이는 이 우울한 청년을 저는 부모님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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