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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을 탄생시킨 ‘귀머거리’

고야 (Francisco Jose de Goya 1746-1828)

  • 입력 2020.08.24 09:00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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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스페인의 화가 고야는 벨라스케스 및 무릴료의 대를 이어 활약한 스페인의 가장 뛰어난 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며 지위인 궁정화가로 활약하였으며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병마에 시달렸던 불운한 면도 없지 않아 그의 병적에 대해서는 병적학자나 미술사학자들 간에 의견이 구구하다. 그래서 그의 병적을 토대로 그의 의도적인 것이 포함되었다고 보여 지는 그림을 모아 같이 대조 분석해 보기로 한다.

고야 작: ‘정신병동의 뜰’ (1794) 달라스, 팀풀레트 래도우스 박물관
고야 작: ‘정신병동의 뜰’ (1794) 달라스, 팀풀레트 래도우스 박물관

고야의 병이 시작된 것은 1792년 그가 46세 되는 가을 안타르지방에 나들이 갔다가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배에 심한 동통과 더불어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증상이 시작되어 하는 수 없이 친구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증상은 가시질 않고 몸은 점점 쇠약해가기만 했다. 2개월이 지나자 다소 차도가 있는 듯 하다 가 이번에는 마비증상이 나타나며 어지름과 말을 더듬으며 환각 증상이 약 한달 간 지속되다가 청력의 장애를 남기게 되었다.

이때의 발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학자나 미술평론가 또는 미술사학자들 간에 아직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우선 매독설을 주장하는 이가 많다. 왜냐하면 18세기 후반에 스페인에는 매독이 매우 많이 퍼져 있었으며 고야는 ‘걸어 다니는 페니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바람둥이었다는 점과 그의 부인이 20회나 임신하였다는 것이다. 유산을 거듭하다가 8명의 아이만 출산하였는데 그것도 조기에 모두 사망하고 장남 쟈비에(Javier)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들고 있는데 여러 신경증상과 복부증상은 매독으로 인한 증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가 수개월 후에 회복되어서 그 뒤로는 36년이라는 기간을 살았다는 점으로 보면 매독설의 주장은 어색한 데가 있다.

나헤라(Nahera)라는 정신과 의사는 고야의 병을 정신착란(精神錯亂)상태로 엄격한 의미에서의 정신이상이라고 할 수 없는 뇌장애로서 그것이 매독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특정한 뇌장애에 의한 것이건 간에 정신상태가 정상은 아니였으며 특히 그가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 후에 난데없이 정신병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정신병동의 마당에 군집되어 있는 ‘정신병동의 뜰’ (1794)을 그렸다. 그림에서 보는 정신이상자들의 광기(狂氣)어린 행동과 표정은 마치 자기의 병명도 알 수 없는 가운데 것 잡을 수 없이 나타나는 고통과 고뇌는 미친 사람들의 고뇌와 같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 같다는 해석이다. 그림에는 미쳐서 이유 없이 서로 붙들고 싸우는 자가 있는가하면 아무런 느낌 없이 자기를 과시하는 표정에 이르기 까지 형형색색의 정신적인 증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자기도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야 작: ‘정신병동’ (1812-14)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
고야 작: ‘정신병동’ (1812-14) 마드리드,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

또 한 장의 그림은 ‘정신병동’ (1812-14)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수동적인 광기가 아니라 고뇌로 미쳐 날뛰는 여러 가지 광기의 표상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즉 그림의 우측에 왕을 상징하는 옷차림을 한 움직이지 않는 환자에서 좌측에는 편집자를 상징하는 움직이는 환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앞의 그림과 다른 점은 병실 밖이 아니라 병실 내 라는 것으로 이제는 이렇게 미친 것은 자기의 병으로 인한 고통에 상당히 익숙해 졌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니더랜드(Niderland)는 연 중독(鉛中毒)을 주장하였다. 즉 당시는 튜브에 들은 기름물감이 없었기 때문에 기름과 물감을 일일이 화가가 혼합해서 사용하였는데 백색의 물감은 연화물(鉛化物)을 이어서 이를 혼합할 때 미세먼지가
날려서 연중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야의 모든 증상 특히 말초신경에 의한 마비증상이나 시력이나 청력장애 등은 연중독시에 보는 증상으로 설명되나 그렇다면 18세기 후반의 화가들은 모두가 연중독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고야 작: ‘안경 쓴 자화상’ (1800)
고야 작: ‘안경 쓴 자화상’ (1800)

고야는 자기의 어떤 심적인 변화가 있을 때 마다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수는 10여 매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안경을 쓴 것은 단 한 장 ‘안경 쓴 자화상’(1800) 뿐이다. 고야는 병중 또는 병후에 가끔 식 눈에 경련을 일으키는 안구진전증(眼球震顫症)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마다 안경을 썼다고 하는데 과연 안구경련에 안경이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림을 보면 백발이 드문드문 섞여있으며 길게 기른 구레나룻이 귀를 덮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는 이미 쓸모가 없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거울을 보고 그렸을 자화상인데 화가의 시선은 딴 곳을 보고 있다. 이것은 자기 병의 진실을 보고 싶은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것 같다.

고야 작: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1-24) 프라도 미술관 소장
고야 작: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1-24) 프라도 미술관 소장

그는 1819년(72세)에 마드리드 교외에 별장을 사 드리고 ‘귀머거리의 집’이라 이름하고는 그 집의 아래층에는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1-24)를 위시한 14장의 ‘검은 그림’을 벽화로 남겼다. 고야는 이들 그림에 신화나 성서, 축제나 민간 행사를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이 그림들은 유모아와 광기, 정의와 복수, 고독과 환멸, 파괴와 죽음 등을 나타내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야에 들지 않았던 세계는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결국 그 배후 세계는 나름대로의 상상의 것이 되고 만다. 즉 그는 현재의 들리지 않는다는 고통과 작품을 만들어야 겠다는 성취욕의 두 갈래에 시달려, 지녔던 능력의 유연성이 메말라 간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삶의 근본 특성을 버리지 않고 이에 충실하여 나름대로의 예술성을 발휘한 나머지 ‘검은 그림’을 그렸다. 그 결과 과로로 인해 다시 위독한 증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고야 작: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1820) 미네아폴리스 미술 연구소
고야 작: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1820) 미네아폴리스 미술 연구소

이렇게 위독한 병에서 능숙한 솜씨와 정성을 다해 그를 살려낸 의사이자 친구였던 아리에타(Arrieta)에게 감사의 표시로 그림을 선사하였는데 그 그림이 바로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1820)이다. 빈사상태의 고야에게 의사는 컵에 든 약을 먹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환자와 의사의 손가락의 표현에 있다. 손가락 그리기를 되도록 피하곤 했던 화가인데 자기가 덮었던 이불을 힘 것 잡아 쥐고 있다. 실은 빈사상태에 있으면서도 의사의 정성어린 치료가 고마워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표현하였으며, 의사도 환자를 부둥켜안고 있는 손가락과 컵을 쥔 손가락에 힘이 가득한 것으로 그의 정성어린 치료를 표현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림의 검은 배경 좌측에 두 사람, 우측에 한 사람의 망령 같은 얼굴이 보인다. 두 사람의 얼굴은 사제이며 하나의 얼굴은 해골로 저승사자를 의미해서 저승에 다 갔던 자기를 아리에타가 구해 주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고야 작: ‘보르도의 우유 파는 여인’ (1827)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고야 작: ‘보르도의 우유 파는 여인’ (1827)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결국 1828년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는데 그의 마지막 작품이 ‘보르도의 우유 파는 여인’ (1827)이다. 이 여인은 매일 아침마다 나귀에 우유를 싫고 와서 각 집에 우유를 배달하는 여인이다. 모름지기 고야도 아침마다 우유를 받고는 인사를 했을 것이다. 여인은 나귀의 등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듯이 머리를 앞에다 두고 있으며 그림의 좌측에는 아직도 아침안개가 거치지 않고 있는데 우측에는 벌써 빛이 비치는 아침의 맑은 하늘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여인은 나귀등에서 찬란한 아침의 빛을 마음 것 받고 있는 아무런 욕심이 없는 자연 속의 여인이다. 고야가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자연만이 지니는 위대한 분위기의 미술’에 취해 고통스러운 몸을 이끌고도 평생 그림을 그려왔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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